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4. 통계는 살인범도 구할 수 있다

1964년 미국 LA에 사는 젊은 여성 콜린즈는 이곳에서 벌어진 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돼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사건 목격자가 진술한 범인의 인상착의와 특성이 자신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목격자에 따르면 범인은 금발에 말총 머리를 한 백인 여성이었는데 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흑인과 같이 있었으며 노란색 승용차를 타고 있었다.


콜린즈는 이 모든 상황과 일치한 여성이기 때문에 용의자로 구속되었고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측의 주장은 어떤 백인 여성이 목격자의 인상착의와 같을 확률은 1200만분의 1로 극히 작기 때문에(참고로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약 800만분의 1) 콜린즈가 범인이라는 일관된 주장을 폈는데 그 확률계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금발 백인 여성일 확률 1/3,말총 머리를 한 여성 1/10,흑백 혼합 커플 1/1000,콧수염과 턱수염을 기른 흑인 남자 1/40,노란색 승용차 1/10.이 같은 특성과 일치할 확률은 이 숫자들을 모두 곱한 1/1200만이라는 것이 검찰측 주장이었다.


1,2심 배심원들은 검찰측의 확률적 근거에 바탕을 둔 주장(한 여성이 범인의 특성과 일치할 확률이 극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콜린즈는 범인의 특성과 매우 일치하므로 범인임에 틀림없다)을 받아들여 콜린즈가 범인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검찰측의 확률계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검찰측의 계산은 각각의 특성이 독립적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각 특성이 독립적이지 않으므로(중복되는 부분이 있음) 일치할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무시하고 검찰측의 주장인 범인과 특성이 일치할 확률이 1200만분의 1이라는 수치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1,2심의 판결에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 있어서 중요한 확률은 범인의 특성과 일치할 확률이 얼마나 낮은가가 아니라,콜린즈 외에도 다른 커플이 범인의 특성과 일치할 확률이 얼마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콜린즈와 그녀의 애인이 범인의 특성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조건 하에서 범인의 특성과 일치하는 다른 커플이 있을 확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봤다.


LA 지역에 200만 커플이 있을 경우 콜린즈 외에도 범인과 특성이 일치하는 다른 커플이 있을 확률은 약 8%,500만 커플이 있다면 그 확률은 무려 19%나 된다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대법원은 사건과 직접 관계된 올바른 확률계산을 근거로 해서 콜린즈 외에도 범인의 특성과 일치하는 다른 커플이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이 사건의 1,2심 판결을 뒤집고 콜린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의 비슷한 예를 들어보자.미식축구 선수로 유명했던 O J 심슨은 금발의 백인 아내를 살해한 범인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흑인 남편이 백인 아내와 그녀의 애인을 무참하게 살해했다는 혐의로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재판에서 심슨은 명백해 보이는 증거 때문에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경찰은 피살현장에서 범인의 피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그 혈흔에서 채취된 DNA가 심슨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통상 DNA 분석 결과가 우연히 일치할 확률은 1만분의 1.검사측은 심슨이 99.99%의 확률로 살인자라고 결론을 내렸다.


반면 변호사측은 LA 인근의 인구 300만명 중 300명이 같은 DNA를 공유하므로 심슨이 살인자라는 결론은 99.7%의 확률로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심슨이 DNA가 같은 300명 중 한명일 수도 있다며 변호사측의 손을 들어 주어 심슨은 무죄 석방됐다.


김진호 교수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