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바뀌었다'를 '바꼈다'로 줄여 쓰는 건 잘못

    “전화번호가 OOO-××××로 바꼈어요.” “그는 그녀와 중학교 때부터 사겼다고 한다.” “그 여자는 내 말에 콧방귀만 꼈다.” 이런 말에는 공통적인 오류가 들어 있다. ‘바꼈어요, 사겼다고, 꼈다’가 그것이다. 각각 ‘바뀌었어요, 사귀었다고, 뀌었다’를 잘못 썼다.한글 모음자에 ‘ㅜ+ㅕ’ 없어 더 이상 줄지 않아이들의 기본형은 ‘바뀌다, 사귀다, 뀌다’이다. 공통점은 어간에 모두 모음 ‘ㅟ’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뒤에 모음 어미 ‘-어’가 붙을 때 줄어들지 않는, 우리말의 독특한 모음 체계 한 가지를 보여준다.얼핏 보기에 ‘바뀌+어→바껴’로 줄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모음끼리 어울려 ‘-여’로 바뀌는 것은 어간 ‘이’와 어미 ‘-어’가 결합할 때다(한글맞춤법 제36항). ‘가지어→가져, 견디어→견뎌, 막히어→막혀’ 같은 무수한 말들이 모두 그렇게 줄었다. 그러면 예의 ‘바뀌다, 사귀다’ 등에 어미 ‘-어’가 어울리면 어떻게 바뀔까? ‘~이어→~여’의 원리를 적용하면 ‘ㅟ어→(ㅜㅕ)’, 즉 ‘바(꾸ㅕ), 사(구ㅕ)’쯤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모음 체계에는 이를 나타낼 글자가 없다. 컴퓨터 자판으로도 조합이 안 돼 두 글자로 써야 할 판이다.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부터 없던 것이다. 한글 자모는 자음 14개, 모음 10개로 24자다. 모음만 보면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이다. 이 10개 모음자로 적을 수 없는 소리는 두세 개를 합쳐 적는데, 그것은 ‘애, 얘, 에, 예, 와, 왜, 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면서'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 져요

    “그는 1961년부터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재직했다. 이때부터 그는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는 시를 쓰면서 대표적인 저항시인의 면모를 보였다. 군(軍) 시절 앓았던 간디스토마가 재발하면서 1969년 39세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껍데기는 가라>로 잘 알려진 시인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지 올해 50주년이다. 그를 소개한 이 대목은 얼핏 보면 딱히 꼬집을 데 없는, 완성된 글이다. 하지만 곰곰 뜯어보면 거슬리는 데가 있다.두 개 동작이 동시에 일어날 때 쓰던 말간디스토마가 ‘재발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이 표현이 어딘지 어색하다. ‘-면서’의 사전적 용법은 ‘두 가지 이상의 움직임이나 상태 따위가 동시에 겸하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표준국어대사전). 이 풀이의 핵심은 ‘두 가지 동작이 동시에 이뤄짐’에 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새다.‘재발하면서’가 쓰인 문맥은 좀 다르게 읽힌다. ‘간디스토마가 재발해 결국 세상을 떠났음’을 나타낸다. 두 동작은 시간차가 있으며 인과관계에 놓여 있다. 문장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그런 데서 연유한다. 독자에 따라 비문으로 보기도 할 것이다.최근 이런 표현이 넘쳐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쓰고 독자들도 무심히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를 어법의 변화로 봐야 할까? 아니면 잘못 쓰는 말이므로 적극적으로 바꿔 써야 할까? ‘-면서’는 두 가지 이상의 동작이나 상태를 겸하여 나타내는 것이 원래의 전형적 용법이다. ‘책을 주면서 말했다’ ‘사나우면서 부드러운 데가 있다’ 같은 게 그 예다. 1961년 나온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열두째'는 차례…수량 말할 땐 '열둘째'죠

    헷갈리는 수의 세계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자. “왼쪽에서 (열두째/열둘째)에 있는 사람이 나야.” “이번 시험은 만점자가 많군. 이 답안지가 벌써 (열두째/열둘째)야.” 두 문장에 쓰인 ‘열두째’와 ‘열둘째’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첫 문장은 ‘열두째’, 둘째 문장은 ‘열둘째’라고 해야 한다.둘째, 셋째, 넷째는 차례.수량 아울러 써‘열두째’는 맨 처음에서 열두 번째라는 뜻이다. 차례, 순서를 말한다. “위에서 열두째 줄을 읽어 보아라”처럼 쓴다. 이에 비해 ‘열둘째’는 열두 개째란 뜻이다. 지금까지 모두 해서 몇 개째임을 말한다. “이 라인에서 발견된 불량품이 오늘만 벌써 열둘째다” 식으로 쓴다. 표준어 규정 제6항 얘기다.말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음이 달라지거나 줄어들어 형태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제6항은 발음 변화에 따른 표준어 사례를 담았다. 두 개의 비슷한 발음 중 하나는 버리고 다른 하나만을 표준어로 삼았다. 단수표준어의 사례다.예전엔 ‘두째, 세째’와 ‘둘째, 셋째’를 구별해 썼다. ‘두째, 세째’는 차례를 나타낼 때, ‘둘째, 셋째’는 수량이나 개수를 나타낼 때 썼다. 하지만 언어 현실에서 이 같은 구별이 쉽지 않고 다소 인위적인 측면도 있어 이를 ‘둘째, 셋째’로 통합했다(네째/넷째도 넷째로 통일). 따라서 지금은 ‘둘째, 셋째, 넷째’가 차례와 수량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쓰인다. 바꿔 말하면 우리말에 ‘두째, 세째, 네째’ 같은 말은 없다는 얘기다.하지만 예외가 있다. 십 단위 이상에서는 ‘열두째, 스물두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칠칠맞다"는 칭찬하는 말이에요~

