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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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소설의 첫 문장들
최인훈 ‘광장’의 첫 문장은?첫사랑, 첫해, 첫아이, 첫인상, 첫 등교, 첫 월급. 모든 ‘첫’은 설렘과 긴장을 동반한다. 우리는 일상이 지루할 때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획하여 ‘첫’의 의미를 부여하고 크고 작은 실패를 했을 때 ‘첫’을 만드는 노력으로 삶에 기회를 다시 부여하기도 한다. 소설의 첫 문장은 어떨까? 흡인력 있는 첫 문장들을 읽어 보자.<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광장(최인훈)』의 첫 문장이다. 이 소설은 제목은 광장이지만 그 시작과 끝은 바다다. 주인공 명준이 떠난 곳이 바로 바다였다. 광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무거운 주제만큼이나 무거운 바다. 그래서 비늘도 육중하다.<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조세희)」의 첫 문장이다. 1970년대 도시 개발의 이면에는 강제 철거로 보금자리를 잃고 밀려난 도시 빈민의 눈물이 있었다. 이 작품은 그들의 비참한 삶과 고통을 빼어난 문장으로 형상화하였다. 신산한 세상에 대한 비판은 화자의 이어진 문장에 담겨 있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벌써 30년이 다 돼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은 이렇게 시작한다. 30년이 지나고 이제는 중년의 가장이 된 사내가 초등학교 시절 교실에서 치렀던 ‘전쟁’을 회상한다. 지금도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한 것은 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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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동동
동동은 작은북 소리?12연이나 되는 시가는 어딘가 부담스럽지만 그게 월령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일 년은 열두 달이니 매달 대응하는 시가가 하나씩. 낱개 포장된 12개의 과일이 한 박스에 포장된 느낌이라고 할까. 독립성이 있으면서 전체로는 하나다. 읽다 보면 연과 연 사이에서도 리듬감이 느껴진다. 색다른 맛이 나는 매력적인 형식이다.고려가요 ‘동동’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월령체 노래다. 서사까지 합치면 총 13연. 동동은 북소리로 추정된다. 둥둥이 큰 북소리라면 동동은 작은 북소리다. 작은 북소리지만 그 울림은 작지 않다. 작품 속 목소리는 아무래도 여인의 것이지 싶다. 사랑을 잃은 여인. 씩씩하게 실연의 아픔을 걷어내지 못하고 연중 사랑을 앓는 여인이다.<정월 냇물은 얼었다 녹았다 하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이 몸이여 홀로 살아가는구나.> 시작인 정월령부터 고독하기 짝이 없다. 매섭고 찬 기운이 옷자락을 파고들어 그 고독감을 배가한다. 봄이 오면 좀 나아질까? 3월령은 노래한다. <3월 지나며 핀 아아 늦봄의 진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태어나셨구나.> 임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찬양은 원래 반한 사람의 몫. 연정이 봄 아지랑이 같이 일렁인다.여인의 비애는 12월령···그러나 그뿐 작품 어디에도 임과 함께하는 순간은 찾을 수 없다. 5월 5일 수릿날에는 임의 만수무강을 비는 약을 바치고 7월 보름 백중날에는 제물을 벌여 놓고 함께 살고자 소원을 빈다. 8월 보름에는 임을 모시고 지내야만 뜻있는 한가위가 될 거라고 노래하고 9월 9일 중양절에는 노란 국화꽃이 핀 집 안에서 적막감을 견딘다. 여인을 이다지도 외롭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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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제망매가
누이의 죽음과 무력한 인간존재갑작스러운 이별은 아프다.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보낸 이들을 우리는 가슴에서 지우지 못한다. 청춘에 요절한 이 역시 안타깝다. 더 이상 나이 먹지 않는 젊은 얼굴을 늙어가는 우리가 애달파한다. 그럴진대 이 두 가지가 함께인 죽음에 대해서는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그가 한 부모에서 난 동기(同氣)라면.‘제망매가’ 속 누이의 죽음이 바로 그런 죽음이다. 함께 뛰놀며 자란 형제자매가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리라고 예상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남들이 범상하게 나누는 남매의 정을 나누지 못하게 된 운명에 월명사는 무상감을 느낀다. 그리고 무상감은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이런 죽음은 죄에 대한 벌도 아니고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도 아니다. 그저 닥쳐온 것, 피할 수 없는 어떤 절대다. 생사의 길이 바로 여기 있건만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 무력한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 앞에서 우리는 그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누이와의 재회는 서방정토에서그럼에도 우리는 죽은 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행인지 불행인지 죽은 이와의 재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은 우리가 죽는다는 것 하나다. 그러므로 망자와의 재회는 내세에서 가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미타찰에서 만나기를 기원한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언제일지 모를 그때를 기다리며 도를 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타찰은 서방정토다. 서방정토는 서쪽으로 십만억의 국토를 지나면 있다는 아미타불의 세계다. 부처가 있고 고통은 없는 곳. 《삼국유사》에 의하면 월명사가 재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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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정읍사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정읍사는 현전(現傳)하는 유일한 백제 노래다. 