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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56호 2019년 12월 9일

인문학 이야기

명예를 잃어버려 의미 없는 삶을 끝내려는 아이아스…인간은 고통을 피할 순 없지만 대처하는 방식은 다르죠

나는 왜 사는가? 내가 삶을 연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스트리아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1905~1997)은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그가 생존한 이야기를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1946년)이란 책에 생생하게 기술했다. 그는 1942~1945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비롯한 수용소 네 곳에서 노역을 하면서 살아남았다. 그와 함께 감금돼 있던 부모와 동생, 그리고 임신한 아내가 죽는 과정을 목격했다.

프랭클은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출구가 없는 캄캄한 심연에서 괴로워했다. 특히 자신의 분신인 가족과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뱃속에 있는 미래의 희망인 자식의 죽음은 그를 정신적·영적으로 가사(假死) 상태에 빠지게 했다.

의미(意味)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프랭클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관찰한 동료 유대인들의 행동을 토대로 인생이 품고 있는 소중한 비밀을 알게 됐다.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고통은 자신의 소홀, 실수 혹은 잘못을 통해 생기기도 하지만, 자신과는 상관없이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한다. 성서에 등장하는 욥은 당대 최고 부자였다. 그러나 욥기에 의하면 그는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열 명의 자식마저 사고로 사망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온몸이 몹쓸 피부병에 걸려 길바닥에 앉아 기왓장 조각으로 몸을 긁는 신세로 전락한다. 프랭클이나 욥에게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과 사라진 사람들의 차이를 발견했다. 생존한 사람들은 자신이 생존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 목적은 남들이 보기에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소박함, 혹은 완성하지 못한 책을 출간하고 싶은 희망, 사랑하는 연인이나 손주를 보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것들이다. 프랭클은 자신이 의미를 부여한 목적이나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런 희망을 포기한 사람보다 혹독한 환경을 잘 견뎌 생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랭클은 의미가 있는 삶을 ‘로고스(logos)’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 개념을 이용해 설명한다. 로고스는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해 성취시키는 훈련이다. 인생을 작동시키는 원동력은 프로이트가 말한 ‘쾌락(快樂)’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고, 그러기에 남들에게서 아름다운 삶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데 있다.

무의미(無意味)

만일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기 위해 ‘의미’있는 임무를 찾지 못한다면, 인간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중독(中毒)은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 의존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는 도피 행각이다. 이 도피는 나의 개성과 원기를 말살해 점점 나를 무생물로 만든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고백론》(1882)에서 인간의 무의미와 허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 삶은 서 있다.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잠을 자지만, 이것은 인생이 아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성적이라고 여길 만한 인생의 성취에 대한 바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열망한다면, 그것은 내 욕망을 채우든 채우지 않든, 그것은 아무 소용 없다.(…) 인생의 진실은 이것이다. 인생은 무의미(無意味)하다. 나는 연명하고 연명했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가파른 절벽에 도착했다. 멈출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눈을 감을 수도 없다. 내 눈 앞에는 고통과 완벽한 소멸인 죽음밖에 보이지 않는다.”

아이아스는 지난밤 광기에 빠져 가축을 살육한 자신의 행각을 보고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리스 군인들을 이끌고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성벽과 같은 아이아스’는 온데간데없고, ‘광인 아이아스’만 남았다. 영웅에 어울리지 않는 창피한 짓이 시간이 지나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명예를 가장 소중한 삶의 가치로 여겨온 아이아스에게 자신의 행동은 치명적이어서 돌이킬 수 없다.

아이아스는 가축을 살육한 칼을 들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후미진 곳에 갈 것이다. 이 칼은 트로이 왕자로부터 빼앗은 전리품이다. 그는 이 칼을 특별한 방식으로 ‘정화’할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깨닫는다. “나는 적을 미워하되, 나중에는 친구가 될 수 있을 만큼 미워하고, 친구에 관해 말하자면 언제까지나 친구로 남지 않을 것처럼 베풀고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러고는 아내 테크멧사에게 막사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마지막 길을 보지 말라고 말한다. 전우들에게는 자신의 이복동생 테우크로스에게 뒷일을 부탁하라고 당부한다.

자기희생(自己犧牲)

아이아스는 숲과 덤불을 지나 해변의 후미진 곳에 도착했다. 그는 헥토르에게 뺏은 칼을 칼집에서 꺼낸다. 자신의 방패와 투구, 창을 질서정연하게 옆에 세운다. 그러고는 모래를 깊이 파서 칼머리를 단단히 묻고 칼끝을 직각으로 세웠다. 그는 다시 흙을 손으로 모아 칼이 쓰러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고정시킨다. 칼끝이 정확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 올랐다. 영웅 아이아스는 삶의 의미를 잃었다. 그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기에는 자신의 행적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비참하다. 그의 선택은 자살이었다.

아이아스는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 인간은 고통을 견딜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생존하면서 고통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고통이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신호등이란 사실을 안다. 그러나 고통의 ‘무의미’는 견딜 수 없다. 무의미는 인생을 망치는 시퍼런 칼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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