    지난 4월 치러진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GSAT)에서는 언어논리가 특히 어려웠다고 한다. 인터넷에는 ‘칠칠하다’ ‘서슴다’ 같은 생소한(?) 단어 앞에서 ‘멘붕’을 느꼈다는 후기가 잇따랐다. 이런 말은 낯설다기보다 우리말 용법의 허를 찌르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들은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못하다/않다/없다’ 등 부정어와 어울려 쓰인다. 그러다 보니 본래 의미를 간과하게 된, 그러기 십상인 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알차다’에서 ‘야무지다’로 의미 확대돼흔히 쓰는 용법을 토대로 원래 형태의 의미를 추리하고 응용하는 능력을 파악하기에 적절한 사례들이다. SNS 등의 ‘일탈적 언어’ 사용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낯설게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언어 등 규범어를 꾸준히 접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다. 생글 코너를 통해서도 몇 차례 다룬 내용이었다.‘칠칠하다, 서슴다, 탐탁하다, 심상하다, 아랑곳하다.’ 얼핏 보면 의미가 잘 안 떠오른다. 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부정어와 함께 쓰는 말이라는 점이다. ‘칠칠하지 못하다, 서슴지 않다, 탐탁지 않다, 심상치 않다, 아랑곳없다.’ 이렇게 하고 보면 이들이 일상에서 흔히 쓰는, 아주 익숙한 말이라는 게 드러난다. 하지만 부정어를 떼어내고는 잘 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 의미가 퇴색해 기억에서 멀어진 것일 뿐이다.‘칠칠하다’는 본래 나무나 풀, 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검고 칠칠한 머리’ 같은 표현에 이 말의 본래 쓰임새가 살아 있다. 물론 지금도 쓰는 말이다. 이 말이 의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금명간'은 한자어…'이른 시일 내'로 쓰면 쉽죠

    지난 4월 26일 새벽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는 과정에서 ‘빠루’가 등장했다. 곧이어 포털사이트엔 ‘빠루’가 실시간검색(실검)에 올랐다. 이에 앞서 14일 치러진 삼성그룹 대졸공채시험 뒤에도 ‘칠칠하다’ ‘서슴다’ 같은 단어가 화제가 됐다. 신문들은 문제로 나온 낯선 낱말 앞에서 수험생들이 당혹스러워하던 분위기를 전했다.‘빠루-노루발못뽑이’ 둘 다 실패그런 사례는 많다. 지난 3월엔 ‘금명간’이 실검에 떠 주목을 받았다. 경찰에서 한 연예인의 구속 영장을 ‘금명간 신청한다’는 보도가 나온 뒤였다. ‘금명간’이 뭐지? 네티즌에게 이 말이 생소했던 모양이다.우리말을 둘러싼 이런 관심은 두 가지 상반된 화두를 던진다. 하나는 우리말을 대하는 인식이 사회적 화제가 될 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니, 이런 말을 잘 모르나?’ 하는 안타까움도 묻어난다. 이런 사례는 우리말을 살찌우기 위해 필요한 언어정책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시사한다.이들은 사실 오래전부터 써오던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든 지금은 덜 쓰는 말이 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지렛대 원리로 못을 뽑는 도구인 ‘빠루’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영어로는 ‘크로 바(crow-bar)’다. 까마귀 발을 닮았다 해서 그런 말이 생겼다. 이걸 일본에서 뒤의 ‘바’만 따다 ‘바루(バ-ル)’라고 적었는데,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된소리 ‘빠루’가 됐다. 원어에서 멀어져 왜곡된 형태로 자리잡은 것이다.당연히 순화의 칼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국립국어원에서 ‘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20살'보다 '스무 살'로 쓰는 게 좋아요~

