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변호사서 국회의원 거쳐 청와대 주인으로
문재인의 자기소개서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문재인 라이프 스토리
● 키, 몸무게, 신발사이즈=172㎝, 67㎏, 260㎜

● 혈액형=B형

● 종교=천주교(세례명 디모테오)

● 좌우명=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

● 내 인생의 멘토=아버지

● 좋아하는 노래=꿈꾸는 백마강

● 가장 기뻤던 일=사법시험 합격, 노무현 대통령 당선

● 가장 후회되는 일=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잘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한 것

● 장점=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것

● 단점=과도한 진지함과 결벽주의

● 가장 존경하는 사람=다산 정약용 선생

● 가장 닮고 싶은 리더십=세종대왕의 ‘통합정신’

● 감명 깊게 본 영화=변호인, 광해-왕이 된 남자

● 자신을 음식에 비유한다면=고구마

● 주량=소주 1병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으로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 당시 고향을 떠나 월남해 경남 거제 피란민수용소에서 정착했다. 부산 영도 판잣집에서 살던 시절 부친의 장사 실패 후 강냉이(옥수수)죽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모친의 연탄 배달을 도우며 생계를 꾸렸을 정도로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다.

2남 3녀 중 장남으로 거제에서 출생

경남중·고교 시절에는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친구에게 시험 답안지를 보여주고, 폭력 교사에게 반항해 해당 과목을 공부하지 않기도 했다. 친구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싸움판에 뛰어들어 네 번이나 정학을 당했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들어갔다. 하지만 공부보단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끄는 데 앞장섰다. 1975년 4월 인혁당 관계자들이 사형당한 다음날 대규모 유신 독재 화형식을 주도해 서대문구치소에 4개월 동안 수감됐다. 장남에게 실망한 부친은 한 번도 면회를 오지 않았다.

제대 후 시위 및 구속 전력으로 복학의 길은 막혀 있었고 취업도 힘들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문 대통령은 사법고시 공부를 하게 된 배경에 대해 “뒤늦게나마 한 번이라도 잘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아들로서의 결심”이었다고 했다. 선친의 49재를 마친 다음날 전남 해남 대흥사에 들어가 고시공부에 몰입했다. 누우면 잠이 올까봐 방에 물을 뿌리며 공부에 전념했다. 이듬해인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학내 시위와 공부를 병행하던 문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 시위에 나섰다가 계엄령 위반으로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결국 경찰서 유치장에서 2차 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 등 지내

문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는 고(故) 조영래 변호사, 박원순 서울시장, 박시환 전 대법관,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 박병대 대법관 등이 있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에 임용되지 못했다. 결국 1982년 부산으로 내려와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운명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과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으며 시국사건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2002년 당시 노무현 대선후보의 부산선거대책본부장직을 맡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노 전 대통령 당선 후 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을 맡으며 대표적인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자리매김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엔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맡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발음이 다소 부정확해진 것도 이때 격무와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졌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계속되는 권유에도 국회의원 선거 출마 등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를 꺼린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재단법인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맡았다. 그 후 2011년 자서전 《운명》을 출간하며 현실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두번째 대권 도전해 성공

2012년 12월 치러진 제18대 대선에서 역대 야권 후보 최다 득표인 1469만표(득표율 48%)를 얻었지만 진영 대결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51.6%를 얻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이후 대권 준비를 이어 온 문 대통령은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출마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결국 당선됐다. 당초 100석도 힘들 것이라던 지난해 4·13 총선에서 민주당은 총 123석의 제1당 자리를 꿰차면서 위기론을 대세론으로 바꿔놓았다.

이후 네 차례 당 순회 경선에서 ‘대세론’을 지속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일 총 57%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대학 입학과 사법시험 모두 재수로 합격하며 자신을 재수에 강하다고 소개하며 두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던 문재인. 그는 적폐 청산과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약속하며 정치 입문 6년 만에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제19대 대통령이 됐다.

은정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