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시사경제 - '서머리 산업'

도서·방송에서 영화·스포츠까지
미디어 스타트업 이색 시도 잇따라

경제·경영서도 30분이면 뚝딱
스포츠는 AI가 주요 장면 요약
핵심만 정리해 주는 '서머리 산업'이 뜬다…"시간 없으시죠?… 그럼 영화·책·뉴스 요약해 드립니다"
전자책업체 밀리의 서재는 지난 8월 새로운 방식의 도서 요약 콘텐츠 ‘챗북’을 선보였다. 책 한 권의 주요 내용을 15~20분 분량으로 압축해 메신저 채팅 창에서 대화하듯 설명해 주는 서비스다. 전문용어가 많은 경제·경영 서적도 알기 쉽게 전달해 반응이 좋다. 동영상 콘텐츠업체 알려줌은 TV 프로그램을 5분 정도로 요약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국과 계약을 맺고 공급받은 콘텐츠 중 핵심 장면만 뽑아 재가공해 판매한다.
바쁜 현대인 끌어당기는 서머리 산업

출근길 버스 안에서 책 한 권을 전부 읽을 수 있다면? 본방송을 놓친 드라마의 첫 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줄거리를 단숨에 알 수 있다면?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서머리(summary) 콘텐츠’ 시장이 커지고 있다. 도서나 TV 프로그램에서 시작해 영화, 스포츠 중계 등으로 영역이 넓어지는 추세다. 최근 서머리 산업을 주도하는 것은 밀리의 서재나 알려줌 같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다. 핵심 타깃인 10~30대의 취향에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게 이들의 강점이다.

유튜브와 팟캐스트에서는 서머리가 주요 콘텐츠로 이미 자리잡았다. 유튜브에서 영화 제목을 검색하면 5분 내외로 영화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해설까지 해 주는 채널이 수두룩하다. ‘고몽’ ‘소개해 주는 남자’ 등 구독자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곳도 있다. 고몽이 2006년 개봉된 영화 ‘캐쉬백’을 요약해 만든 9분짜리 동영상은 조회 수가 600만 건을 넘었다. 유명 팟캐스트 서비스인 팟빵에서는 도서 관련 방송채널이 1200개를 웃돈다. 상당수가 책 소개 또는 책의 주요 내용을 알려주는 콘텐츠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은 각종 시사 현안을 정리한 이메일을 뉴스레터 형식으로 회원들에게 보낸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에 대한 드론 공격을 다룬 <불탄 사우디의 심장> 편에서는 ‘그런데 불은 왜 난 거야?(사건 원인)’, ‘그럼 예멘은 사우디에 왜 그랬대?(양국의 외교 관계)’ 등의 궁금증을 젊은 세대가 쓰는 간결한 문체로 풀어냈다. 지난해 12월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까지 6만 명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

AI가 스포츠 중계 주요 장면 요약

스포츠 팬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콘텐츠 중 하나인 ‘경기 하이라이트’에서는 대형 정보기술(IT)업체들의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다. 과거에는 경기 종료 후 몇 시간이 지나 사람이 편집한 장면이 올라오는 서비스가 많았다. 최근 선보인 네이버의 ‘AI 득점 하이라이트’와 엔씨소프트의 ‘페이지’ 등은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했다. 이들 서비스는 3시간짜리 프로야구 경기가 끝나면 5~10분 안에 하이라이트 장면을 축약해 보여준다.

서머리 산업을 키우는 동력은 시간이 부족한 젊은 세대의 새로운 소비문화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콘텐츠는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다 찾아볼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잡코리아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4.5%가 자신이 ‘타임푸어족(시간 빈곤층)’이라고 답했다. IT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지고 데이터 통신요금이 저렴해진 것도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의 등장을 촉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