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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지독한 재난이 자극적 여행상품 되는데…

    《밤의 여행자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고요나와 함께 직장에 대해 고민하다가 여행을 생각하게 되고, 재난과 생존의 상관관계를 따지다가 엄청난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때문이다. 오묘하면서 묵직한 함의를 담은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지면서 등장인물들의 논의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마구 들지도 모른다. 요나의 기획에 끼어들어 훈수를 둬야 할 것 같은 의무감도 생긴다.이 책은 지난해 영국 추리작가협회(CWA)에서 주관하는 대거상(The CWA Dagger) 번역추리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아시아문학 가운데 최초 기록이다. 대거상은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1955년 제정한 영어권 대표 추리문학상이다.국내에서 2013년 발간된 《밤의 여행자들》은 대거상을 수상하면서 또다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국·미국·스페인·프랑스·대만과 소설 판권 계약을 맺었으며 영국 기반의 개발사와 전 세계 영상 콘텐츠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국제문학상을 받거나 노미네이트되는 한국 문학 작품이 점차 늘면서 K소설에 대한 세계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K스릴러에 관심이 높은 가운데 최근 정보라 작가의 《저주 토끼》까지 부커상 인터내셔녈 최종 후보에 올라 한국 장르문학의 위상이 달라지는 중이다. 재난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세 사람영국 가디언지는 《밤의 여행자들》에 대해 ‘기후 변화와 세계 자본주의의 관계를 재조명하는 흥미로운 에코 스릴러’라고 보도했다. 이 책을 제대로 요약한 한줄평이다. 정글여행사 10년 차 직원 고요나가 맡은 일은 재난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일이다. 세계적으로 지진과 화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공포와 잔인함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기묘한 이야기

    지난 5월 27일, 부커상 발표를 기다렸다가 실망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16년 한강 작가에 이어 또 한 번의 쾌거를 기대했건만 《저주 토끼》의 수상이 불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판권 거래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저주 토끼》는 이미 18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고 여러 나라에서 출간을 검토 중이다.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면서 지금을 ‘문학 한류의 도입기’로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세계 무대에 서려면 해당 분야의 본고장에 가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지만 이제는 국내 성과가 크면 세계의 관심이 저절로 쏟아진다. 대한민국의 높은 위상과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다.정보라 작가가 부커상 후보에 올랐을 때 한국에서 오히려 놀라움을 표했다. 신춘문예 같은 문단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작가인 데다 한국에서 비주류로 취급받던 호러, 공상과학(SF) 작품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랭크됐기 때문이다.《저주 토끼》가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은 부커상 후보에 오르기까지는 번역가 안톤 허의 힘이 컸다. 그는 읽자마자 영미권에서 큰 관심을 끌 것으로 판단해 번역을 자처했고 영국 출판도 주선했다. 2017년 출간된 《저주 토끼》는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역주행해 장르소설에 관심없던 독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저주 토끼》에 수록된 10편의 단편소설을 한마디로 정리하라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첫 페이지를 읽으며 앞으로의 전개 과정을 짐작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뒤로 가면서 전혀 다른 스토리가 펼쳐지기 때문이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고단하고 절망스러운 길 헤쳐나가게 하는 힘, 희망

