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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478호 2015년 7월 6일

한국사

[한국사 공부] 꿈속에서 도원을 노닐다


1447년 4월 20일,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평소 친하던 집현전 학사 출신의 박팽년과 함께 복숭아꽃이 만발한 이상향 도원을 꿈속에서 찾아 노닐게 됩니다. 꿈에서 깨자마자 그는 당대 최고 화가인 안견을 불러 자신이 꿈속에서 본 것을 말해준 후 곧바로 그리도록 시킵니다. 안견은 놀랍게도 3일만에 그림을 완성하게 되고, 이에 기뻐한 안평대군은 곧 그림의 제목을 달고 시와 글을 쓰게 됩니다. 그리고 꿈 속에서 함께 거닐었던 박팽년은 물론, 평소 그와 함께 시와 글을 논하던 신숙주, 정인지, 김종서 등 21명이 이 그림을 위한 글을 써, 마침내 조선 최고의 명화가 완성되게 됩니다. 바로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입니다.

3일만에 안평대군 꿈을 그린 안견

여러분은 조선 최고의 회화라고 하면 당연히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의 화가와 그들의 그림을 떠올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들의 그림, 즉 <금강전도>, <씨름>, <미인도> 등은 모두 조선 후기의 작품들입니다. 반면 <몽유도원도>는 15세기 그림입니다. 자칫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듯 세종 대에는 주로 과학 기술 등이 발전한 것 같지만 이렇게 회화에서도 뛰어난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 누구도 꿈을 그릴 줄은 몰랐으니까요. 또한 이 작품은 조선 전기 왕과 사대부가 향유하였던 문화가 어떤 것인지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꿈을 꾼 이는 조선 전기 최고의 예술 후원가이자 그 스스로 예술가였던 안평대군입니다. 그는 왕족의 신분으로 당시 명을 통해 중국의 문화 및 예술품을 직접적으로 향유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유학자로서 갖출 수 있는 최고의 감성적 목표인 시서화 삼절을 모두 이룬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서체는 ‘송설체’라고 하여 예전 고려 후기 이제현이 학문을 논하기도 했던 원나라 조맹부의 글씨체입니다. 안평대군이 쓴 <몽유도원도> 발문의 글씨를 보면, 한 글자의 끝 부분마다 미적인 악센트가 느껴지지요. 또한 그는 음악까지도 연주할 줄 알았지요. 세종의 문인적 감수성을 그가 계승한 것입니다. 참고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무인적 기질은 바로 위의 형 수양대군이 갖추고 있었습니다. 안평대군이 꿈 꾼 도원은 동아시아의 이상향이기도 합니다. 이른바 ‘무릉도원’이라고도 하는데요. 그 연원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의 은자였던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유래합니다. 신선과도 같은 이들이 은거해서 살던 유토피아였지요.


동아시아사의 유토피아, 도원

안평대군의 꿈을 그린 안견도 독특한 인물입니다. 언제 태어나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전설과도 같은 화가였습니다. 다만 그는 충남 서산 지곡 출신으로, 현재 서산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안견기념관이 있습니다. 저 또한 이번 <몽유도원도>와 관련하여 이곳으로 가 영인본이지만 실제 크기와 같은 <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원본은 안타깝게도 일본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있습니다.

<몽유도원도>는 가로로 그려진 그림입니다. 세로 38.7cm, 가로 106.5cm의 비단에 수묵담채로 그려진 이 그림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려지던 당시 관행을 깨고 파격적으로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그림이 마무리됩니다. 크게는 2단계, 세부적으로는 4단계로 그림은 설정되어 있는데, 현실 세계와 도원을 구분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세부적으로는 그 도원의 세계, 즉 복숭아꽃 만발한 그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와 통과 후 시작하는 도원의 세계를 가르면 전체적으로 4단계로 보이게 됩니다. 현실에서 도원의 입구를 지나 통과 후 진짜 이상향의 세계에 도달하는 과정을 한폭에 모두 담은 것입니다.

대각선 구도의 <몽유도원도>

꿈속의 세계를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도원의 산들은 흐릿한 기억만큼 흔들리고 날라갈 듯 가벼워보이기조차 합니다. 중국 화원의 영향을 받아서 쓰러질 듯한 산과 울퉁불퉁 돌기가 솟은 듯한 표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안의 복숭아꽃 나무는 보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낼 정도로 한껏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시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대각선 구도를 따라 자연스럽게 도원으로 향하게 됩니다. 산 아래의 길은 터널처럼 끊어진 듯 이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고요하면서도 자연과 어우러진 이상적인 세계가 펼쳐집니다.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본 광경과 은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그림으로 그려 천년을 이대로 전하고 싶다는 소망을 시로 남겼습니다. 그리고 4년 뒤에는 이 몽유도원도와 유사한 곳을 마침내 찾아냅니다. 백악의 서북쪽 지역, 즉 오늘날 종로구 부암동 쪽인데요. 이곳에 ‘무계정사’라는 이름의 별장을 짓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2년 더 뒤인 1453년, 안평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이자 바로 윗 형이었던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안평대군이 김종서 등과 모의하여 단종을 몰아내려 했다는 죄목으로 말이지요. 1455년 단종으로부터 선위의 형식으로 즉위하지만 정작 단종을 밀어낸 것은 수양대군, 즉 세조였습니다. 그리고 안평대군과 함께 꿈속에서 도원을 거닐었던 박팽년은 1456년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안평대군과 안견 그리고 박팽년을 비롯한 조선 전기 최고의 문인들이 종합적으로 완성한 <몽유도원도>. 그 진작을 언젠가 다시 보기를 고대합니다.

■ 최경석 선생님

최경석 선생님은 현재 EBS에서 한국사, 동아시아사 강의를 하고 있다. EBS 진학담당위원도 맡고 있다. 현재 대원고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란 무엇인가’ ‘생각이 크는 인문학 6-역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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