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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73호 2017년 11월 6일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 기업인

[한국경제 이끄는 기업·기업인] <34> 전문경영인 손길승

우리나라의 전문경영인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은 아마도 손길승일 것이다. 오너 가족이 아닌데도 1998년 SK그룹 회장이 됐 고, 2003년에는 전경련 회장으로도 선임됐다. 전경련은 대기업 오너, 즉 소유경영자들의 모임인데 전문경영자인 손길승을 회장으로 모 신 것이다.

사업 파트너이자 동지

1965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손길승은 중소기업인 선경직물(SK의 전신)에 입사했다. 대기업에도 충분히 갈 수 있던 그가 작은 방직공장을 선택한 것은 당시 부사장이던 최종현의 포부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최종현은 후일 SK를 세계적 기업으로 길러내는 창업 1세대 오너 기업가다(생글생글 5월22일자).

손길승은 회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일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라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1971년 당시 선경그룹은 대연각호텔 건물(지금의 명동 입구 대연각타워)의 9~11층 건물을 임차해서 쓰고 있었다. 그해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호텔에 큰불이 났고 선경 사무실도 화염에 휩싸였다. 손길승은 선경직물의 경리과장이었다. 회사 서류들이 타버린다면 큰일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그는 불도 다 꺼지기 전에 사무실로 뛰어 올라가 금고와 서류들을 챙겨나왔다. 회사 일을 자기 목숨만큼 중히 여겼던 셈이다.

최종현 회장은 그런 손길승을 사업 파트너이자 동지로 여겼다. 회사의 거의 모든 결정을 그와 상의해서 처리했다. 그렇게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일도 맡겼다. 섬유회사에 불과하던 선경이 자기보다 10배나 큰 공기업, 유공을 인수해서 종합에너지 기업으로 변신하는 과정,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고 세계 최초로 CDMA 방식 무선통신의 상용화에 성공한 것 등 2000년 중반까지 SK그룹이 성장을 거듭하는 과정에 손길승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98년 최 회장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최대 주주 지위를 상속받은 최태원과 최재원 등은 손길승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2003년에는 전경련 회장에까지 오른 것이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그룹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손길승 회장 이전에도 성공한 전문경영인은 있었다. 1969년 두산그룹의 오너이던 박두병은 동양맥주(OB맥주)의 직원이던 정수창을 사장에 임명했다. 박두병은 두산그룹의 창업자인 박승직의 장남이다(박승직에 대한 글은 생글생글 1월16일자 게재). 1973년에는 그룹의 회장으로 추대한다. 정수창은 상공회의소 회장도 지냈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직원이 오너경영인의 반열에 오른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그 후로 현대그룹의 이명박 회장, 삼성생명의 이수빈 회장, 삼성전자의 윤종용 부회장과 권오현 부회장, LG그룹의 김쌍수 부회장 같은 사람들이 전문경영인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일에 미친 사람들

이들은 오너라고 불리는 지배주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회사를 경영했는데, 오너가 없는 상태에서 실질적 오너 역할을 했던 전문경영인도 있었다. 1981년 기아자동차그룹 오너이던 김상문 회장이 본인 소유 주식의 의결권을 노조와 공채 1기 출신인 김선홍 사장에게 맡겼다. 이로써 김선홍은 전문경영인으로서 그야말로 경영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오너가 없는 ‘미국식’ 전문경영인 체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7년 기아자동차그룹은 부도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성공한 전문경영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회사 성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손길승, 이명박, 윤종용 모두 ‘일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둘째는 언제든 물러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주주인 오너들이 안심하고 그들에게 회사를 통째로 맡길 수 있었다. 많은 기업이 창업자를 지나 3세, 4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전문경영인들이 많이 나와서 3세, 4세 오너와 손을 잡고 회사를 재건해 내야 한다. 이글을 읽는 젊은이 중에 손길승 같은 전문경영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기억해 주세요

손길승은 SK의 전신인 선경직물에 취직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 그는 다른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으나 최종현 회장의 포부에 감동에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선경직물에 들어갔다. 그는 회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최 회장은 마침내 그를 부하직원이 아닌 사업파트너이자 동지로 여겼다고 한다. SK그룹의 발전에 그의 손길이 묻지 않은 것이 없다.

김정호 <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kim.chungho@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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