    비와 눈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내리고, 너무 덥고 너무 추워 생명을 잃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해수면 상승으로 자카르타의 침수 피해가 커지자 수도를 옮길 계획까지 세웠다. 40도 넘는 더위가 이어진 인도 뉴델리에서는 날아가던 새들이 심각한 탈수로 추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진과 허리케인, 산불과 폭염 같은 재해로 몸살을 앓는 지구에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핵폭탄을 발사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지구가 멸망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의 절망을 그린 장편소설로, 영화로도 제작됐다. 2007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 1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스티븐 킹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 3주간 1위를 차지하고 ‘2008년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2018년에 한국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판이 제작됐었고, 지금도 인플루언서들의 서평이 끊이지 않는 책이다. 따뜻한 남쪽으로 가는 험난한 길주요 인물은 남자와 소년, 딱 두 명이다. 두 사람의 꿈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길에서 몇 명과 마주치는 것 외에 그야말로 두 사람이 로드(road)를 걷는 게 전부인 소설이 왜 이토록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걸까.‘남자는 깜깜한 숲에서 잠을 깼다. 밤의 한기를 느끼자 손을 뻗어 옆에서 자는 아이를 더듬었다. 밤은 어둠 이상으로 어두웠고, 낮도 하루가 다르게 잿빛이 짙어졌다. 차가운 녹내장이 시작되어 세상을 침침하게 지워가는 것 같았다.’소설 첫 대목처럼 우리의 삶이 답답하고 어둑하기에 빨려 들어가며 공감하는 게 아닐까. 간혹 빈집에서 지낼 때를 제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개인과 자유에 대한 올바른 개념, 그리고 경제 자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한 이유는 뭘까.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재정학회 회장과 자유경제원 원장을 역임한 현진권 박사의 저서 《자유경제 톡톡》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개념들을 명확하게 해석해준다.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입문서인 만큼 내용이 쉽고 재미있는 데다 분량이 150쪽 정도여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조금 까다로운 부분은 만화로 다시 설명해주는 친절한 책이다.모든 것은 사상에서 비롯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체계화한 것이 바로 사상이다. 경제 체제도 사상에서 출발하는데, 시장경제 체제를 낳은 사상의 바탕에 ‘개인’과 ‘자유’가 자리하고 있다.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의 가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명시돼 있다. 자유는 ‘가치’고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때로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소수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저자는 당연히 자유라고 말한다.자유의 주체는 개인이다. 개인이 없다면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한반도는 그저 왕을 위한 세상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자유를 허용하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개인이 모인 집단은 백성이 아니라 ‘국민’이 됐고, 개인의 존재가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한 남자를 향한 절절한 사랑 고백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두툼한 편지를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유명 소설가 R은 마흔한 살의 남자로, 경제력과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다. 여행을 즐기며 마음에 드는 여자를 자주 집으로 초대하는, 즐거운 삶을 누리는 중이다. R에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연이 담긴 편지가 도착하는데 그 편지가 소설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모파상, 체호프, 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단편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딱 100년 전에 쓴 《낯선 여인의 편지》는 지금도 토론 주제에 종종 오른다.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소설가 R에게 몰두한 여인,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남자 R, 이 두 사람의 사랑 방식을 읽은 독자들은 작가의 보수적인 여성관을 비판하기도 한다. 지고지순한 여인의 사랑법을 놓고 ‘주체적이다, 아니다’로 의견이 나뉘는 경우도 있다. 두툼한 편지를 보낸 여인은 대체 어떤 사랑을 했던 것일까. 열세 살부터 그를 훔쳐 보다인기 작가 R은 주소도 이름도 없이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로 시작하는 편지에 호기심이 발동해 읽기 시작한다.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서두에서 사흘 밤낮 간호했지만 아이가 독감으로 사망했고, 귀엽고 가련한 남자아이라는 것이 밝혀진다.아이의 아빠는 누구일까.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소설가 R임을 알았을 것이다. 소설 뒷부분에 여자는 아이가 ‘당신의 아들’이라고 밝히지만, 그때까지 아이를 낳은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소설 전체가 독백 같은 편지문으로 이어지는 만큼 여자의 심리가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중편소설에 가까운 단편소설을 읽다 보면 너무도 절절한 여자의 사랑과 무심한 남자의 태도에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40가지 놀라운 변화

