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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희망 쏜 누리호

    국내 기술로 제작한 첫 한국형 발사체(KSLV-Ⅱ) 누리호가 지난달 21일 오후 5시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됐습니다. 지구 상공 700㎞ 지점까지는 성공적으로 올라갔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1.5t짜리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올려놓지 못했습니다.2010년 개발을 시작한 3단 발사체 누리호는 설계와 제작부터 시험, 인증, 발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국내 독자 기술로 수행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중공업 등 300여 개 기업이 참여했죠. 1단 로켓은 추력(推力) 75t급 액체 연료 엔진 4기(300t)를 묶어(클러스터링)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했습니다. 75t급 액체 엔진 1기로 이뤄진 2단도 성공적으로 작동했죠. 7t급 액체 엔진 1기를 탑재한 3단은 계획된 521초보다 짧은 475초만 연소한 뒤 꺼져 위성 모사체가 궤도에 안착하는 데 필요한 속도(초속 7.5㎞)를 내지 못했습니다.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위성 모사체는 지구로 떨어졌습니다.하지만 가장 어려운 과제인 1단 로켓이 지상 59㎞까지 날아올랐고 1·2·3단 로켓 및 위성 분리, 페어링(발사체 맨 윗부분 덮개) 분리까지 완벽하게 이뤄지면서 발사체의 비행 성능은 확보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앞서 2013년 발사에 성공한 2단 발사체 나로호는 170t급 1단 엔진을 통째로 러시아에서 들여왔고, 우리는 2단만 개발했습니다. 나로호는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실패를 겪은 뒤 100㎏ 과학위성을 지상 300㎞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나로호와 비교한다면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누리호는 첫 발사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지금까지 1t급 위성을 자력으로 쏘아올린 나라는 러시아(1957년) 미국(1958년) 유럽(1965년) 중국(1970년) 일본(1970년) 인도(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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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첨단기술 한데 모은 누리호…"우주 도전, 포기는 없다"

    한국이 우주개발에 나선 것은 1992년 첫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유럽의 아리안 발사체 V52에 실려 브라질 북부 프랑스령(領) 가이아나 쿠르기지에서 발사되면서부터입니다. 러시아의 전신인 옛 소련이 1957년 세계 첫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궤도에 올린 지 35년이 지나서입니다. 우리별 1호는 영국 세레이대학의 기술을 전수받아 제작한 48.6㎏의 소형 인공위성입니다. 고도 1300㎞ 궤도에서 영상 촬영 등 임무를 수행했죠. 1993년에는 순수한 우리 기술로 설계 제작한 ‘우리별 2호’가 발사됐고, 이후 20여개의 우리 위성이 우주에 올려졌지만 모두 다른 나라의 발사체에 실려서였습니다. 첨단기술의 총합 우주발사체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금지된 분야여서 우리가 독자 개발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1979년 체결된 한·미 미사일지침(MTCR)이 우리 로켓 기술 개발에 족쇄가 됐습니다. 일본에는 액체 로켓기술을 이전해준 미국이 1978년 한국의 비행거리 200㎞ 백곰 미사일 발사 성공에 놀라 미사일 개발 중단을 요구하면서 이 지침이 생겼죠. 당시 비행거리 180㎞, 탄두중량 500㎏으로 제한된 미사일 지침은 몇 차례 완화되다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42년 만에 종료됐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1993년 1단계 과학로켓(KSR-Ⅰ) 등 수차례 소형 발사체 개발을 추진하는 수준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과학로켓 1호는 화물중량 150㎏, 최고고도 75㎞였고, 이후 고도 258㎞까지 개량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었죠.우주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삼은 한국은 급기야 미국 대신 러시아와 기술협력을 하게 됐습니다. 2003년 3단계 과학로켓(KSR-Ⅲ)을 러시아와의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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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대포로 쏴서 달에 보낸다는 상상이 로켓이 됐죠

