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인문학 산책 -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34) 시기(猜忌)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시기하는 여인’(1819~1822년, 유화, 72×58㎝). 프랑스 리옹미술관 소장.
테오도르 제리코(1791~1824)의 ‘시기하는 여인’(1819~1822년, 유화, 72×58㎝). 프랑스 리옹미술관 소장.
기원후 2세기 인도 사상가 파탄잘리는 인도의 찬란한 세계 유산인 ‘요가’를 체계화하면서 요가와 관련한 다양한 경전을 집대성해 《요가수트라》란 네 권의 책으로 편찬했다. 파탄잘리는 인간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잡념을 제거하고 더 나은 자신이 되도록 수련하면서 네 가지 마음을 획득한다고 했다. 이는 후대 불교인들에게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셀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숭고한 마음 네 가지’로 전수됐다.

사무량심(四無量心)

첫 번째는 ‘마이트리(maitri)’다.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리는 한자로는 ‘자(慈)’로 표현됐다. ‘자’는 흔히 사랑으로 번역된다. 사랑은 내가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느끼고 가하는 감정이나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고, 상대방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미리 살펴 아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상대방이 즐거워하는 것을 함께 즐거워하고 그것을 마련해주려는 애틋한 마음이다.

두번째는 ‘카룬나(karuna)’다. 카룬나는 한자 ‘슬플 비(悲)’로 번역된다. 슬픔이란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서로 등을 대고 함께 울 수 있는 마음이며 그 이웃이 슬픈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미리 헤아리고 그 방안을 마련해주는 용기다.

인간이 ‘자비(慈悲)’라는 가치를 자신의 생각과 말, 행동을 통해 실천하면, 이보다 더 심오한 단계의 마음으로 진입한다. 바로 ‘무디타(mudita)’다. 무디타는 한자로 ‘기쁠 희(喜)’로 번역된다. 기쁨이란 한마디로 친구의 출세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친구의 불행을 함께 슬퍼하기는 쉬워도, 그(녀)의 행복을 함께 즐거워하기는 비교적 힘들다. 기쁨이란 이웃이 땅을 살 때 정말 기뻐하고 그곳에서 함께 우정을 쌓으려는 아량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힘든 상태가 바로 ‘우펙샤(upeksha)’다. 우펙샤는 한자로 ‘사(捨)’다. ‘버릴 사’로 알려진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평정심이다. 평정심이란 깊은 묵상을 통해 자신에게 감동적인 인생의 임무를 찾아 흔들림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신에게 옳은 것에 진정성이 있다면 목숨을 바칠 정도로 간절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시기와 흉내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립》이라는 에세이에서 인간들이 쉽게 탐닉하는 값싼 감정들을 경고한다. 교육은 자신과 상관없는 사실이나 숫자를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법이 되는 자신만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는 과정이다. 교육이란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자신의 머리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원석(原石)을 발굴해 그것을 스스로 빛나도록 다듬는 수련이다. 에머슨은 인간이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시기는 무식이며, 흉내는 자살행위”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확신한다.

‘자립(自立)’이란 자신의 능력과 잠재적인 힘을 신뢰하는 용기다. 내가 지니지 않은 부나 명예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나는 나에게 할당된 운명을 가지고 나의 길을 용감하게 헤쳐나갈 뿐이다. 자립을 추구하는 자는 대중의 오해를 감당할 수밖에 없다. 에머슨은 말한다. “피타고라스는 당시 오해를 받았습니다. 소크라테스, 예수, 루터,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정결하고 지혜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은 모두 그랬습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자비롭지 못한 인간은 남들에게 자비로울 수 없다. 자비를 수련하지 않은 자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할 수도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 엄습하는 감정이 바로 ‘시기’다.

아이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아킬레우스가 이 전쟁에서 사망하자, 아킬레우스에게 부여됐던 명예가 당연히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아이아스는 그 명예가 자신이 아니라 경쟁자인 ‘말만 잘하는’ 오디세우스에게 가자, 미몽(迷夢)에 사로잡혀 무구와 관련된 자들을 살육하러 나선다.

시기

아이아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미몽에 빠져,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오디세우스에게 주기로 결정한 트로이 전쟁의 리더들인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그리고 자신에게 와야 할 무구를 가로챈 오디세우스를 죽이러 나선다. 아이아스는 ‘장님’이 돼 이들이 아니라 소 떼와 양 떼를 마구잡이로 죽인다.

아이아스는 ‘시기’라는 병에 걸려 사리를 분별할 수 없다. ‘시기’에 해당하는 그리스 단어 ‘프소노스(phthonos)’는 ‘부러움, (질시를 통해 나오는) 악의, 원한’이란 의미를 지닌다. 아이아스는 시기로 장님이 됐다. 그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어두운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에게 경고한다. “그를 잘 보아라. 결코 신들에 대항해 오만한 말을 내뱉도록 허용하지 말라. 혹은 체력과 재력으로 누구를 능가한다고 해서 우쭐하지 말라. 무릇 인간이란 하루아침에 일어설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넘어질 수도 있다. 신들은 신중한 자들을 좋아하고 그 경계를 넘어서는 자들을 미워한다.”(129~133행) 시기라는 미움의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온다. 시기하는 순간, 가장 해를 입는 당사자는 바로 자신이다.

기억해주세요

질투와 시기에 눈멀어 무차별 살육하는 아이아스…미움의 화살로 가장 큰 상처를 입는 자는 바로 자신
교육이란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자신의 머리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자신’이라는 원석(原石)을 발굴해 그것을 스스로 빛나도록 다듬는 수련이다. 19세기 미국의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인간이 일정한 교육을 받으면 “시기는 무식이며, 흉내는 자살행위”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