    2022년을 산 사람들은 후일 무엇을 기억할까. 코로나19와 마스크 얘기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코로나19로 바뀐 디지털 환경과 비대면 서비스에 대해 설명할 게 분명하다. 인류 역사에 그런 순간이 많았다. 그 이전과 이후, 그것이 있기 전까지의 삶보다 그것이 있고 난 뒤의 삶, 확연히 인류를 변화시킨 것들이 있었다. 세상을 바꾼 것은 생각일 수도 있고 사물이거나 사건일 수도 있다. 코로나19 같은 질병이나 우크라이나-러시아 격돌 같은 전쟁이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40명의 필자가 세상의 변화 40가지를 포착한 《자유의 순간들》은 인류 역사의 획기적 순간을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6쪽 분량에 한 편씩 담겨 있어 순식간에 다 읽어도 되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으며 사람들을 자유롭게 만든 힘을 만나도 된다. 의미있고 재미있는 40개의 변화 가운데 특별히 관심 가는 분야가 있다면 관련 자료와 책을 찾아 더 연구하길 권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세상 보는 시각이 더 확장될 게 분명하다.일곱 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책은 ‘아편전쟁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근대화’부터 ‘비트코인, 화폐의 진화’까지 광범위한 변화를 다루고 있다. 1부의 7개 꼭지 가운데 하나인 ‘한국전쟁으로 확립된 동아시아 문명 질서의 성격’(김광동)을 보면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재편된 세계 역사를 다각도에서 접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전쟁이라는 커다란 희생을 입고서야 자주 독립적 자유개방 체제의 길을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됐다. 아울러 자유민주적 세계와 함께 가지 않으면 자유도 민주도 번영도 없다는 확고부동한 역사적 교훈을 확인하게 됐다. 인터넷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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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 때 익힌 영어실력 바탕으로 세계적 작가 되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해외 작가’를 조사할 때마다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을 만큼 국내 인기도 대단하다. 서른 살이던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발표하면서 데뷔한 하루키는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큰 성과와 함께 반향을 일으켰다. 신작을 낼 때면 국내 출판사들이 거액의 선인세 지불 경쟁을 할 정도로 작품성과 상업성을 갖춘 작가다.하루키의 소설을 분석하거나 작법을 연구한 서적은 많지만 하루키가 직접 작법을 공개한 책은 2016년 출간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처음이다. 2년 뒤 가와카미 미에코와의 대담을 담은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도 소설 작법이 포함돼 있으니 두 권을 연이어 읽으면 하루키를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단순한 소설 작법을 넘어서 하루키가 살아온 이야기와 속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자서전적 성격을 띠고 있다. 삶을 대하는 경건한 태도와 함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열정이 뜨거워 용기를 채우고 싶을 때 읽으면 힘이 된다. 하루키 신드롬과 하루키 스타일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갑자기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를 듣는 순간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날로 집필을 시작해 반년 만에 완성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1979년 군조신인문학상을 받았다. 하루키는 두 번째 작품을 낸 뒤 성업 중이던 재즈 카페를 닫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1987년 《노르웨이의 숲》이 경이적인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하루키 신드롬’이 시작됐고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소녀시절 경험이 창의성 토대…패션의 전설이 되다

    명품 하면 샤넬을 떠올리게 된다. 샤넬백을 사놓으면 가격이 오른다고 ‘샤테크’, 샤테크를 위해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오픈런’, 오픈런으로 산 가방을 비싼 값에 되파는 ‘리셀족’까지 샤넬과 관련된 신조어가 늘어나고 있다.‘명품의 대명사’에 등극한 지금과 달리 20세기 초 샤넬은 귀부인들에게 편안한 옷을 제공하는 대중적인 브랜드였다. 에드몽드 샤를 루가 쓴 《코코 샤넬》은 꽤 두껍지만 샤넬의 생애 이야기와 1900년대 초중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사진, 패션에 관한 디테일한 분석이 담겨 있다. 전기는 실재한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교훈과 함께 한 시대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1971년 88세로 세상을 떠난 코코 샤넬은 여성들을 옷에서 해방시킨 인물이다. 샤넬의 전기를 읽으며 여성의 옷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천재적인 창의성이 어디서 비롯되었고, 영감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했는지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샤넬의 이름은 가브리엘이지만 코코라는 애칭이 널리 알려져 있다. 샤넬이 22세 때 카페에서 ‘코코리코’와 ‘코코가 트로카데로에서 누구를 만났기에’를 자주 불렀고, 노래가 끝나면 팬들이 “코코! 코코!”라고 외치며 앙코르를 요청하면서 붙은 이름이다.샤넬은 살아생전에 가난하고 내세울 것 없는 집안 배경과 성장 과정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열두 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샤넬은 언니와 함께 오바진수녀원 내 고아원에 맡겨졌다. 샤넬이 평생 좋아했던 ‘엄격함 깨끗함 깔끔함 단순함’은 바로 오바진수녀원의 특징이었다. 소녀 시절 경험이 창의성의 발판열일곱 살 때 들어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