    쥘 베른(1828~1905)은 우주여행과 미래 과학기술을 테마로 글을 많이 쓴 소설가입니다. 그를 빼놓고 과학소설(SciFi)의 계보를 말할 수 없죠. 과학소설의 개척자였으니까요.그가 쓴 《지구에서 달까지》는 우주적 상상력과 작가적 역량이 빚어낸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소설은 사람을 대포로 쏘아서 달나라로 보내자는 사업을 둘러싸고 전개됩니다. 현재 시각에서 보면 멍청한 소리 같지만 당시엔 멋진 상상이었습니다. 지금과 다른 게 있다면 대포가 로켓으로 고급화됐다는 것뿐이죠. 지난달 21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KSLV-Ⅱ)는 ‘고급 대포’나 마찬가지죠. “쥘 베른은 우주적인 상상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매우 드물고 아름다운 능력이다. 그는 시인이자 놀라운 예언자이며 능력 있는 창조자였음을 어느 누가 감히 부인할 것인가?” 아나톨 르브라즈라는 사람은 그를 이렇게 극찬했습니다. 쥘 베른의 생각이 미국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보다 1세기나 앞서서 나왔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쥘 베른은 ‘대포 인간’ 외에 다른 상상도 소설에 펼쳐보였습니다. 잠수함, 입체영상, 해상도시, 텔레비전, 먼 우주 여행, 투명인간 개념들이었죠. 그의 소설은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가 아니었습니다. 과학소설은 물리와 과학의 법칙이 성립되는 세상을 경이로움과 버무립니다. 반면 판타지는 현실과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창조하고 물리 법칙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쥘 베른은 미래에 등장할법한 것들을 철저한 자료조사를 통해 창조하고 묘사했습니다.쥘 베른보다 한 세대 늦게 태어난 치올코프스키(K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ii: 1857~1935)라는 소련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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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타계 1주기…기업가 정신을 되새기다

    생글생글은 3주 전 아이폰을 만든 ‘미국의 영웅’ 스티브 잡스를 기리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가 아이폰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 애플을 어떤 기업으로 성장시켰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획이었습니다.생글은 이번주에 타계 1주기(10월 25일)를 맞은 ‘한국의 영웅’ 이건희 삼성 회장을 되돌아보는 커버스토리를 준비했습니다. 자원과 기술이 척박했던 한국에서 이 회장이 어떻게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을 할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삼성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되짚어 보려는 것이죠.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1987년 삼성 지휘봉을 잡은 이 회장은 30년 만에 삼성을 반도체와 휴대폰 부문에서 ‘월클 레전드’ 기업으로 올려 놨습니다. 이 회장이 이룬 업적은 잡스의 업적보다 결코 못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는 돈도, 자원도, 인재도, 시장도 넘치지만 한국 사정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꽉 잡고 있던 반도체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세계적 기업들이 쥐락펴락하는 휴대폰 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이 회장은 다 바꿀 것을 삼성 식구들에게 호소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봐”는 그가 남긴 대표적인 말입니다. 그리고 삼성에 초일류 DNA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 회장이 월급쟁이 경영자였다면 이런 변신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는 미래라는 불확실성과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혁신한 기업가였습니다. 설탕, 밀가루, 라디오, TV 생산에 만족하면서 회사를 꾸렸다면 지금 같은 삼성은 없었겠지요. 이것을 우리는 기업가 정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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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1등' DNA 심어준 도전가…삼성을 '월클'로 키우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 기업 역사에서 ‘월클 레전드’로 평가받습니다.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 한 선수가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려면 어떤 실력을 갖춰야 하는지를 여러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데이비드 베컴, 디에고 마라도나, 마이클 조던, 르브론 제임스…. 우리는 레전드들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업적을 추앙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왜 ‘월클’로 꼽힐까요?이 회장은 1987년 부친인 고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을 맡았습니다. 그가 30년간 이룬 업적을 몇몇 수치를 통해 살펴볼까요? (1)매출: 1987년 9조9000억원, 2018년 387조원. (2)영업이익: 1987년 2000억원, 2018년 72조원. (3)시가총액: 1987년 1조원, 2018년 396조원. (4)고용 인력: 1987년 10만 명, 2018년 52만 명. 더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매출 39배, 영업이익 360배, 시가총액 396배, 인력 5.2배 증가. 삼성이라는 브랜드 파워는 1987년 바닥권에서 작년 5위로 올라섰습니다. 작년 발표된 ‘글로벌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다음 자리를 삼성이 꿰찬 겁니다. 정확하게 한 세대(30년)를 고생한 끝에 낙(樂)이 온 겁니다. 경이적인 성과요 성장입니다. 애플도 경계하는 초일류가 됐습니다.아무나 할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한국에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10개, 20개는 됐겠죠? 기업 세계, 시장의 세계는 아무나 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잠시 자연의 세계를 들여다봅시다. 지구 역사상 대멸종사건이 다섯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생물 99%가 멸종했고 1%만 생존해 지금 지구에 남았다고 합니다. 환경에 적응하고, 변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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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혁신으로 한계 뛰어넘자"…초일류 경영 '뚝심'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해야 합니다.”이건희 삼성 회장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눕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그해 신년사입니다. 지난해 별세할 때까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혁신으로 한계를 돌파하자는 이 회장의 2014년 신년사는 그의 마지막 어록이 되었습니다. 이미 삼성전자를 세계 1등 기업으로 키운 그이지만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도 끝없는 혁신을 강조한 것입니다. “삼성은 국민적 기업, 초일류로 성장시킬 것”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7년 별세하면서 45세의 나이에 삼성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 회장의 취임 일성은 ‘제2의 창업’이었습니다. 창업주의 유지를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켜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삼성은 이미 한 개인이나 가족의 차원을 넘어 국민적 기업”이라는 회장 취임사에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1983년부터 투자한 D램 반도체를 1993년 세계 1위로 키운 이 회장은 그해 6월 독일 출장 중에 세탁기 뚜껑 규격이 맞지 않아 칼로 깎아내는 사내방송 비디오를 본 뒤 곧바로 서울로 전화를 걸어 “사장들과 임원들을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삼성그룹의 운명을 바꾼 전화 한 통,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 350여 시간 이어진 강연을 통해 이 회장은 ‘신(新)경영’을 강조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이다. 잘해봐야 1.5류”라고 질타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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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D 강국' 한국, 노벨상 왜 못받나

