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계가 다시 뭉치고 있다. 지금까지 봐왔던 이스라엘이나 미국을 상대로 한 '투쟁' 차원이 아니라 '경제살리기'를 표방하는 실용주의 노선에 따른 것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원유 가스 구리 등 세계 천연자원의 60%를 보유하고 있으나 세계무역 비중은 8%에 그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타개하려는 전략이다.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한 아시아 경제권의 급부상도 이슬람 세계에는 커다란 자극이 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 유럽 등 기존 선진국을 따라잡기는커녕 아시아권에도 밀려나 '세계 경제의 주변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위기 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경제살리기 행보

이슬람권의 경제살리기 행보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말레이시아 이란 이집트 등 57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이슬람기구(OIC)다. 지난 1969년 중동분쟁 중 이슬람 성지인 예루살렘 알악사사원이 폭격당한 데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있는 이슬람국들이 만든 기구다.

OIC의 경제분과격인 이슬람개발은행(IDB)은 지난 6월24∼25일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에서 열린 총회에서 사회간접자본(인프라) 확충을 위해 1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채권펀드'를 만들고 자본금 10억달러 규모의 '이슬람무역금융' 기구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설치키로 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IDB와 민간은행들이 도박·주류 산업에 대한 투자와 대출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10억달러의 자본금을 모아 역내 대형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국제이슬람은행'을 바레인에 설립하기로 결의했다.

OIC는 또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예맨 수도 사나에서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자연재해와 전쟁피해를 입은 회원국들을 지원하는 재해펀드를 설립키로 의견을 모았다.

이와 함께 올 가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확대 개편 때 이슬람 국가를 상임이사국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세력을 모으기로 했다.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의지다.

◆이슬람권의 위기의식

이 같은 움직임은 '힘을 합지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공멸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OIC 57개 회원국들은 세계 인구의 20%인 13억명을 수용하고 있고,세계 천연자원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에 불과할 만큼 경제력이 약하다. 또 지난해 OIC 회원국들이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241억달러로 전체의 4%에 그쳤다. 거대 산유국을 제외할 경우 회원국의 절반이 빈국(貧國)이라는 점도 약점이다.

이 때문에 OIC 내에서는 '뭉쳐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무역장관 다툭 세리 라피다 아지즈는 최근 IDB 총회에서 "유럽연합은 역내 교역비중이 70%에 달하고 아시아도 23%인 데 반해 OIC는 2003년 기준 회원국 간 교역비중이 13%에 불과하다"며 이슬람 자유무역지대 구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정지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