정읍은 전주의 속현(屬縣)이다. 고려시대에 향유된 음악과 관련한 가장 권위 있는 기록인 ‘고려사악지’에는 이 노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배경 설화가 전한다. 정읍 사람이 행상을 떠나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 아내가 산 위의 바위에 올라 남편이 간 곳을 바라보며 남편이 밤길을 오다가 해를 입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고개에 올라 달에 의탁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이 전하기를, 오른 고개에 아내의 망부석이 있다 한다.행상 나가 오래도록 귀가하지 않는 남편을 아내는 기다린다.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시절 평범한 민초에게 통신 수단이 있었겠는가.아내는 남편이 걱정되었으리라. 걱정 끝에 달을 보며 소망을 말한다. 높이 돋아서 멀리 비추시오. 세상을 훤히 비추어 우리 서방님 밤길 무사히 걷도록 해 주시오. 아내는 남편이 ‘즌 (진 데)’를 디딜까 염려한다. 진 데, 진 곳, 진 땅. 이는 남편에게 닥칠 수 있는 위해에 대한 염려이다. 또는 남편에게 다른 여인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도 읽힌다.임이 없다면···달은 메신저물론 의심은 연모의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또 아내는 염려한다. ‘내 가논 ’가 저물까봐. ‘내 가논 ’는 ‘내가 가는 길’, ‘남편이 가는 길’, 또는 ‘임과 내 앞에 놓인 길’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어떻게 해석해도 이것이 임의 부재가 초래할 순탄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내가 바라보는 저 달, 아마 남편도 바라보고 있겠지. 아내는 어딘가에서 저 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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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공무도하가
공무도하가. 대한민국에서 고교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면 모를 수 없는 작품이다. 길이는 짧아서 달랑 네 구. 그러나 그 네 구의 이면에 존재하는 서사는 심상치 않다. 고조선의 뱃사공 곽리자고가 새벽 강가에서 백수광부(머리가 하얗게 센 미친 사내)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술병을 들고 어지러이 물을 건너는 것을 발견했다. 그의 아내가 쫓아가서 막으려 했으나 그 사람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아내는 슬퍼하며 공후를 타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남편의 뒤를 따라 물에 뛰어들었다. 곽리자고가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그 광경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들려주자 여옥은 곧 공후로 그 소리를 본받아 탔는데 듣는 이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했다. 그리고 여옥은 그 소리를 이웃 여자 여용에게 전했는데 이를 공후인이라 일컫는다.이것이 ‘공무도하가’에 얽힌 배경 설화이다. 고교 시절 이런 의문을 품었다. 왜 둘이나 되는 사람이 한 사람의 죽음을 말리지 못하고 사후에 슬퍼만 했을까. 또 노래라니. 왜 저들은 죽음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알 것 같다. 말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말릴 수 없는 비극이 그를 삼켰음을. 미처 손 써 볼 틈도 없이 급습하는 찰나의 이별이 세상에는 그리 드물지 않음을. 또 삶에는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비애와 아픔이 있고 배우자와도 나눌 수 없는 고통에 내몰리는 사람도 있음을. 그리고 또 이제는 안다. 통곡과 하나인 노래가 터져 나오는 순간, 노래는 남겨진 자들이 애도를 표하는 가장 순일한 형식이라는 것을. 고통은 광부의 것이고 슬픔은 남겨진 아내의 것이다. 그 슬픔을 다시 나누는 것은 뱃사공과 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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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문학이란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죠"
몽골에서는 기르던 개가 죽으면 꼬리를 자르고 묻어 준단다다음 생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라고,사람으로 태어난 나는 궁금하다내 꼬리를 잘라 준 주인은 어떤 기도와 함께 나를 묻었을까가만히 꼬리뼈를 만져본다/이운진, ‘슬픈 환생’ 중에서시선을 사로잡는 문학작품첫눈에 시선을 붙들어 매는 문학 작품들이 있다. 이런 작품들은 읽는 이가 자각하기도 전에 그를 낯선 시공으로 이동시킨다.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는 이 시가 그랬다. 시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고비 사막 모래 바람 속에서 눈물을 훔치며 개의 꼬리를 자르는 몽골인이 된다. 주인의 품에서 잠든 것을 마지막 행복으로 여기는 개가 된 듯도 하다. 그러다가 또 금세 서재로 돌아와 사막에 묻힌 꼬리들을 세어 본다. 얼마나 많은 꼬리들이 모래언덕 사이에 숨어 있을까. 꼬리들 하나하나가 품고 있을 사연과 주인의 기도 내용을 궁금해 한다.이 시를 읽은 많은 이들이 아마도 몽골로 시간 여행을 했으리라. 칭기즈칸의 시대로 가 환란의 어지러움에 휩쓸리기도 하고 연대 불명의 사막으로 가 낙타의 쌍봉에 올라타기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반려 중인 강아지를 껴안으며 꼬리를 만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나 지금은 별이 된 고양이를 떠올리며 환생을 빌었을 것이다. 또는 시인처럼 ‘개보다 훨씬 길게 슬픔과 싸워야 할 시간’을 버거워하거나 꼬리와 맞바꾼 삶이 꼬리보다 무거움에 또는 가벼움에 고민했을지도 모르겠다. ‘양 떼를 몰고 초원을 달리던 바람의 속도’를 기억하려 애쓰다 망각의 슬픔마저 초원의 건조함에 빼앗겨버렸을 수도 있다.상상을 하고 삶을 돌아본다어쨌든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