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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깊이 사과합니다"에서 읽는 우리말의 힘

    이달 초 인터넷을 달군 ‘심심한 사과’ 논란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문해력 수준을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그에 가려 미처 살피지 못한 다른 쟁점도 여럿 있었다. 문해력을 주로 어휘 차원에서 다루다 보니 자칫 통사적 측면은 간과하기 십상이다. 우리말의 ‘건강한 쓰임새’를 위해서는 이 두 측면을 동시에 짚어봐야 한다. 관형어보다 부사어 많이 써야 글에 힘 있어지난호에선 ‘심심한 사과’라고 하기보다 ‘깊은 사과’라고 하는 게 좋은 까닭을 살펴봤다. 이는 어휘 측면에서 들여다본 것이다. 이를 통사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더 좋은 표현이 나온다. ‘깊이 사과드립니다’가 그것이다. 관형어 대신 부사어를 써서 동사를 살려 쓰는 게 요령이다.‘심심한 사과’라고 하든 ‘깊은 사과’라고 하든 서술어로 다 ‘~말씀(을) 드립니다’가 뒤따라야 한다. 관형어 뒤엔 필수적으로 명사가 와야 해, 전체 서술부를 ‘관형어+명사+을/를+서술어’ 형태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문장 흐름을 늘어지게 한다. 부사어를 쓰면 동사가 살아나 바로 ‘부사어+서술어’ 형식을 취할 수 있다.가령 ‘신중한 접근을 하다’ 식으로 표현하지 말고 ‘신중하게 접근하다’라고 하면 된다. ‘톡톡한 재미를 보다’라고 하는데, 이는 ‘톡톡히 재미 보다’라고 하면 충분하다. ‘각별히 신경 쓰다’를 ‘각별한 신경을 쓰다’ 식으로 변형시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 잘못된 글쓰기 훈련 탓이다. ‘악수하다→악수를 하다, 인사하다→인사를 하다, 진입하다→진입을 하다, 조사하다→조사를 하다&rsqu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추석에 송편 빚으셨나요?

    추석을 며칠 앞두고 남부지방을 할퀸 태풍 힌남노가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채 동해로 빠져나갔다. 그래도 100년 만에 가장 둥글었다는 보름달이 찾아와 전국을 포근하게 비췄다. ‘사랑의 송편 만들기’ 행사도 곳곳에서 열려 한가위 넉넉함을 더하는 데 한몫했다. “7일 오전 경기도 OOO에서 열린 송편 만들기 봉사활동에서 참가자들이 관내 취약계층에 전달할 송편을 포장하고 있다.” ‘만들다’ 일변도 탈피 … 서술어 다양하게이즈음의 ‘송편 만들기’는 대부분 언론에서 한 번쯤 보도하는 연례행사가 되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말 사용에 거슬리는 곳이 눈에 띈다. ‘송편 만들기’가 그것이다. 송편은 만드는 걸까 빚는 걸까? 무엇을 써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 더 맛깔스러운 표현이 있다. 송편을 ‘빚는다’고 할 때 대부분 더 편하고 친근하게 여긴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모국어 화자라면 굳이 국어사전을 들추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우리 언어 현실은 ‘송편 만들기’가 ‘빚기’를 압도하는 듯하다.돈은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금 만들기보다 ‘자금 모으기’가 더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추억은 ‘쌓는다’고 할 때 말맛도 살아난다. 그런데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추억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으면서 말은 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고 할까?글쓰기에서 이런 사례는 주위에 널려 있다. △체육관을 만들다(→세우다) △시스템을 만들다(→갖추다) △시간을 만들다(→내다) △예외를 만들다(→두다) △대책을 만들다(→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심심한 사과' 논란, '쓰는 능력'을 일깨우다

    며칠 전 인터넷상에서 ‘심심한 사과’를 놓고 새삼 공방이 벌어졌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올린 사과문 한 줄이 발단이 됐다. ‘…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이를 두고 “난 하나도 안 심심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무슨 심심한 사과?” 같은 댓글이 달리면서 누리꾼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순우리말 ‘심심하다’(지루하고 재미없다)만 알고 한자어 ‘심심(甚深)하다’(마음의 표현이 깊고 간절하다)는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문해력은 ‘읽는 능력’ 외에 ‘쓰는 능력’ 포함이를 두고 ‘새삼’이라고 한 것은 이런 논란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로 문해력(文解力)이란 관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발명품’인 한글 덕분에 문자 해독률은 높아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문해력’이란 말 자체도 알아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지금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웹사전)에는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초판(1999년) 때만 해도 이런 말은 없었다. 우리 입에 오르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문해력(literacy)은 한마디로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을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사전에서도 그렇게 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이 자칫 ‘읽는 능력’이 다인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실제로 문해력을 얘기할 때 대개 독해 수준을 따질 뿐 ‘쓰는 능력’은 간과한다.문해(文解), 즉 ‘글을 풀어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비'와 '초토화'는 함께할 수 없는 사이죠

