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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좋은 하루 되세요"는 문법 어긋나도 흔히 쓰죠~

    10여 년 전 제주시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가장 친절한 전화 인사말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 “좋은 하루 되세요”가 단연 1위로 꼽혔다. 몇 해 전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 인사말로 “사랑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를 정하기도 했다.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말을 일상에서 자주 쓴다. 동시에 이 말이 우리 어법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지도 꽤 오래 됐다. 논란의 핵심은 ‘좋은 하루’가 ‘되다’와 결합할 수 있느냐에 있다.문법에 어긋나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써이 말은 우리말의 규범 용법과 현실적 언어 사용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대표적 사례다. 우선 순수하게 어법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좋은 하루 되다’는 곰곰이 생각하면 확실히 어색하다. 누가 누구한테 무엇이 되라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물이 얼음이 되다’라고 한다(동사 ‘되다’는 다른 용법도 많지만 이 표현이 전형적인 쓰임새다). 즉 ‘A가 B(가) 되다’ 꼴인데 이런 문장 형태를 문법적으로는 보문이라 한다. 이때 B를 보어라 하고, A와 B는 동격 구조를 이룬다. 그렇다면 철수한테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하면 ‘철수=좋은 하루’가 돼야 하는데 이런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표현이 어색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여기에서 오는 것이다. ‘되다’를 무분별하게 남용한 셈이다. 분명 쓰는 말이긴 하되 과학적으로, 이치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물론 말이란 항상 논리적으로만 따질 일은 아니다. 방송에서 이 말을 썼다면 이는 “시청자 여러분, 오늘 하루가 (당신에게)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dq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따 논 당상'이 아니라 '따 놓은 당상'이에요

    “남의 잔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라는 말을 흔히 쓴다. 남의 일에 공연히 간섭하고 나서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우리 속담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이런 경향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승은 따 논 당상”이라고도 한다. 일이 확실하여 조금도 틀림이 없음을 나타낼 때 하는 말이다. 두 속담에 쓰인 ‘놔라/논’은 모두 기본형 ‘놓다’에서 온 말이다.‘놓다’는 규칙활용…‘논’으로 줄지 않아그런데 ‘놔라/논’ 형태를 보기에 따라 좀 낯설게 느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놓아라/놓은’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놓아라’는 ‘놔라’로 줄여 쓸 수 있지만, ‘놓은’은 ‘논’으로 줄지 않는다. 틀린 표기라는 뜻이다.우선 ‘놔라’부터 살펴보자. ‘놓다’는 규칙동사다. 활용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놓고/놓지/놓아/놓은/놓았다’ 식으로 어간인 ‘놓-’ 부분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놓아’나 ‘놓아라/놓았다’ 같은 것을 ‘놔/놔라/놨다’로도 쓴다. 받침 ㅎ이 탈락하면서 말 자체도 줄어들었다. 이는 비슷한 형태인 ‘좋다’가 ‘좋아→좌’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 특이한 사례다. 그래서 한글 맞춤법에서도 이를 예외적인 현상으로 다뤄 그 용법을 인정했다. 맞춤법 35항에서 ‘놓다’가 어미 ‘-아’와 결합할 때 ‘놓아→놔, 놓아라→놔라, 놓았다→놨다’로 줄어들 수 있다고 따로 정했다. 두 가지를 다 쓸 수 있다는 뜻이다.그러나 ‘놓은’을 &lsquo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집이 참 넓으네'?…'넓네'가 옳아요

