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국어 학습

(31) 산문 형식의 시
(가)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중략)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 최두석, 『노래와 이야기』 -

(나)
돌담으로 튼튼히 가려 놓은 집 안엔 검은 기와집 종가가 살고 있었다. 충충한 울 속에서 거미 알 터지듯 흩어져 나가는 이 집의 지손(支孫)들. 모두 다 싸우고 찢고 헤어져 나가도 오래인 동안 이 집의 광영(光榮)을 지키어 주는 신주(神主)들은 대머리에 곰팡이가 나도록 알리어지지는 않아도 종가에서는 무기처럼 아끼며 제삿날이면 갑자기 높아 제상(祭床) 위에 날름히 올라앉는다. (중략) 한참 쩡쩡 울리던 옛날에는 오조 할머니 집에서 동원 뒷밥을 먹어왔다고 오조 할머니 시아버니도 남편도 동네 백성들을 곧-잘 잡아들여다 모말굴림도 시키고 주릿대를 앵기었다고. 지금도 종가 뒤란에는 중복사 나무 밑에서 대구리가 빤들빤들한 달걀귀신이 융융거린다는 마을의 풍설. 종가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일을 안 해도 지내 왔었고 대대손손이 아-무런 재주도 물리어받지는 못하여 종갓집 영감님은 근시 안경을 쓰고 눈을 찝찝거리며 먹을 궁리를 한다고 작인(作人)들에게 고리대금을 하여 살아 나간다.

- 오장환, 『종가』 -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 /… 말 속에/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운문과 산문은 어떻게 다른가? 시와 같은 운문은 언어의 배열에 일정한 규율 또는 운율이 있는 글을, 소설이나 수필과 같은 산문은 율격이라는 외형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글을 말한다. (가)에서 ‘말 속에/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는 것은 운문을 쓴다는 뜻이다. 운율의 본질은 반복성(주기성)이다. 일정 간격으로 뛰는 심장은 반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신체 기관이다. 따라서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는 것은 운율을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산문에 운율감이 느껴지는 문장, 예컨대 대구 형식의 문장이나 어구를 반복하는 문장 등을 쓸 수는 있으나, 그것이 주목적은 아니다.

이와 같은 형식적 차이 말고도 내용적 측면에서 운문과 산문은 다르다. 운문은 정서를, 산문은 인물, 시·공간, 사건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주로 전달한다. (가)에서 말한 ‘처용’이 부른 ‘노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서울 밝은 달에/밤들이 노니다가/들어와 잠자리를 보니/가랑이가 넷이도다./둘은 나의 것이었고/둘은 누구의 것인가?/본디 내 것이지마는/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이 노래의 핵심은 ‘~을 어찌하리오?’에 있다. 이런 말투는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마음, 즉 체념의 정서를 드러낼 때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가)의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는 것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내용으로 누가(처용, 귀신, 아내), 언제(밤), 무엇(노래를 부름, 범함, 꿇어 엎드림)을 했는가를 전달하고 있으므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다.

흔히 운문은 마음으로 느끼고, 산문은 머리로 생각하며 감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의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는 시구가 바로 그런 말이다. ‘심장’은 감성, ‘뇌수’는 이성과 관련 있는 신체 기관으로 흔히 말하지 않는가?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그런데 산문시라는 것이 있다. 정서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 시다. 왜 산문시를 쓰는 것일까? 감정은 따뜻한 인간미를 느끼게 하지만 지나치면 불합리할 수 있다. 이성은 이치에 합당한 언행을 하게 하지만 지나치면 차가운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감성과 이성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가)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는 지나친 감정의 약점, 즉 ‘격정의 상처’를 ‘쉬이 덧나’게 한다고 한다. 감정을 잘못 다뤄 상태가 더 나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 즉 ‘다스리는 처방’으로 제시된 것이 이성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이야기로 … 시를 쓰’면서, 즉 산문시를 쓰면서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고 한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바라는 것이다. 충충한 울 속에서 … 이 집의 지손(支孫)들. … 지금도 종가 뒤란에는 … 마을의 풍설. … 한참 쩡쩡 울리던 옛날에는 … 동원 뒷밥을 먹어왔다고 오조 할머니 시아버니도 … 주릿대를 앵기었다고시는 시인데, 행이나 연으로 나누지 않고 운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문장으로 된 것이 산문시다. 그렇다고 산문시에 운율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에는 ‘충충한 울 속에서 … 이 집의 지손(支孫)들.’과 ‘지금도 종가 뒤란에는 … 마을의 풍설.’과 같은 명사로 끝나는 문장이 배치돼 있는데 이는 운율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의 ‘한참 쩡쩡 울리던 옛날에는 … 동원 뒷밥을 먹어왔다고 오조 할머니 시아버니도 … 주릿대를 앵기었다고.’를 ‘~ 먹어 왔다고’ ‘~ 앵기었다고’로 나눠 읽어보자. 그러면 ‘~고’가 반복되는 운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산문시가 운율의 단위를 문장 또는 문단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옛날에는 … 동네 백성들을 곧-잘 잡아들여다 모말굴림도 시키고 주릿대를 앵기었다… 지금도 … 아무 일을 안 해도 지내 왔었고 … 먹을 궁리를 한다고 작인(作人)들에게 고리대금을 하여 살아 나간다산문시는 이야기 전달을 중시한다고 했다. (나)에서 전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종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옛날에’ ‘지금도’(언제) ‘오조 할머니 시아버니’ ‘남편’ ‘종가에 사는 사람들’ ‘종갓집 영감님’ 등(누가)이 ‘동네 백성들을 곧-잘 잡아들여다 모말굴림도 시키고 주릿대를 앵기었다’ ‘아무 일을 안 해도 지내 왔었고’ ‘먹을 궁리를 한다고 작인(作人)들에게 고리대금을 하여 살아 나간다’ 등(무엇)을 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보면 종가 사람들이 위세를 부리며 마을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종가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부정적이다. ‘종가’는 ‘돌담으로 튼튼히 가려 놓’은 ‘층층한 울 속’에 있는 집으로 묘사됐는데, 이는 종가가 외부와 단절된 집임을 느끼게 한다. 또한 ‘지손(맏이가 아닌 자손에서 갈라져 나간 파의 자손)’들이 ‘거미 알 터지듯 흩어져 나’갔다 하거나 ‘오래인 동안 이 집의 광영을 지키어 주는 신주들’이 ‘제삿날이면 갑자기 높아 제상 위에 날름히 올라앉는다’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종가의 번성과 제사 중시에 대한 작가의 풍자적 태도를 드러낸다. ☞ 포인트
신철수 성보고 교사
신철수 성보고 교사
① 운문과 산문의 차이는 율격과 같은 외형적 규범의 유무에 있음을 알아 두자.

② 운문은 정서를, 산문은 인물, 시·공간, 사건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주로 전달한다는 것을 알아 두자.

③ 산문시가 운율의 단위를 문장 또는 문단에 둔다는 것을 알아 두자.

④ 산문시에 담긴 이야기의 주인공과 사건에 대해 시적 화자의 태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드러낼 수 있음을 알아 두자.

⑤ 공간적 배경의 묘사를 통해 대상의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아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