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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김금희《너무 한낮의 연애》

    "야 너, 최소한이라도 꾸미고 다녀. 널 위해 하는 얘기야. 아이고. 같이 다니면 내 얼굴이 화끈거려서. 좋은 시절 다시 안 와. 좀 있으면 값 떨어져. 그리고 연극도 좋고 가당찮은 대본도 좋은데 밥벌이는 하고 살아. 어떻게 된 게 하루에 이천원으로 하루를 삐대? 야! 나도 어려워! 나도 힘들어! 야이 씨, 너 그동안 나한테 받아먹은 거 다 내놔. 일괄 계산하라고 이 계집애야."양희와의 재회대기업 영업팀장 필용은 시설관리 담당자로 좌천된다. 점심 시간이 되면 필용은 이십 분을 걸어 맥도날드로 식사를 하러 간다.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던 그는 맞은편 건물의 현수막에서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연극 제목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자신이 뭣 때문에 여기 와서 점심을 먹고 있는지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양희와 재회하기 위해서였다.양희는 필용의 대학 과 후배. 16년 전 대학 시절 필용은 종로의 어학원에서 우연히 양희와 같은 강의를 듣고 맥도날드에서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고 도서관에 가는 생활을 반복한다. 필용은 양희와의 대화가 즐거웠는데 그것은 양희가 필용의 허황된 거짓말과 과시를 묵묵히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비쩍 마르고 재미없는 희곡을 끊임없이 쓰던, 필용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던 양희가 어느 날 사랑의 고백을 한다. 햄버거 주문을 부탁하던 고저 없는 톤으로, 선배 나 선배 사랑하는데. 느닷없고 맥락 없고 설레는 조짐도 없었건만 고백은 고백이었고 필용은 다음 날부터 매일 한낮에 양희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는다.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