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세계를 삼킨다] 인수전쟁 가속…미국과 충돌도 불사



'借船出海'(제촨 추하이).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는 말이다. 요즘 중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외국의 선진기업을 인수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중국 기업들의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기업들은 싼 노동력과 거대한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안방 시장에서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서면 중국 기업들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상대적으로 저급한 기술력에 발목이 잡혀 외국 소비자들에 친숙하게 다가서지 못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찾아낸 것이 바로 외국기업 인수다. 외국 기업을 사들이면 기술과 유통망,브랜드를 단번에 확보해 해외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냥감이 된 미국과 유럽기업들


중국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 프로젝트 중에는 지사 형태나 법인을 설립한 것이 많지만 외국 기업을 사들인 경우도 상당수 포함돼있다.


중국 기업들은 '세계 1등 기업'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굵직한 외국 기업들을 넘보고 있다. 중국 PC메이커 롄샹이 올초 미국 원조 컴퓨터회사인 IBM의 PC사업 부문을 인수,휴렛팩커드와 델 같은 세계적인 PC업체들에 도전장을 냈다.


중국 전자회사 TCL은 프랑스 톰슨의 TV브라운관 사업을 인수해 세계 최대 브라운관 업체로 발돋움했다.


중국의 외국 기업 사냥은 올해 들어 더욱 가속도가 붙고 있다. 미국에서는 불발로 끝나기는 했으나 중국 가전회사 하이얼이 미국 3위 가전회사 메이택 인수를 시도했다.


중국해양석유는 미국 9위 정유회사 유노칼에 185억달러(19조원)짜리 인수 제안서를 내 현지 기업인들을 긴장시켰다.


하이얼과 중국해양석유가 인수하려 했던 미국 기업들은 이미 다른 업체에 지분을 넘기기로 절반쯤 합의해 놓은 상태였다.


협상 도중에 기습적으로 끼어든 중국기업들의 공격성에 미국인들은 매우 놀랐다.


특히 중국해양석유의 유노칼 인수 시도는 원자재 수요 증가와 가격 상승으로 인해 세계 각국이 에너지 자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미국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글로벌 경영능력은 아직 검증안돼


중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영 능력을 검증받은 적이 없다.


외국기업을 인수한 뒤 나타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중국 TCL은 지난해 프랑스 통신장비회사 알카텔과 휴대폰 합작회사를 만들었으나 1년 만에 파트너를 잃었다.


TCL은 합작사를 통해 프랑스 통신기술을 습득하려고 했으나 합작회사의 적자가 누적되자 알카텔이 투자 손실을 무릅쓰고 TCL에 지분을 넘기고 철수해버린 것이다.


IBM의 PC사업부는 롄샹에 인수된 이후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2분기 18%에서 올해 1분기 13%로 떨어졌다.


중국해양석유가 유노칼 인수에 실패한 것은 준비부족 때문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중국해양석유는 인수 제안을 철회하면서 미국 정치권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으나 185억달러(19조원)짜리 대형 인수합병(M&A)을 제안하면서 정치권의 반대를 예상치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미국인들은 2차대전 패전국으로만 생각했던 일본이 1980년대에 영화회사 컬럼비아픽처스와 뉴욕 록펠러센터 등 상징적인 미국 자산을 마구잡이로 인수했을 때 받았던 자존심의 상처 때문인지 중국자본의 진입을 더욱 경계하고 있다.


20년 전 미국에서는 '외국인혐오증'(Xenophobia)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일본 자본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