    “이곳이 고추·고구마밭이었다는 게 믿어집니까? 고작 세 시간 동안 내린 비로 600여 평 밭이 초토화됐습니다.”8월 들어 내린 늦장마는 예상외의 폭우로 전국 곳곳에 막심한 피해를 끼쳤다. 언론들이 비 피해 상황을 연일 자세히 전하는 가운데, 일부 ‘물폭탄에 농지 초토화’ 같은 제목이 새삼 눈에 띄었다. 독자들도 여기까지 읽는 동안 어법적으로 이상한 곳을 찾았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꼈다면 우리말에 꽤 관심이 있다는 방증이다. 불에 타 황폐해진 상태를 초토화라 해‘초토화’가 그 대상이다. 이 말의 용법은 우리말 코너를 통해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도 여전히 그 사용에 둔감한 것 같다. 초토(焦土)는 ‘불에 타서 검게 그을린 땅’을 말한다. 거기에 ‘될 화(化)’가 붙었으니 ‘불에 탄 것처럼 황폐해지고 못 쓰게 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焦가 ‘(불에) 그을리다, 불타다’를 뜻한다. 흔히 ‘초미의 관심사’라고 하는데, 매우 급하고 긴요한 일을 말할 때 쓴다. 초미(焦眉), 즉 눈썹(眉)에 불이 붙었으니(焦) 세상 무엇보다도 급한 상황임을 빗댄 것이다. 초(焦) 자가 ‘불 화(火)’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요령이다. 한자 밑의 점 네 개()로 찍힌 게 부수로 쓰인 ‘불 화’ 자다. 당연히 폭격이나 화재로 ‘초토화’가 될 수는 있어도 물난리로 초토가 될 수는 없다. 문맥에 따라 ‘쑥대밭’이나 ‘아수라장’ ‘난장판’ 등 적절한 말이 얼마든지 있으니 골라 쓰면 된다.언론에서 초토화 사용은 일찍부터 엿보인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야 전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방송말의 '-ㄴ데요' 남발…'데요체' 등장?

    “‘케이-베네치아’라는 설명과 함께 올라온 영상인데요. 도로가 완전히 잠겨 주민들의 안전이 우려되고 있는데요. 인천지역 집중호우로 동인천역 인근 일부 도로가 침수됐다고 하네요. … 서울의 복합쇼핑몰, 코엑스도 비 피해를 피하지 못했는데요. … 천장에 누수가 발생하면서 직원들이 급히 수습에 나섰습니다.”지난주 중부지방에 내린 폭우로 수도권 곳곳이 물난리를 겪었다. 언론들은 피해 상황을 신속히 전하면서 응급대처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그중 한 방송사의 보도 문체는 좀 특이한 모습이었다. ‘-ㄴ데요’로 끝나는 문장들을 주목할 만하다. 짧은 기사에서 장면을 바꿔가며 ‘-ㄴ데요’를 아홉 번이나 반복했다. 의미 용법 지키지 않아 어색할 때 많아이런 어투는 근래 방송 보도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마치 경어법상 새로운 ‘데요체’라도 나온 듯싶다. 일반 뉴스 문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법적으로 여전히 어색하다. 신문을 비롯해 방송 보도문은 전통적으로 ‘합쇼체(하십시오체)’를 중심으로 써왔기 때문이다. ‘-ㄴ데요’는 해요체에 속하지만 뉘앙스는 ‘-해요’와 많이 다르다. 문법 기능에도 차이가 있다.우선 ‘-ㄴ데요’의 정체부터 알아보자. 이 말은 ‘-ㄴ데’에서 왔다. 이는 ‘해체’에 속하는 말이다. “우리 오늘 만날까?” “나 지금 바빠” 같은 게 해체 표현이다. 여기에 존칭보조사 ‘-요’를 붙여 만든 게 해요체다. 일반적인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 연설이나 방송 보도에서는 이 해요체가 널리 쓰인다.‘-ㄴ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이 말은 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복날'은 왜 절기에 끼이지 못했을까?

