이 기사는 국가 대표 축구팀의 국제 경기 방송권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에 대해 한국경제신문 1년차 기자인 유승호 기자가 쓴 글입니다.

상업 스포츠 방송까지 '국민의 볼 권리'를 인정해야 할 것인지,그럴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은 없는지 등에 대해 쓴 글 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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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나라'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부진이 계속되자 여론의 압력에 못 이긴 감독이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다.

이렇듯 축구대표팀의 성적이 국민적 관심사인 나라에서 얼마 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는 뉴스가 있었다.

"월드컵축구 경기를 지상파 TV로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월드컵축구 중계 돈 내고 봐야 한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소식임에 틀림없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8월 초 스포츠마케팅 회사인 IB스포츠가 아시아축구연맹(AFC)으로부터 월드컵과 올림픽 축구 경기에 대한 독점 중계권을 사들였다고 발표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이 월드컵을 중계 방송하려면 IB스포츠에 거액을 내고 중계권을 사 와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지상파 방송사들이 IB스포츠에서 중계권을 사 오지 않는다면 시청자들은 IB스포츠가 운영하는 유료 스포츠 채널에 가입해야만 월드컵과 올림픽 축구경기를 시청할 수 있다.

그러니 시끌벅적 일대 파문이 일 수밖에.

◆흑백 TV에서 광화문 대형 스크린까지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고 있는 풍경이 있다.

아늑한 달빛 아래 조용한 시골 마을.어느 집에선가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온다.

흐릿한 흑백TV 화면 앞에 수십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촘촘히 앉아 화면 속 프로 레슬러나 권투 선수 또는 국가대표 운동 선수들에 열광하고 환호한다.

마을 전체를 통틀어 흑백 TV 한두 대나 겨우 있던,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시절의 이야기지만 그런 장면들은 겉모습만 약간 달리할 뿐 실제로는 지금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한국인 메이저리그 선수나 국가대표 축구팀의 주요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맥주집에서,시내 광장에서 대형 스크린 하나를 두고 모여 앉아 경기를 지켜보며 함께 응원하고 함께 열광한다.

30년 전이나 오늘이나 TV는 함께 보는 것,즉 공유하는 것이며 또한 무료로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 중계방송을 보기 위해 돈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뉴스에 놀랐던 바탕에는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형성된 '방송은 무료'라는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여지껏 우리에게 방송은 '상품'이기보다는 '보편적 서비스'로 인식돼 왔다.

◆월드컵 볼 권리는 기본권?

그러나 케이블TV 위성방송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인터넷이나 휴대폰을 통한 유료 콘텐츠 사업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마당에 방송 전체를 뭉뚱그려서 '무료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그 성격상 지역과 계층 등에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할 정보들이 일부 있을 뿐이다.

IB스포츠의 중계권 독점 계약에 불만을 나타낸 많은 축구 팬들과 지상파 방송사들은 월드컵축구 중계방송이 보편적인 서비스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월드컵축구 경기는 돈을 낸 사람만 볼 수 있는 유료 채널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지상파TV를 통해 방송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이 내놓는 근거 중 하나는 '주요 스포츠 경기'에 대한 '국민들의 볼 권리(Public View Right)'를 인정해 월드컵축구 등은 반드시 지상파 방송사가 중계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은 영국이나 독일 등의 사례다.

그러나 국민들이 볼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보편적인 정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은 각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영국과 독일에서 '월드컵 볼 권리'가 보편적 권리로 인정된다고 해서 그것이 대한민국에서도 반드시 보편적 권리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간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야동(야한 동영상)'이 월드컵축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해서 '야동을 볼 권리'를 보편적 권리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축구가 국민적 관심사라지만 '월드컵 볼 권리'가 마치 국민의 기본권인 양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공중파 방송들도 월드컵 중계를 통해 엄청난 이익을 올린다는 점이다.

IB스포츠는 안 되고 KBS는 된다고 할 수도 없다.

어차피 MBC도 SBS도 돈을 벌기 위해 월드컵을 방송하고 실제 광고를 팔아 엄청난 이익을 낸다.

본질에서는 IB스포츠와 다를 것이 없다.

공중파 방송사들이 중계권을 따기 위해 그 동안에도 큰돈을 외국에 지불하며 과당 경쟁을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월드컵 중계방송이 유료가 되는 것과 무료가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옳은가는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의 결과로서 나타날 것이다.

방송사들이 평소 공공성에 걸맞은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도 하나의 잣대가 될 것이다.

유승호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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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플러스 + ]

-방송의 공공성
-보편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방송 프로그램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중이 원하는 것과 대중에게 필요한 것 간에 차이가 나는 사례
-옷ㆍ휴대폰 등과 같은 상품과 방송ㆍ영화 등 문화상품 간의 차이
-인터넷에서 음악을 다운받는 것은 무료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