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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실업률 증가 '효과'가 있다고 쓰면…

    말에도 생태계가 있다. 그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우리말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지재권 면제’는 어휘 측면에서 우리말을 교란한 사례다. 단어(‘권리’와 ‘면제’) 간 의미자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부조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이번 호에서는 글쓰기에서 단어들의 선택과 나열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뤄지는지 좀 더 알아보자. 부정적 문맥에 ‘효과’ 쓰면 의미 어색해져문장을 만드는 과정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과정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먹다, 익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계열체)이 올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권리’라는 단어는 행사하거나 보호, 유예, 포기 같은 말과 어울린다. ‘의무/책임’은 면제하거나 부과, 추궁, 회피 등과 호응한다. ‘지재권 면제’라는 표현이 어색한 까닭은 이런 ‘어휘 선택과 구성’의 질서가 무너진 데서 온다. 모국어 화자라면 직관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글쓰기에서 이런 오류는 자주 발생한다.‘효과’ 또는 ‘영향’은 누구나 아는 단어다. 기초적인 어휘인데도 막상 글을 쓰다 보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권리'는 '면제'할 수 없어요

    지난 5월 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들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 면제’를 지지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발언은 즉각 전 세계 언론에 알려져 큰 반향을 몰고 왔다. 백신의 특허 보호를 풀어 세계 각국에서 복제 백신을 쉽게 만들게 하면 백신 보급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면제란 책임·의무를 지지 않게 하는 것한국시간 5월 6일 새벽 4시14분. 연합뉴스가 로이터통신을 인용해 관련 소식을 속보로 띄웠다. 핵심어는 ‘지재권 면제’였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후속 보도를 하면서 ‘백신특허 면제/포기/유예/해제/중단’ 등 용어상의 혼란을 보였다. ‘특허 면제’와 ‘포기’ 또는 ‘유예’ 등의 표현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상식적으로 어법상의 타당성만 살펴보기로 하자.우선 ‘권리를 면제하다’라는 표현은 이상하다. 직관적으로 볼 때 그렇다. ‘권리’와 ‘면제’를 결합시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면제’라는 말은 책임이나 의무 같은 것을 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다. 세금 면제, 지하철 요금 면제 같은 데에 이 말을 쓴다. 그런데 권리란 통상 책임이나 의무와는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책임 또는 의무는 면제할 수 있어도 권리는 면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니 ‘특허(지재권) 면제’ 같은 말은 우리 어법상 이치에 맞지 않는, 성립하기 어려운 표현인 셈이다.외신을 통해 들어온 원어는 ‘waiver(웨이버: 권리 등의 포기)’다. 웨이버는 ‘권리와 의무’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신년 '일출'과 새해 '해돋이'

    신축년 새해가 열렸다. 예전에 음력을 쓰던 시절에는 한 해의 첫째 달을 ‘정월(正月)’이라고 했다. 거기서 ‘정초(正初)’라는 말이 나왔다. 정초란 정월 초하룻날, 즉 그해의 맨 처음을 뜻한다. 또는 정월 초승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초하루부터 며칠 동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은 이런 뜻으로 정초를 많이 쓴다. 이중과세하는 우리 풍습…‘해맞이’도 두 번‘초승’은 그달의 초하루부터 처음 며칠 동안을 뜻하는 말이다. 한자어 초생(初生)에서 음이 변해 완전히 우리말로 정착한 단어다. 예전에 초생달이라고 하던 말이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초승달’로 바뀐 것도 그런 까닭이다.‘원단(元旦)’이란 말도 많이 쓴다. ‘으뜸 원, 아침 단’ 자로 새해 아침을 뜻한다. 한자 단(旦)은 대지 위로 해가 막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동이 트다’라는 뜻을 지녔다. 모두 음력을 쓰던 시절 얘기다. 양력 1월 1일에 이어 명절로 쇠는 음력 1월 1일(설)까지 정초를 두 번 치르는 우리 풍습에서는 자연스레 한 달여를 정초로 보내는 셈이다. 기분상 그렇다는 얘기다. 이즈음에도 정초니 원단이니 하면서 한 해의 출발을 다짐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에 맞춰 기업 등 직장에서는 시무식을 연다. 정당 등 단체나 기구에서는 단배식을 한다. ‘단배식(團拜式)’은 우리말에서 좀 독특한 위치에 있는 말이다. 일상에서는 거의 쓸 일이 없고, 연중 정초에만 쓰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널리 알려진 데 비해 국어사전에는 비교적 늦게 표제어로 오른 말이기도 하다. 유난히 이 말은 사회 공공단체, 특히 정당 등 정치권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외래어 대 다듬은말', 언중의 선택은?

    공공언어가 어렵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 수준의 말이면 독자들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일까? 지난 2월 20일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조사 대상 공공용어 140개 중에서 일반 국민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한 용어가 97개(69%)에 달했다.신문에서 자주 쓰는 외래어…국민은 어려워해‘산은, 공적 개발 원조, 예타, 일몰제, 라운드 테이블, 싱크탱크, 핀테크, 엠바고, 통화 스와프, 테스트베드, 밸류체인, 컨센서스, 규제 샌드박스, MOU, MICE산업….’ 신문 지상에 수시로 등장하는 외래어 및 한자어, 약어들에 “어렵다”는 응답이 줄줄이 쏟아졌다.외래어·한자어 다듬기는 광복 이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작업이다. 하지만 현실 언어와의 괴리는 여전하다. 그것은 ‘우리말 인식’ 수준이 아직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론 어떤 말이 나와서 퍼지고 자리 잡는 과정이 인위적으로, 특히 하향식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도 새삼 일깨워준다.다듬은말이 언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형태와 의미 면에서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말 지키기나 살리기 식의 ‘명분론’ 또는 ‘당위론’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경쟁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10여 년 전 남기심 전 국립국어원장이 한 인터뷰에서 지적한 데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요즘 ‘(병)따개’라고 쓰는 말을 예전엔 ‘오프너’라고 했습니다. 애초 정부에서 순화 작업을 하면서 제시한 말은 ‘마개뽑이’였는데, 그리 호응받지 못했어요. 대신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