    커버스토리매년 10월이면 세계가 주목하는 ‘발표’가 있습니다. 바로 그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누구냐 하는 것이죠. 지난 4일 온도와 촉각 수용체를 발견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와 스크립스연구소의 아르뎀 파타푸티언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11일 경제학상까지 6개 부문 13명의 수상자가 모두 발표됐습니다. 아쉽게도 한국인 수상자는 올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2000년 고(故)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첫 남북한 정상회담을 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후 20년 넘도록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노벨상은 스웨덴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이 기부한 재산을 바탕으로 매년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1901년 제정된 이후 노벨상 수상자는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와 명예를 인정받습니다. 이번에 수상한 이들도 모두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노벨상은 특히 6개 시상분야 중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과학상이 3개에 달할 정도로 기초과학 분야를 중시합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인 한국으로선 아직 과학분야 노벨상을 타지 못한 것이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습니다. 문화적·정서적 차이로 동서양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문학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평화상과 달리 과학상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이웃 나라 일본은 비록 국적은 미국이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마나베 슈쿠로 프린스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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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초과학 약한 한국, 노벨상 '빈손'…"그래도 희망은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016년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못 받는 이유’ 다섯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활발한 토론이 어려운 경직된 연구실 분위기, 기업에 의존하는 응용학문 중심의 연구개발(R&D) 투자, 시류에 편승하는 주먹구구식 투자, 인재 해외 유출, 정부 R&D 투자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논문 수 등이었습니다. 당시엔 한국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일 정도로 엄청난 자금을 과학기술에 쏟아붓고 있었지만 “노벨상은 돈만으로 안 된다”고 꼬집었던 것이죠. 아직도 모자란 기초과학 육성노벨 과학상이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을 중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네이처의 진단은 2021년 현재에도 뼈 아픈 지적입니다.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그동안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폈고 R&D 투자도 당장 돈이 될 만한 분야에 집중했습니다. 반도체는 잘 만들지만 컴퓨터의 두뇌라 할 중앙처리장치(CPU)는 미국 인텔에 의존한다거나, 휴대폰의 핵심인 모바일 중앙처리장치(AP)는 자체 개발했지만 운영체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의존하는 등 원천기술보다 제품화를 위한 응용기술에 집중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초과학보다 응용과학 위주로 R&D 투자를 해왔죠. 우리나라 R&D 투자의 75%를 기업이 주도한다는 게 당시 네이처의 분석이었습니다.뛰어난 인재들이 변호사 의사 등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분야에 몰린다는 점도 기초과학 발전에 걸림돌로 보입니다. 영재학교 과학고 등 과학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춘 학교도 있지만 입시 위주 교육환경은 과학고 졸업자마저도 의대로 진학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