    한여름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도 이제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절기상으론 이미 입추(8월 7일)를 지나 처서(8월 23일)를 앞두고 있으니 가을로 들어선 셈이다. 처서는 ‘곳 처(處), 더울 서(暑)’다. ‘더위가 머무르다, 그치다’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끝났나 싶던 올여름 장마도 지난주 다시 찾아와 ‘물폭탄’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제철이 지난 뒤에 지는 장마를 ‘늦장마’라고 한다. 삼복은 한여름 무더위 조심하라 정한 날언론에선 이와 함께 지각장마니 2차장마니 가을장마니 하는 말로 그즈음 날씨를 전했다. 이 가운데 공식적으로 ‘족보’가 있는 말, 즉 사전에 오른 단어는 ‘늦장마’와 ‘가을장마’뿐이다. 나머지는 아직 단어라고 할 수 없는, 임의적 표현인 셈이다.올해는 예년보다 더위가 길어질 것이란 게 기상청 전망이다. 오는 8월 15일이 제77주년 광복절이자 말복이다. 둘 다 우리 기념일이지만 내용은 많이 다르다. 광복절은 국경일이자 공휴일이지만, 말복은 국가기념일도 아니고 명절도 아니다. 그렇다고 농사일에 기준으로 삼던 절기도 아니다. 날짜도 매년 달라진다. 초복·중복·말복 등 삼복은 한여름 불볕더위를 슬기롭게 넘기자는 뜻에서 만들어진 날인데, 이를 절기와 별개로 ‘속절(俗節)’이라고 부른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매년 여름 이듬해 24절기와 명절, 공휴일, 기념일 등 달력 제작 기준을 정해 발표한다. ‘절기’는 계절의 변화 기준으로 삼던 날절기(節氣)란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눠 계절의 표준으로 삼은 날을 말한다. 속절은 1년 중 시기마다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일상생활을 비롯해 제사일, 국가의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올렛길 vs 올레길, 규범과 현실 사이

    ‘약 400만 건 대(對) 15만 건.’ 대략 26배 차이다. 최근 구글 전체에서 검색된 ‘올레길’과 ‘올렛길’의 빈도수다. ‘둘레길’과 ‘둘렛길’은 어떨까? 그 차이는 더 일방적이다. ‘1100만 건 대 1만1000건’이다. 둘레길 빈도가 둘렛길보다 1000배 정도 많다.지난 7월 초 국립국어원 회의실. 올레길과 둘레길의 표기 문제가 현안으로 올라왔다. 한글맞춤법에서 사이시옷을 규정(제30항)한 정신에 따르면 ‘올렛길[올레낄], 둘렛길[둘레낄]’로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표기 사례는 ‘올레길, 둘레길’로 사이시옷 없는 형태가 압도적으로 많다. 규정과 현실 어법이 다르다 보니 널리 쓰이는 말인데도 표기를 정하지 못해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실횻값’ 등 규정 따르면 표기 어색해져사이시옷은 우리말 적기의 두 기둥인 ‘소리적기’와 ‘형태적기’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온 완충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전세’와 ‘값’이 결합할 때 누구나 [전세깝] 또는 [전섿깝]으로 발음한다. 이를 발음대로 적자니 원형이 무너지고, 반대로 원형을 살려 ‘전세값’으로 적자니 표기가 실제 발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전셋값’은 그런 고민 사이에서 찾아낸, 일종의 절충형으로 이해하면 된다. 사이시옷을 덧붙임으로써 ‘전세’의 말음을 막아 뒤에 오는 ‘값’을 자연스럽게 [깝]으로 발음하게 한 것이다. 시옷(ㅅ)은 마찰음이지만 받침으로 쓰일 때 폐쇄음인 ‘ㄷ’(대표음)으로 발음돼 뒤에 오는 자음을 된소리로 나게 한다.하지만 사이시옷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특히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갈매기살'에 담긴 문법 코드

    코로나19 상황이 다시 나빠지고 있다. 7월 들어 초반 1주일 사이 신규 확진자 수가 전주 대비 두 배로 증가하는 등 빠르게 재유행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2년 넘게 팬데믹을 견뎌온 자영업자들의 우려 목소리도 다시 커지고 있다. 서울 도화동의 속칭 ‘갈매기골목’ 식당들도 그중 하나다. 1970년대 후반 형성되기 시작한 마포 갈매기골목에는 어느덧 40년 넘게 명성을 이어온 노포(老鋪) 여럿이 자리잡았다. 이곳이 워낙 알려지다 보니 지금은 마포 이름을 딴 갈매기살 식당을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을 정도다. 준말, ‘이’모음역행동화 등 엿볼 수 있어‘갈매기살’에는 우리말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문법 코드가 담겨 있다. 말이 만들어진 과정에서 준말 적는 법과 ‘이’모음역행동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갈매기살은 돼지의 가로막 부위에 있는 살을 말한다. 소고기로 치면 ‘안창살’에 해당한다. ‘가로막’이란 동물의 가슴과 배를 가로로 나누는 막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가로막살’이었다.‘가로막+살’ 사이에 접미사 ‘이’가 붙으면서 연음돼 ‘가로마기살’이 됐다가 다시 ‘이’모음역행동화에 의해 ‘가로매기살’로 바뀌었다. 이어 말이 줄면서 지금의 ‘갈매기살’로 변했다. 바다의 갈매기를 연상시킬 수도 있지만 어원상 전혀 상관없다.‘가로마기살→가로매기살’에서는 ‘이’모음역행동화가 눈에 띈다. 우리말에서 이 현상은 매우 광범위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쉽게 말하면 뒤에 있는 ‘이’모음의 영향을 받아 앞 음절 발음이 ‘이’음으로 바뀌어 나오는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