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2) 계열사 지원했다고 배임죄… "적대적 M&A는 막게 해야"
기업그룹은 그룹 전체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일사불란하게 수행해야 할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상법은 기업그룹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그룹 내 한 회사가 부실해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예상된다고 하더라도 그룹 내 다른 회사가 자금 대여 등 지원을 하면 지원 주체인 회사의 이사가 상법 및 형법 등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문제에 관한 리딩 케이스는 2012년 7월12일 대법원 판결이다.

[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2) 계열사 지원했다고 배임죄… "적대적 M&A는 막게 해야"
부실 자회사에 대한 무담보 대출

피고인 갑은 A그룹 전체를 완전히 지배하는 대주주다. A그룹에 속하는 회사 중 A회사가 모회사이고, 그 아래 자회사로 B회사가 있고, B회사의 자회사이자 A회사의 손회사인 C가 있다. A회사가 B회사 주식을 43.43%, B회사가 C회사 주식을 92% 소유하고 있다. 2005년 1월께 갑에 반대하는 주주 을 등이 A회사에 대해 적대적 기업 인수를 시도했다. B회사 대표이사를 겸하고 있는 갑은 이를 방어하고자 B회사가 40억원을 무담보로 대여하는 형식으로 C회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C회사는 이 돈으로 A회사 주식을 매수했다.

C회사는 설립된 지 7개월 정도 된 자본금 30억원의 신생 회사다. 나아가 C회사는 이전에 A회사 주식을 A회사 직원 주주들로부터 외상으로 인수해 이미 약 80억원의 주식매수대금 채무까지 부담하고 있었다. 피고인 갑이 B회사 자금 40억원을 C회사에 무담보로 대여하면서도 상당하고도 합리적인 채권 회수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던 것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하는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대법은 경영상의 판단으로 인정하지 않아

이 사건에서 피고인 갑은 정당한 경영권 방어방법을 동원한 것이고, B회사가 그룹 본부를 통해 C회사가 보유한 A회사 주식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으므로 담보를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어 손해 발생 위험도 없기 때문에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그룹 전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것이 없다는 점도 논거로 들었다.

원심인 서울고등법원은 갑의 주장을 대체로 수긍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 갑의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충분한 담보를 제공받는 등 상당하고도 합리적인 채권 회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대여해 줬다면 그와 같은 자금 대여는 타인에게 이익을 얻게 하고 회사에 손해를 가하는 행위로 회사에 대해 배임 행위가 된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해 서울고법에 환송했다.

대법원은 “회사의 이사는 단순히 그것이 경영상의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배임죄의 죄책을 면할 수는 없으며, 이런 이치는 그 타인이 자금 지원 회사의 계열 회사라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며 “적대적 인수 시도와 다른 주주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피고인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같이 계열사 지원으로 이사가 민·형사 책임을 진 사건이 꽤 많다.

많은 나라가 ‘기업그룹 이익’ 인정

기업그룹의 계열회사 지원 방법은 단순 자금 대여, 채무보증, 유상증자 참여, 부동산 저가 매각 등 자산 양수도, 합병, 분할, 채무 면제, 매입품의 단가 인상, 옵션계약 체결 등이 있다. 대법원은 하나의 주식회사는 다른 회사로부터도, 대주주로부터도 독립된 하나의 법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 법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배임죄는 그룹 소속 기업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적용되며,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계열회사의 이익과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해외에는 기업그룹의 개념 및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하는 나라가 많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이른바 ‘로젠블룸 원칙’이 통용된다. 1985년 프랑스 대법원이 기업그룹의 개념 및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한 판결이다. 이와 같은 판결로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하는 국가는 프랑스, 벨기에 외에도 키프로스, 덴마크,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네덜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스페인, 스웨덴, 영국 등이 있다.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는 아예 입법으로 기업그룹의 이익을 인정한다.

최준선
최준선
“계열사 독립성에 집착…형식논리 빠질 수도”

근본적으로 한국 회사법은 기업그룹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룹의 이익 개념을 인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부실계열회사인 손회사(C회사)를 동원해 A회사의 우호 지분을 확보한 후 적대적 기업 인수에 대항하려 한 것이 주목적이었으며, 기업그룹에 어떤 손해도 발생하지 않았고 발생할 우려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B회사 대표이사를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기업그룹의 모든 법인은 각자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형식 논리에 집착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최준선 < 성균관대학교 로스쿨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