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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06호 2018년 9월 10일

문학이야기

[문학이야기 (26)] 김금희《너무 한낮의 연애》

"야 너, 최소한이라도 꾸미고 다녀. 널 위해 하는 얘기야. 아이고. 같이 다니면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 좋은 시절 다시 안 와. 좀 있으면 값 떨어져. 그리고 연극도 좋고 가당찮은 대본도 좋은데 밥벌이는 하고 살아. 어떻게 된 게 하루에 이천원으로 하루를 삐대? 야! 나도 어려워! 나도 힘들어! 야이 씨, 너 그동안 나한테 받아먹은 거 다 내놔. 일괄 계산하라고 이 계집애야."

양희와의 재회

대기업 영업팀장 필용은 시설관리 담당자로 좌천된다. 점심 시간이 되면 필용은 이십 분을 걸어 맥도날드로 식사를 하러 간다.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던 그는 맞은편 건물의 현수막에서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연극 제목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자신이 뭣 때문에 여기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양희와 재회하기 위해서였다.

양희는 필용의 대학 과 후배. 16년 전 대학 시절 필용은 종로의 어학원에서 우연히 양희와 같은 강의를 듣고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고 도서관에 가는 생활을 반복한다. 필용은 양희와의 대화가 즐거웠는데 그것은 양희가 필용의 허황된 거짓말과 과시를 묵묵히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비쩍 마르고 재미없는 희곡을 끊임없이 쓰던, 필용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던 양희가 어느 날 사랑의 고백을 한다. 햄버거 주문을 부탁하던 고저 없는 톤으로, 선배 나 선배 사랑하는데. 느닷없고 맥락 없고 설레는 조짐도 없었건만 고백은 고백이었고 필용은 다음 날부터 매일 한낮에 양희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필용은 태연을 연기하면서도 어떤 기쁨, 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이었다.’

점심시간에 하는 연극

그 시절 그 양희가 쓰던 지독히 재미없던 연극 대본이 지금 공연되고 있는 것이다. 연극은 점심시간 직장인을 위한 40분짜리 미니극이었다. 관객은 많아야 서너 명이었고 온몸에 타이츠를 덮어 쓴 배우, 즉 양희가 관객 중 한 명을 무대로 불러올린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역시 의자에 앉은 관객을 응시한다. 둘은 내내 서로를 응시한다. 그게 전부다. 응시 끝에 울음을 터뜨리는 관객도 있다.


양희의 사랑은 9개월간 지속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깜박 잊을 뻔했다는 투로,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 할 때까지.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한 적 없었지만 어쨌든 그것은 실연이었고 필용은 납득하지 못한다. 필용은 양희를 설득한다. 양희의 매력을 상찬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모든 것들에 사탕발림을 하다가 돌변해 물어뜯기 시작했다.’

“야 너, 최소한이라도 꾸미고 다녀. 널 위해 하는 얘기야. 아이고. 같이 다니면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 좋은 시절 다시 안 와. 좀 있으면 값 떨어져. 그리고 연극도 좋고 가당찮은 대본도 좋은데 밥벌이는 하고 살아. 어떻게 된 게 하루에 이천원으로 하루를 삐대? 야! 나도 어려워! 나도 힘들어! 야이 씨, 너 그동안 나한테 받아먹은 거 다 내놔. 일괄 계산하라고 이 계집애야.”

심한 말을 사과하고

이후 필용은 양희를 볼 수 없었다. 필용은 모진 열병을 앓았고 열이 내리자 문산 양희네를 수소문해 찾아간다. 양희의 집은 지독히도 가난했다. 가난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 같던 팔용조차 놀라버릴 만큼 가난했다. 집이라기보다 굴에 가까운 그곳은 부엌과 방의 경계가 벽돌 네 장 높이로 올린 구들이 다였고 수챗구멍에서 퉁퉁 분 라면 가닥이 올라와 있었다. 양희가 팔용을 데려다 주면서 문득 생각난 듯 선배 왜 왔지? 했을 때 필용은 그냥 근처를 지나다가라고 얼버무렸다. 필용이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양희는 동네 어귀의 느티나무를 가리키며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했다. 필용은 양희 뒤에 서서 양희에게로 손을 뻗어보았다.

공연의 마지막 날 유일한 관객 필용이 무대에 오른다. 양희를 마주본 필용은 머플러를 풀어서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고 눈을 맞추다가 이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시간이 다하고 나오려는데 무대 인사를 끝낸 양희가 들어가지 않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양희는 ‘두 팔을 들어 어깨너비가 넘게 벌렸다. 그 어느 밤의 느티나무처럼. 그리고 바람을 타듯 팔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었다.’

이 독특하기 짝이 없는 소설은 발아하지 못한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 용기 없음으로, 구애의 공을 던지는 방법을 모르는 미숙함으로 또는 연애 감정에 젖은 순간에도 내려놓지 못했던 계산속 때문에 싹틔우지 못했던 사랑. 밀쳐진 기억 저변을 흐르다 아주 가끔 소환되는, 온전히 내 것인 적 없었으니 상실감조차 제대로일 수 없는, 스러지지 않고 멈춰 있되 손에 잡히지 않는 형해 같은 사랑. 어떤 사랑은 이렇게 존재한다.

어떤 사랑일까

필용은 문산 양희네에서 돌아오던 밤 전율했던 사랑이 없어졌다고 믿었었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날 돌아오는 길에서 깨닫는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임을. 삶이 흔들리는 중년에 이른 필용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뭔가가 바뀌었을까’ 지극히 무용한 질문을 하다가 ‘오래 울고 난 사람의 아득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질문들을 하기에 여기는 너무 한낮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환하고 환해서 감당할 수조차 없이 환한 한낮.’ ‘필용은 가로수 밑에 서서 코를 팽하고 풀었다.’ 필용이 이외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손은주 < 서울사대부고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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