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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556호 2017년 5월 29일

소설가와 떠나는 문학여행

[소설가 이근미와 떠나는 문학여행] (64) 싱클레어 루이스 ''늙은 소년 액슬브롯''



우연히 만난 소설에 마음 빼앗긴 주인공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적당한 나이에 할 일을 하며 마땅한 권리를 누리는 게 행복하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계획대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스칸디나비아에서 이민 와 미국인이 된 크누트 액슬브롯. 60대가 되었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18세에 결혼하여 58세까지 열심히 일해 빚을 갚고 농장도 하나 마련했다. 아내는 죽고 말았지만 자녀들은 장성하여 제 몫을 하며 산다. 크누트는 농장을 딸 내외에게 맡기고 오두막을 지어 고양이와 함께 유유자적 지낸다.

크누트의 어릴 적 ‘꿈은 유명한 학자가 되어 여러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고, 역사에 능통하고 지혜로운 책들 속의 아름다운 세계를 마음껏 즐겨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넉넉지 않은 상황에다 일찌감치 결혼했으니 대학에 가지 못했고, 그 허전함을 달래려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런 크누프가 선택한 길은? 놀랍게도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을 읽다가 예일대 생활을 화려하게 그린 내용에 매료되어 대학에 가기로 결심한다. 공부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다. 게다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인 예일대는 들어가기 몹시 힘든 곳이다. 좌절도 하고 잠깐 포기도 했지만 하루 18시간 일하던 뚝심으로 12시간씩 공부하여 기어이 합격한다.

65세 신입생에게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할아버지뻘인 크누트를 동기생들은 친절하게 대할까? ‘화려하고 세련된 문학의 맛을 보려는’ 크누트의 소망을 안 기숙사 룸메이트 레이는 “당신처럼 늙은 사람은 그따위 쓸모없는 공부보다는 영혼 구제에 관한 문제를 생각해야 할 거요”라며 무시한다. 모두들 크누트를 괴물 취급하고 상대해주지 않는다. 가난한 고학생들과는 통할 줄 알았으나 그들은 학비를 버느라 바쁘게 뛰면서 불만만 토한다. 책에 나오는 멋진 학생은 하나도 없고 잡담이나 하는 시시한 놈들뿐이다. 크누트는 ‘추수 때 우리 농장 헛간 뒤에서 젊은 일꾼들이 떠벌리는 수작하고 어쩌면 저렇게도 같을까?’라고 생각하며 실망한다.

‘멋진 대학생활’ 상상은 깨지고

명문가 자제나 부잣집 아이들은 크누트를 대놓고 무시하고, 존경하는 교수님까지도 크누트가 가까이 하자 경계하며 면박을 준다. 크누트는 그들을 보며 ‘모두 속이 무섭게 늙은 놈들뿐이었다. 돈벌이에 급급한 놈, 죽으라고 경기에서 기록만 내려는 놈, 일생을 두고 채점표에 성적을 기입할 걱정만 하는 교수들, 모두들 어쩌면 이렇게도 늙었을까’라고 개탄한다.

괴물에다 외톨이가 된 크누트는 혼자 산책을 하며 마음을 달래다가 룸메이트가 ‘속물 풍류객’이라고 험담을 했던 길버트 워시번과 마주친다.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시를 논하고 뮈세 시집을 보여주는 길버트에게 크누트는 매료되고 만다. 대학에 와서 처음 마음을 열고 밤새 얘기를 한 크누트는 ‘오늘 밤은 외국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며 좋아한다. 길버트는 자신의 방으로 크누트를 데려가 해외여행 때 구한 진귀한 것들을 보여주고, 자작시를 읊어준다. 실제로 시 쓰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크누트는 감격하고 만다. 길버트가 준 뮈세 시집을 손에 꼭 쥐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크누트. 젊은이와 늙은이는 오래 결합하지 못하니 다시 길버트가 자신에게 흥미를 느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좋은 기분을 그대로 안고 학교를 떠난다.

미국 작가 중 첫 노벨문학상

미국 최고의 풍자소설가로 평가받는 싱클레어 루이스의 짧은 소설 《늙은 소년 액슬브롯》은 낭만을 만끽하지 못하고 떠나는 늙은 학생이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 작품이다. 열심히 살았지만 공허했던 남자, 65세에 대학에서 짧지만 강렬한 순간을 만난 것으로 보상받는다. 좀 늦더라도 원하던 길을 기어이 밟으며, 온 힘을 다해 삶의 의미를 찾는 건 행복한 일이다. 단계를 밟으며 제때 알맞은 노력을 투입해야 실한 열매를 맺겠지만.

루이스는 실제로 예일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독서와 글쓰기에 심취했던 그는 대학 때 문학적 성향으로 인해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크누트의 고독이 자신의 체험이었던 셈이다. 말년에 주로 해외를 떠돌며 불우한 생활을 했는데 크누트처럼 빛나는 순간을 염원하며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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