    우리가 흔히 쓰는 1, 2, 3 등 아라비아숫자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게 언제쯤일까? 아래 예문을 토대로 추정하면 대략 100년이 채 안 될 것 같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펼친 문자보급운동이 계기가 됐다.① 다음 숫자를 차례차례 한 자씩 쓰고 읽는 법을 가르칠 것. 一 1, 二 2, 三 3 …. (조선일보사 <문자보급교재> 1936년)② 필산숫자: 1(一), 2(二), 3(三) …. 한문숫자: 일 一 (하나), 이 二 (둘), 삼 三 (셋) …. (동아일보사 <일용계수법> 1933년)100년 전 ‘1, 2, 3’을 ‘일, 이, 삼’으로 가르쳐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숫자를 읽는 방식이다. 아라비아숫자 1, 2, 3을 나열한 뒤 이를 읽고 쓰는 법을 한자 ‘일(一), 이(二), 삼(三)…’으로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 수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수량을 셀 때 쓰는 말을 ‘기수(基數)’라 하고, 사물의 순서를 나타낼 때 쓰는 것을 ‘서수(序數)’라고 한다. 일, 이, 삼(한자어 계열) 또는 하나, 둘, 셋(고유어 계열) 등이 기수다.(서수는 한자어로 제일, 제이, 제삼..., 고유어로 첫째, 둘째, 셋째 식으로 한다.)아라비아숫자는 수사가 아니라 수를 나타내는 여러 부호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읽을지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에선 일, 이, 삼(한자어) 또는 하나, 둘, 셋(고유어)으로 읽고 영어로는 원, 투, 스리다. 일어에서는 이치, 니, 산이며 중국에선 이, 얼, 싼이다. 한국인이 1, 2, 3을 보고 유독 일, 이, 삼, 즉 한자음으로 읽는 까닭은 100여 년 전 문자 보급 당시 그리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부터 ‘일~십’을 소리는 한자음으로 익히고 뜻은 고유어 ‘하나~열’로 새겼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양해는 '드리는' 게 아니라 '구하는' 거죠

    지난 몇 회에 걸쳐 언어에 내재한 논리적 구조에 대해 살폈다. 우리는 말을 할 때 왕왕 언어의 논리성을 무시한다. 이것은 지력의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논리적으로 말하고 쓸 때 합리적·과학적 사고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대로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람이 말을 비논리적으로 할 까닭이 없는 이치와 같다.“양해 말씀 드립니다”는 의미상 성립 못 해“재판 결과 혹은 법관의 인사 문제는 삼권분립을 훼손할 소지가 있어 청원 답변에 한계가 있다는 점 거듭 양해 말씀 드리면서 답변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에 답변하는 원고(청원답변 79호)가 올라왔다. 여기에도 이치에 맞지 않는, 어색한 곳이 하나 있다. ‘양해 말씀 드리면서’ 부분이 그것이다.‘양해’는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누군가 이 말을 썼다면 말하는 이가 어떤 문제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 된다. 예문은 정부가 국민에게 말하는 상황이다. 국민이 양해할 일을 정부가 한 꼴이니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말씀’은 남의 말을 높여 이를 때도, 자기의 말을 낮춰 이를 때도 쓴다. 양쪽으로 다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에서는 ‘남의 말’을 높인 주체존대 문장이다. “제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에서는 ‘자신의 말’을 낮춘 상대존대에 쓰였다. “철수야, 선생님한테 꼭 말씀드려라”에서는 화자가 아니라 철수를 낮춘, 객체존대형이다.그러면 ‘드리다’의 경어법상 정체는 뭘까? “철수가 동생 영희한테 저녁을 차려주었다”란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커피 나오셨습니다"는 사물을 높인 잘못된 말

    우리말에서 ‘되다’의 유용성은 매우 크다. 활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남용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 호에서 살핀 “좋은 하루 되세요”가 그런 사례다. 동사 ‘되다’의 쓰임새는 역사적으로 확장돼 왔다. 1957년 완간된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 당시만 해도 ‘되다’ 풀이에 ‘물건이 다 만들어지다’ 등 세 가지밖에 없었다. 1990년대 나온 국어사전들에서는 열 가지가 넘는 풀이로 넓어졌다.‘-시’는 주어를 높이는 말…사물에는 안 써“5000원 되겠습니다” “다음 역은 서울역이 되겠습니다” 같은 표현은 괜찮을까? 어법에 틀리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되다’ 항목에 이들을 용례로 올리고 있다. ‘되다’는 어원적으로 ‘다(如)’에서 온 말이다(김민수 편, 우리말 어원사전). 쓰임새가 많이 확장됐다 해도 그 본질은 벗어나지 않는다.하지만 “5000원 되시겠습니다” “다음은 서울역이 되시겠습니다”라는 말은 곤란하다. 이런 용법은 우리말 경어 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사물존대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어법은 크게 나눠 주체존대, 객체존대, 상대존대 방식이 있다. “커피 나오셨습니다”를 통해 이를 살펴보자.‘나오셨습니다’의 ‘-시’는 주체를 존대하는 데 쓰는 어미다. ‘선생님께서 오시었다’처럼 서술어미 앞에 온다고 해서 선어말어미라고 한다. 문장의 주체가 말하는 이보다 높을 때 이 ‘-시’를 사용한다. ‘커피(가) 나오셨습니다’이니 ‘커피’를 높인 셈이다. 사물을 존대할 수는 없으니 이 표현이 어법에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