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B·사드를 둘러싼 한국, 미국, 중국 3국간의
미묘한 흐름은 무엇 때문일까요?
◆AIIB와 사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와 함께 미·중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가 AIIB에 우선 가입한 뒤 중국을 설득해 미국과 사드와 관련된 물밑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 3월 19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가열되는 'AIIB'와 '사드' 논란…美·中 아시아 패권 전쟁, 한국의 선택은?
☞ 최근 한·미·중 3국 사이에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놓고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은 사드의 한국 내 배치를 원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비해 중국은 AIIB의 한국 가입을 요청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도대체 AIIB와 사드가 무엇이길래 3국 간 이런 미묘한 흐름이 나타나는 것일까?

중국, 미국 주도 세계 경제 질서에 도전장

AIIB는 신개발은행(NDB·New Development Bank)과 함께 중국이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팍스아메리카나)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국제 금융기관이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IMF(국제통화기금)와 WB(세계은행),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등을 설립했다. 이게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다. 미국은 이 두 기구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보호해왔으며 미국식 가치관을 세계에 전파해왔다는 비판도 들었다.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힘이 약해지고 중국의 경제력이 급속하게 커지자 중국 지도부는 IMF나 WB에 대항해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는 국제 금융기구를 따로 설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게 바로 NDB와 AIIB다.

NDB와 AIIB는 IMF와 ADB 대항마

NDB는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 5개국이 2014년 7월 브라질에서 가진 제6차 정상회의에서 브릭스 국가 및 기타 개발도상국의 인프라 및 지속가능한 개발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위해 설립하기로 결정한 국제 금융기구다.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하며 5개국이 각각 100억달러를 출자, 500억달러의 초기 자본금을 조성하게 된다. 본부는 상하이에 들어선다. NBB는 1000억달러 규모의 위기대응기금도 조성, 이 돈을 활용해 IMF처럼 경제위기국에 자금을 지원하게 된다.

AIIB는 미국 일본이 이끌고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맞서기 위한 것이다. 중국은 초기 자본금 500억달러로 올 연말까지 설립할 계획이다. 사무국은 베이징에 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10월 동남아시아 국가 순방 때 처음으로 AIIB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설립을 공식 선언했다. 인도 몽골 등 21개국을 포함해 현재까지 AIIB 설립 양해각서(MOU)를 맺은 국가는 28개국이다. AIIB는 아시아 개도국들이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할 수 있도록 자금 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NDB와 AIIB가 설립되면 세계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훨씬 커지게 된다. 이는 곧 미국의 입김이 약화된다는 뜻이다.

AIIB 설립에 한국 참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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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AIIB 설립에 한국이 참여해야 할까? 중국은 여러 차례 대한민국의 참여를 요청했다. 얼마 전 서울을 찾은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 차관보도 “한국이 AIIB 창설 멤버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피력했다. AIIB는 도로 항만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이 필요한 아시아 국가에 자금을 대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시아 국가들이 막대한 인프라 구축 시장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하려면 AIIB에 가입하는 게 이익이다.

하지만 한국의 AIIB 참여엔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첫째는 우방국의 AIIB 참여에 반대하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AIIB의 지배구조다. AIIB 내에서 주요 안건을 어떻게 결정하는가의 문제다. 그동안 AIIB의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중국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예상보다 많은 국가가 창설 멤버로 나서 중국 지분이 애초 우려했던 50% 수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국가별 지분이 결정될 때 결과적으로 중국이 거부권 등과 같은 강력한 권한을 가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IMF는 중요 결정을 할 때 전체 지분의 85%가 찬성해야 하는 만큼 미국(지분 17.69%)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ADB에서는 한 국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 최근 영국에 이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주요 국가도 AIIB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AIIB 가입 의사를 밝힌 국가가 30개국을 넘어서게 됐다.

사드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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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IB와 함께 사드도 논란이다. 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는 지상으로 떨어지는 적 탄도미사일을 탐지해 높은 상공(고도 40~150㎞)에서 요격, 격추하는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일컫는다. 수시로 미사일을 발사,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북한이 소형화한 핵탄두나 생화학무기를 미사일에 실어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방어시스템이다. 사드를 한국에 들여올지 말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최근 방한한 류젠차오 차관보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와 관련, “중국 측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 해주면 감사하겠다”고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밝혔다. 중국이 사드의 한국 배치(도입)를 반대하는 것은 사드에 포함된 1000㎞ 탐지거리를 갖는 X밴드 레이더가 중국 내 군사활동을 샅샅이 훑어볼 것이며, 유사시 대한민국에 배치된 사드로 중국이 발사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것이란 우려 때문으로 알려졌다.

AIIB와 사드 논란은 미국과 중국의 아시아 패권 경쟁에서 비롯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국익과 안보다. 중국 지도부는 입버릇처럼 “(티베트를 비롯한) 영토 문제는 외국과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외친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생존을 담보할 사안은 외국과 협상 대상이 아닌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중국이 대한민국을 지켜줄 것인가? 이런 점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란 애매한 문구 아래 숨어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또하나 꼭 짚어야 할 건 ‘사드 논란’을 부추기고 증폭시켜 오히려 입지를 좁게 만든 게 우리 자신이라는 점이다. 중국이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는데도 지레 중국이 사드에 반대한다면서 이슈로 만든 건 일부 언론과 단체다. 한·미 동맹의 틈을 파고들어갈 기회를 노리는 중국에 ‘꽃놀이 패’를 쥐어준 셈이 됐다. 반면 미국 측에 ‘한국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게도 구럭도 잃을 처지’에 놓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