    계절은 성큼 다가와 어느새 남녘에는 개나리가 한창이라고 한다. 그 개나리꽃을 보면서 우리는 “개나리가 노라냐?” 할까, “~노랗냐?”라고 할까? 또는 “개나리가 노라니?” 하고 물을 수도 있고, “~노랗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노라네” 또는 “~노랗네”라고 할지도 모른다. 어미 ‘-냐/-니/-네’를 통해 우리말 종결어미의 문법성을 알아보자. 이들은 앞말에 붙는 조건이 똑같다는 게 포인트다.‘-냐/-니/-네’는 세쌍둥이…같은 듯 달라우선 ‘노랗다’는 ㅎ불규칙 용언이라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형용사이므로 의문 종결어미로 ‘-느냐’가 아니라 ‘-으냐’가 붙는다(지난 호 참조). 이때 ㅎ불규칙은 모음어미가 올 때 받침이 탈락하므로 ‘노랗+으냐→노라냐’가 된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은 2015년 9월 어미 ‘-냐’의 용법을 모든 용언의 어간에 붙을 수 있게 바꿨다. 현실적으로 많이 쓰는 말을 어법으로 수용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노라냐/노랗냐’를 둘 다 쓸 수 있다.‘노라니?/노랗니?’는 어떨까? 이 역시 활용할 때 형용사이므로 의문 종결어미 ‘-으니’가 붙는다. 불규칙 활용을 하므로 ㅎ이 탈락해 ‘노랗+으니→노라니’가 된다. 그런데 이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온다. 어미 ‘-니’는 모든 용언의 어간에 직접 붙을 수 있다는 것을 지난 호에서 살폈다. 즉 ‘노랗+니’도 가능하다. 이는 ‘-냐’를 좀 더 친근하고 부드럽게 이르는 표현이다. 따라서 ‘노라니?/노랗니?’ 역시 다 된다.이제 ‘노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수 있다'를 바꿔 쓰면 문장이 살아나요

    글쓰기에서 조심해야 할 여러 유형 가운데 하나가 상투어 남발이다. 상투어란 익숙한 표현이지만 하도 흔하게 써서 진부해진 것을 말한다. ‘~이 화제다’느니, ‘주목을 받고 있다’느니 하는 게 그런 예다. 별것 아닌 얘기를 하면서 ‘출사표를 던졌다’ ‘~을 웅변한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수 있다’와 ‘~것이다’란 말은 간과하기 십상이다. 습관적으로 쓰다 보니 아예 당연한 것처럼 여겨 문제점을 깨닫기조차 어려울 정도다.의미 없이 덧붙이는 ‘~수 있다’ 많아‘~ㄹ 수 있다’는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이 가능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나는 무엇이든지 잘할 수 있다’거나 ‘네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조심해라’ 같은 게 전형적인 쓰임이다. 굳이 나누자면 ‘능력’과 ‘가능성(확률)’에 쓰는 표현이다. 영어의 can과 maybe에 해당한다. 영어에서는 두 가지를 구별해 쓰지만 우리말에서는 ‘~수 있다’로 두루 표현한다.그런데 같은 ‘~수 있다’를 쓴 문장이지만 문맥에 따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판로가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은 그만큼 회사가 쉽게 ‘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그리 펑펑 쓰다 보면 예산이 ‘부족해질 수 있다’. △전문적인 내용이라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버거울 수 있다’.이런 문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비(非)의지 서술어로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어에서 이런 용법은 문법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며, 현실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쓰인다. 하지만 어색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되다'를 '~하다'로 바꿔 쓰면 힘이 생겨요

    글쓰기에서 피동형을 조심하라는 얘기는 늘 있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동형 남발이 없어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피동을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지 말아야 할 때’라는 것은 ‘-하다’형으로 써야 할 데를 불필요하게 ‘-되다’형으로 쓴 경우를 말한다. 잘못된 글쓰기 습관 탓이다.피동형 남발이 우리말 표현 왜곡시켜“프랑스에서도 (자동차) 2만3500대에 리콜이 이뤄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업투자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미국 경제의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대구가 한국로봇산업진흥원과 일본의 야스카와전기 등을 유치하면서 로봇산업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로봇기업 유치에 힘입어 로봇산업 클러스터도 구축됐다.”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모두 피동형이란 것이다. ‘리콜이 이뤄진다’는 우리말답지 않다. ‘2만3500대를 리콜한다’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도 굳이 피동으로 쓸 필요가 있을까?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는 게 힘 있는 표현이다. ‘대구’를 주어로 썼으므로 이어지는 문장에서도 ‘~클러스터도 구축했다’고 하면 된다.불필요하게 쓴 피동문은 흔히 볼 수 있다. ‘정부의 행복주택 시범지구 발표가 이뤄진 이날….’ ‘공항 시설이 우선적으로 확충돼야 한다.’ 이들은 ‘정부가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발표한 이날…’ ‘공항 시설을 우선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식으로 주체를 살려 능동형으로 쓸 때 더 구체적이다. ‘A가 B되다’ 꼴보다 ‘A를 B하다’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외래어 남발은 글의 의미 전달을 방해하죠

