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몸의 세포가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10만개 정도의 유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밝혀진 유전자 수는 2만5000여개로 '하등동물'의 유전자 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비밀은 게놈(Genome)에 있었다.
유전자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과학자들은 인간과 포유동물들의 게놈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게놈(Genome)은 모든 DNA의 총합
유전자(Gene)는 세포의 모든 생명현상과 기능을 조절하고,생로병사를 결정하는 정보도 담고 있다.
이런 유전자는 DNA로 이뤄져 있으며,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DNA의 총합을 게놈이라 한다.
유전자는 생명 유지를 위해 여러가지 단백질을 만들어 내는데,예전에는 하나의 유전자가 하나의 단백질을 만든다는 게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나 게놈 프로젝트 연구결과 하나의 유전자가 둘 이상의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이 밝혀졌다.
제어 단백질,RNA,코딩(특정 기능을 가지도록 배열) 안된 DNA 조각,그리고 게놈 자체의 화학적·구조적 변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유전자가 작동할 것인가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소수의 유전자로도 복잡한 생체 기능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선택적 삽입(alternative splicing)'이라는 현상 때문이라는 사실도 몇 년 전에 밝혀졌다.
인간 유전자에는 코딩된 DNA와 코딩 안된 DNA가 모두 포함돼 있다.
코딩된 DNA는 특별하게 배열돼 실제로 단백질 생산에 관여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부분이다.
어떤 유전자에서는 여러가지 조합의 코딩된 DNA 조각들이 선택적으로 서로 다른 시간에 활성화돼 각기 다른 단백질을 만든다.
말하자면 하나의 유전자에서도 아주 많은 단백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 같은 '선택적 삽입'은 유전자가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 드물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결과 인간 유전자의 절반 또는 거의 대부분에서 선택적 삽입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발견으로 소수의 유전자가 어떻게 수천 수백 개의 서로 다른 단백질을 생성하느냐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유전자 발현 과정에서 어떻게 유전자의 특정 부분이 특정한 시간에 읽히도록 결정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어떠한 유전자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발현되거나 혹은 발현되지 않도록 결정해 주는 메커니즘 또한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은 각 유전자의 기능 발현에 다양한 요소들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일례로 아세틸기나 메틸기를 DNA에 붙여넣어 유전자의 활동을 정지시키거나 활성화시키는 단백질이 여기에 포함된다.
'전사 인자'라 불리는 단백질들은 자신이 조절하는 유전자와 가까이 있으면서 여러 DNA 조합을 절묘하게 활성화시켜 유전자 발현을 통제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런 모든 제어 요인들이 실제 어떻게 작용하고 어떻게 선택적 삽입과 조화가 이뤄지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
10년 전부터 연구자들은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RNA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큰 RNA 분자에 관심을 기울였던 많은 연구자들이 이제는 염기가 30개도 안 되는 아주 작은 마이크로 RNA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작은 RNA들이 유전자 발현을 중지시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 역시 완벽하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