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평강공주 꿈을 꾸느라 늦잠을 잤다. 문화탐방을 앞두고 한동안 잊고 지내던 고구려 역사책을 읽다 잠이 들었나 보다. 늦잠을 잔 데다 공항 집합시간이 30분이나 앞당겨졌다는 사실에 나는 날쌘돌이가 돼야 했다.
광개토대왕의 숨결은 살아있다
평강공주는 어디에 있을까? 괜히 평강공주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여자들은 신데렐라를 꿈꾸는 대신 평강공주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데,이유인즉슨 말 잘 듣고 고분 고분한 바보온달이 신랑감으로 결코 나쁘지 않다나 어쨌다나.


어쨌든 나는 이번 여행에서 평강공주를 찾아 볼 생각이었다. 2005년에 고구려 25대 평원왕을 찾기 위해서는 1400년을 훨씬 넘는 시간을 넘어야 했고 공간 이동도 필수였다. 시공간을 뛰어 넘는 법은 나에게 묻지 말라. 설혹 내가 안다고 해도 나는 답하지 않을 것이다.


고구려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평강공주를 만나지 못하도록 휴전선이 가로막혀 있음에 고구려로 가는 길은 중국으로 나 있었다. 집안(集安)은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다. 오녀산성(五女山城)은 18개의 굽이 길로 만들어져 있었다. 담벽 모양이 삼각형으로 돼있어 외벽이 무너져도 내벽은 안 무너지게 쌓아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재민이란 중국 장수가 "고구려인은 담벽 쌓기의 마술사"라고 했음에도 오녀산성은 유네스코에 중국문화재로 등록됐다니,오호애재(嗚呼哀哉)라~. 방에는 구들이 놓여져 있는 데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니? 너희가 구들을 아느뇨?


우리는 조선족 학교를 방문했다. 여행 이틀째였지만 현지인과 단 한마디의 의사소통도 하지 못한터라 나는 조선족 친구들을 꼭 만나고 싶었다. 간발의 차이였다. 우리가 조선족 학교를 들어선 시간 그들은 방학식을 끝내고 모두 귀가하고 없었다. 우리를 반겨준 교장 선생님은 "조선족 학교 학생들의 성적이 아주 우수하다"고 칭찬을 하며 "비록 시골학교지만 도시 우수학교 못지않게 잘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집안시 박물관에서의 일이다. 서총엔 낚싯바늘 낫 도끼 기와 등 국내성에서 출토된 유물이,중총엔 광개토왕릉비 탁본이 걸려 있었다. 동총엔 50㎏이나 나가는 갑옷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50㎏의 갑옷을 입고 전쟁을 하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환도산성은 곡식을 까불어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키(쭉정이 등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구)모양의 작은 성이다. 전쟁이 나자 적은 성 밖을 포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물자 수송을 차단하면 성안의 군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전쟁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 환도성에서 적에게 술을 보내왔다. 적은 당황했다. 술을 선물로 보낼 정도라면 성 안에 좋은 물과 곡식이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성안에서 자급자족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던 적은 조용히 물러났다고 한다.


장군총은 장수왕의 무덤이다. 광개토왕비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해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왕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비는 응회암 4면 모두에 1775자의 비문이 음각돼 시조 주몽의 건국과 광개토왕의 즉위에서 사망까지,또 광개토왕이 주변국가를 정벌하고 영토를 확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광개토대왕릉을 지키는 묘지기의 배정과 준칙이 쓰여 있다는 게 매우 특이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장수왕이 대왕비의 온전한 보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후일 대왕비에 낀 이끼를 털어 내려고 말똥과 소똥을 비에 붙여 태우는 바람에 일부 글자의 훼손이 있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대왕비는 광활한 영토를 개척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보살핀 하늘과 같이 큰 왕의 업적을 호방한 필체로 기록한 기념비인 것이다. 이는 삼국사기 등 중국을 위주로 기록된 사서들과 비교 하면 우리민족의 고구려사를 정립시켜주는 아주 귀한 자료인 셈이다.


고구려 유적을 둘러본 후 우리는 분임토의를 했다. 나는 고구려의 유적을 전시하는 박물관에 한글표기 안내문이 없음을 지적했다. 고구려 유적을 찾는 이의 상당수가 한글해독 가능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21세기,고구려를 찾아 나섰던 나는 평강공주의 e메일 주소조차 얻지 못했다. 평강공주의 출현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평강공주가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그저 이야기 속의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외문화탐방을 함께 했던 50명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기억하며,나 스스로 노력해 언제고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기 때문이다.


강지훈 생글기자 (부산 건국고 2년) namisabo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