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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10호 2018년 10월 15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30)] 이태준 《복덕방》


복덕방과 세 노인

서울의 한 복덕방에서 세 노인이 소일한다. 복덕방 주인인 서 참의는 구한말 훈련원 참의로 봉직하였으나 군대 해산 후 복덕방을 차린다. 화려한 무관 시절을 돌아보면 서글프기도 하지만 가옥 중개업으로 차차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자 낙천적인 그는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게 된다. 안 초시는 형편도 성격도 서 참의와 대조적이다. 그는 사업에 거듭 실패하여 생활의 기반을 모두 잃었으며 말끝마다 ‘젠장’ 아니면 ‘흥!’하는 콧웃음을 붙이며 불만족으로 점철된 일상을 산다. 서 참의의 훈련원 시절 친구인 박희완 영감은 온화한 성품으로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에 의지하여 대서업을 하겠다며 복덕방에서도 열심히 일어 공부를 한다. 안 초시는 더 늙기 전에 재기하여 다시 세상과 교섭하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었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그는 박희완 영감이 알려 준 정보를 믿고 딸을 부추겨 부동산에 투자한다. 신항구 건설 계획을 미리 입수하여 땅을 산 것이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도 항구는 건설되지 않고 땅값은 전혀 오르지 않는다. 박희완에게 정보를 준 사람이 자신이 산 땅을 처분하기 위해 사기극을 벌인 것이었다.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 안 초시는 음독자살하고 만다.

이 서사의 이면에는 노년의 나이도 비껴가지 않는 강한 욕망이 도저히 흐르고 있으며 그 욕망의 대상은 바로 돈이다. 작품 시작 부분에서 안 초시는 몽상을 하는데 몽상의 소재는 돈이며 몽상의 내용은 단 천 원을 들여 땅을 사서 일만 구천 원으로 불리는 것이다. 이런 욕망은 결국 부동산 투기로 이어지고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런데 그 욕망은 그의 것만은 아니다. 성공한 무용수 안경화 역시 돈에 대한 욕망이 아버지 못지않다. 솜이 낡아 홑옷 같아진 걸 입고 다니는 아버지가 부탁해도 샤스 한 벌 해 주는 법이 없고 안경다리 고칠 돈도 한 번에 줄 걸 오십 전씩 찔금찔금 나눠서 주는 바람에 안 초시는 종이 노끈으로 안경다리를 해서 쓰고 다닌다. 그런 안경화가 아버지가 가지고 온 부동산 정보에 솔깃하여 연구소를 저당 잡히고 거금 삼천 원을 투자한 것이다. 그리고 돈을 날리자 아버지를 박대하여 안 초시로 하여금 “재물이란 친자간의 의리도 배추 밑 도리듯 하는 건가?” 하고 탄식하게 한다.

궁핍한 사회와 집착

안 초시의 돈에 대한 집착은 허황된 그의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 궁핍한 사회상 때문이기도 하다. 서 참의는 아직 현역에서 중학생 졸업반인 아들의 학비를 댄다. 박희완 영감도 대서업 허가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것으로 보아 생계의 궁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선에서 은퇴하여 소소한 여흥으로 소일하며 손주의 재롱을 보는 평화로운 노년은 이들과 거리가 멀다. 거리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그림 같은 문화주택이 늘어나고 ‘가주 튀어나온 메기처럼 미낀미낀한 자동차가 등덜미에서 소리를 꽤 지르는’ 시대의 풍경으로 진단되는 극심한 빈부 차는 “돈만 가지면야 좀 좋은 세상인가!”라는 안 초시의 탄식을 일면 이해하게도 한다.

이 작품은 지나온 생애의 요약, 외양 묘사와 말투, 성격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일화 등이 유기적으로 서술되어 인물을 선명하게 창조하고 있다. 안 초시가 어떤 관상쟁이의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넣고 주먹을 쥐어야 재물이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고 ‘늘 그렇게 쥐노라고 했지만 문득 생각이 나 내려다볼 때는 으레 엄지손가락이 얄밉도록 밖으로만 쥐어져 있’어서 ‘연습 삼아 엄지손가락을 먼저 안으로 넣고 아프도록 두 주먹을 꽉 쥐’는 연습을 하는 장면 등은 생동감 있는 인물 묘사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겠다.

그리고 또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한 가지는 세 노인으로 대표되는 구세대와 안경화로 대표되는 신세대 간의 눈에 뵈지 않는 갈등이다. 안 초시의 주검을 발견한 서 참의가 관청에 가려고 하자 안경화는 자신의 명예를 지켜달라며 눈물로 신고를 만류한다. 아버지의 음독 사실을 숨긴 그녀는 호화스러운 장례식을 치른다. 안 초시의 영결식장을 찾은 조객들은 안 초시가 아닌 무용가 안경화를 보아 온 사람들이다. 신식으로 차려 입은 그들이 못마땅한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은 묘지까지 가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데 이는 식민지의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구세대의 좌절과 비애가 잘 드러난 장면이라 하겠다.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완성자’ 이태준의 대표작

1937년 『조광』에 발표된 이 작품은 이태준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이태준은 우리 문학사에서 근대적인 단편소설의 한 완성자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이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측정되는 인간 소외 현상,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탈락한 이들의 아픔, 배금주의의 물결 속에서 무너져 가는 가족 관계 등 암울한 세태를 여실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하며 고령화 현상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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