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가부도의 교훈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그리스 사실상 '국가부도'…과잉복지와 포퓰리즘이 낳은 비극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이 30일(현지시간)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구제금융 연장이 거부됐다.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부채를 상환하지 않아 ‘기술적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맞았다.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의 구제금융 조건에 대해 국민들의 찬반 의사를 묻는 투표를 5일 시행할 계획이다.

- 7월1일 한국경제신문

☞ 그리스 사태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의 늪속으로 빠졌다. 외국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사실상 빚을 갚을 수 없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국가부도)’ 상태다.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은행에 달려가는 뱅크런이 나타나고, 외국 자본은 그리스를 탈출하면서 금융시장도 패닉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국민을 볼모로 국제 채권단과 ‘막가파식’ 협상을 진행중이다. 국민들은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쪽과,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는 쪽으로 나눠 대립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지난 1월 극좌파 정당인 시리자가 정권을 잡으면서 예견됐었다. 경제위기가 시작된지 벌써 6년, 왜 그리스는 아직도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스 사태는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빚 못갚겠다’는 그리스

그리스는 지난 6월30일까지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빌린 돈 가운데 15억5000만유로(약 1조9000억원)을 갚아야 했다. 하지만 결국 빚을 갚지 못했다. 그리스 정부는 국제 채권단으로부터 다시 빚을 얻어 IMF 부채를 갚을 계획이었지만 국제 채권단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며 더이상 돈을 빌려주는 걸 거부했다.

그리스가 이처럼 위기에 빠진 것은 2009년 가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0월에 총선이 있었는데 사회당이 승리해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국가 장부를 살펴보니 전(前) 정부가 통계와 장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회당 정부는 이를 국내외에 공표하고 2009년 나라살림 적자(재정적자)가 당초 예상한 GDP(국내총생산) 대비 6%가 아니라 그 두배인 12.7%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국제금융계가 발칵 뒤짚혔다. 그렇지 않아도 해마다 나라빚이 쌓이고 있는데다 외국과의 교역에 따른 수지(경상수지)도 매년 적자인데 한 해 빚만 GDP의 10%가 넘는다는 건 조만간 파산할 것이라는 신호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뒤 그리스는 두차례에 걸쳐 국제금융기구로부터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그리스에 돈을 빌려준 기구는 EU(유럽연합), ECB(유럽중앙은행), IMF(국제통화기금) 등이다. 이들 세 기구를 ‘트로이카’라고 부른다. EU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트로이카가 그리스에 빌려준 자금은 무려 2266억유로(약 280조원)이다. 그리스 국민 1인당 3000만원에 육박하는 국가 빚을 갖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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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

그리스는 1945년 창립된 IMF 71년 역사상 서방 선진국 중 처음으로 채무를 갚지 않는 나라가 됐다. 그리스는 왜 이처럼 나라가 만신창이가 된 것일까? 세상의 이치는 의외로 단순하다. 나라든 가정이든 소득보다 지출이 많으면 언젠가는 ‘사단’이 나게 돼있다. 그리스가 꼭 그 짝이다. 전문가들은 낮은 산업경쟁력과 정치권의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 만연한 부정부패, 유로화의 태생적 한계가 맞물린 결과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스는 관광과 해운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국제경쟁력을 갖춘 산업이 거의 없다. 그래서 외국과의 교역에서 오랫동안 적자가 쌓여왔다. 그런데도 복지는 유럽 최고 수준이고, 노동경쟁력은 독일보다도 못하다. 재정위기전 그리스의 연금은 생애 평균임금이 월 600만원일 경우 900만원 안팎이었다. 이에 비해 영국과 독일은 180만원과 220만원 수준이다.

1981년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당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1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하면서 일자리 제공이라는 이름 아래 공무원을 무더기로 채용하고 엄청난 연금을 주는 선심성 정책을 일삼았다. 그리스의 공무원 수는 85만명으로, 노동가능인구 5명 중 1명꼴이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민간보다 평균 1.6배 많다. 공무원 월급 총액은 GDP의 절반을 넘는다. 그 결과가 지금의 국가부도이고 그리스 후손들의 희생이다. 1980년대초만 해도 그리스의 나라빚은 GDP 대비 30%가 채 안됐지만 지난해에는 177%(2014년말 기준 3240억유로)로 치솟았다.

유로화는 이같은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부추겼다. 한 나라의 화폐가치는 그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한다. 체력이 튼튼하면 화폐가치가 높고, 체력이 약하면 화폐가치가 낮다.

자국 화폐인 드라크마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로선 기초체력보다 가치가 높은 화폐를 쓰는 셈이 됐다. 그래서 수입이 늘어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고 외국으로부터 빌린 빚도 더 늘었다. 적자가 쌓이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난다. 하지만 유로화를 쓰는 그리스는 그렇지 못했다. 경제적 격차가 큰 데도 하나의 화폐로 묶여있는 유로존의 구조적 결함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신문인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그리스 위기가 유로 단일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전했다.

부정부패와 탈세 등도 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는 “연간 그리스 GDP의 8%인 200억유로 가량이 탈세와 부패로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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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국제금융기구는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추가로 받으려면 ‘자구책’이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냥 도울 수 만은 없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자구책은 ‘긴축’이란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얘기다. △과도한 연금의 삭감 △정부 지출의 축소 △임금 삭감 및 노동시장 개혁 △조세개혁(세금 인상) △국영자산 민영화 등을 요구한다. 가장 많이 그리스를 지원한 독일의 국민들은 연금이 자신들보다 많은 그리스를 돕는 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국제 채권단은 2012년 3월 1100억 유로의 채무를 탕감해주기도 했다.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의 요구에 대해 현재로선 ‘노(No)’를 외치고 있다. 이게 트로이카와 그리스 정부간 길고 지루한 협상이 결렬된 이유다. 극좌 성향의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지난 1월 ‘트로이카의 긴축 요구 반대’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6년간 경제규모(GDP)가 4분의 1 넘게 쪼그라든 그리스 국민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치프라스를 선택했다. 5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 댓가는 바로 사실상의 ‘국가부도’다.

그리스 사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불투명하다. 치프라스 총리와 트로이카간 협상은 아직 진행중이다.

그리스 사태는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를 생각나게 한다. 당시 우리도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 외국 자본의 탈출, 금융회사와 대기업의 부실 등으로 위기를 당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이 선택한 길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낀 돈으로 빚을 갚는’ 것이었다. 그 결과 3년여만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당시에도 IMF가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대한민국에 요구한 강도높은 긴축이 ‘환자를 오히려 죽인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망한 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분담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뿐이다.‘켈틱 타이거(아일랜드)’가 그리스와 같은 재정위기국이면서도 우리처럼 빠른 시일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 국민들의 비극은 ‘후손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 모두가 고통을 나눠갖자’라고 말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의 부재(不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