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 줄이기 위해 고용·해고 쉽게 법 개정 추진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이끄는 좌파 성향의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에 나서고 있다. 좌파 정부들은 대부분 고용과 해고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극력 반대한다.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삶의 조건을 악화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좌파 정부의 강력한 정치적 후원자 중 하나가 강력한 노조다. 그런데 왜 올랑드 대통령은 정치적인 입지를 좁힐 수 있는데도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걸까? 그 답은 노동개혁이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자의 생활을 높이는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프랑스 실업률은 10.2%로 독일(4.3%)보다 6%포인트 가까이 높다.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인 25.9%에 달했다. 그래서 프랑스 정부는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다.

프랑스의 실업 문제, 특히 청년 실업난이 이토록 심각해진 주된 이유는 경직된 노동시장과 과도한 정규직 보호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과도한 정규직 보호와 노동시장 규제가 프랑스 청년층과 계약직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다.

1789년 대혁명으로 중세의 낡은 질서를 허물어뜨린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을 정립한 나라다. 그래서 노동자에 대한 권리 보호도 어느 나라보다 높다. 프랑스 노동법전은 두껍기로 유명하다. 현재 총 3809쪽이다. 10년 전보다 45% 늘었다. 미용사를 위한 단체교섭 부문만 196쪽을 차지한다. 노동조합 가입률은 8%에 불과하지만 금속 가공부터 제빵·제과에 이르기까지 750여개 업종에 걸쳐 노조가 설립돼 있다. 정규직 보호가 워낙 철저하다 보니 한 번 고용하면 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 법정 근로시간은 주 35시간이다.

프랑스의 최악 실업난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이런 정책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삶을 갉아먹는 역설로 해석할 수 있다. 정규직을 철저히 보호하다 보니 기업들이 아예 고용을 늘리지 않고, 사람을 채용하더라도 임시직으로만 쓴다. 현재 프랑스 신규 고용의 무려 80%는 3개월 이하 임시 계약직으로 채워지고 있다. 50대 이상에서는 5% 미만에 그치는 임시직 비중이 25세 이하 청년층에서는 30%에 이른다. 한 번 비정규직이 되면 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요원하다. 임시직 근로자 중 3년 안에 정규직으로 편입되는 사람은 5명 중 1명꼴로, 영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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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노동법 개정안은 ‘고용 및 해고 요건 완화’와 ‘주 35시간 근로시간제 수정’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려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직원을 해고하려면 고용주가 법원에 경기침체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은 일감이 줄거나, 새로운 경쟁 및 기술 변화에 직면하거나, 영업이익이 감소했을 때도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2000년 일자리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임금 삭감 없이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인 ‘주 35시간 근로제’에도 변화를 시도한다. 앞으로 직원들은 주 35시간을 초과해 일할지 말지를 기업별로 투표해 결정할 수 있다. 연장근무수당도 산업별 노사협약보다 낮게 책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 학생단체와 노동단체는 지난 9일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 노동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인터넷 서명 운동도 진행 중이다. 개혁이란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은 17년 만인 2012년 좌파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후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부유세도 도입했다. 하지만 부유세는 기업과 자산가들을 프랑스에서 쫓아내고 생산활동에 쓰여야 할 자본을 몰아내는 역효과를 낳으면서 결국 지난해 부유세를 폐지했다. 기업에서 걷는 법인세율(33.3%)은 2020년까지 28%로 내리기로 했다. 국정(國政)을 운영하면서 ‘좋은 의도가 아주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노동개혁도 그 후속타로 볼 수 있다.

노동시장 경직성으로 볼 때 한국은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노동시장 유연성지수에서 한국은 51점, 프랑스는 44점으로 세계 평균인 61점을 훨씬 밑돌았다. 미국(99점), 덴마크(92점), 뉴질랜드(91점)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고, 이 때문에 젊은 층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세대 간 단절 현상이 나타나는 점도 닮은꼴이다.

박근혜 정부가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은 국회에서 야당의 벽에 막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경직적인 노동시장으로 유명했던 독일은 노사가 한 발짝씩 양보, ‘슈뢰더 개혁’을 통해 유연성을 높임으로써 ‘유럽의 맹주’로 올라서는 데 성공했다. 한국에나 프랑스에나 반면교사다.

◆프랑스 정부의 노동개혁

좌파 성향의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친기업적 노동개혁에 나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프랑스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을 이달 말까지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9일 보도했다. 높은 실업률과 저조한 경제성장률에 정권 지지율이 15% 안팎으로 떨어지며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3월10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