    지난여름 어린이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통학차량에서 미처 내리지 못한 어린이가 폭염 속에 갇혀 사망하는 일까지 생겼다. 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 성동구에서 안전장치를 한발 앞서 도입했다. 이름이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이었다.표현은 어색하고 뜻도 잘 드러나지 않아“서울 성동구청 관계자가 2일 성수동 경일고등학교에서 어린이집 차량 30여 대에 ‘슬리핑차일드체크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날 행사를 대개 이런 식으로 전했다. 장치에 붙인 표지문의 문구도 난감했다. ‘전원 하차 후 태깅해 주시기 바랍니다.’ 좀 더 쉽게 쓰는 방법은 없었을까?이 ‘어린이 보호장치’는 미국, 캐나다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우리에겐 낯선, 처음 도입되는 장치다. 외래 용어가 따라 들어오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 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문화로 소화해 더 좋은 방식으로 바꿀 수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잠자는 아이 확인장치’나 ‘어린이갇힘 방지장치’ 정도면 어땠을까? 또는 좀 더 넓은 개념으로 본다면 ‘어린이안전 관리장치’로 해도 무난했을 듯하다.외래어 사용을 가능한 한 줄이자는 것은 단순히 영어투라서 또는 일어투라서 그런 게 아니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그런 주장을 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요즘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꽤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말다운, 자연스러운 글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외래어 남용은 ‘건강한 글쓰기’ 관점에서 병적 요소다. 글의 명료성과 간결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의미 전달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같다'를 남발하는 글은 잘못된 거죠

    “경직된 플레이가 나오기도 했지만 선수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잘해준 거 같다.” 2018 아시안게임에서 선동렬 야구 국가대표 감독이 우승한 뒤 한 말이다. 선수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렸다. 그런데 끝말이 자꾸 귀에 거슬린다. 잘했으면 잘한 것이지 ‘잘한 거 같다’는 무슨 뜻일까?느낌 나타내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아‘벌집 쑤신 것 같다’란 말이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느니 ‘호떡집에 불난 것 같다’란 말도 많이 쓴다. 다 괜찮은 표현들이다. 그런데 ‘엄청 좋은 것 같다’느니, ‘기쁜 것 같다’ ‘슬픈 것 같다’ 따위는 매우 어색하다.‘같다’는 10여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는 것’ ‘-을 것’ 뒤에 쓰여 추측, 불확실한 단정의 뜻을 나타내는 용법이다. ‘사고가 난 것 같다/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처럼 쓰는 게 전형적인 용법이다. 이 말은 또 ‘그렇게 느껴지는 바가 있음’을 나타내는 데도 쓰인다. “날씨가 좋아 고기가 잘 낚일 것 같아” 등이 그런 것이다.‘같다’는 확실치 않을 때, 자신 없을 때 쓰는 표현이다. 그래서 입말에서도 공식적 대화에서는 쓰기에 바람직하지 않다. 수사학적으로는 완곡어법의 하나로 사용된다. 하지만 요즘 글쓰기에 보이는 ‘~인 것 같다/같아요’ 표현은 그런 것과도 상관이 없다. 그저 잘못 익힌 말투가 글에 반영된 것일 뿐이다. ‘예쁜 거 같아요, 아픈 거 같아요, 화나는 거 같아요, 맛있는 거 같아요.’ 느낌을 나타내는 감정어는 ‘같다’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거기다 강세부사 ‘너무&r

  •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2) '가지다'를 다른 말로 바꿔 보자

    문장을 쓰는 방식은 소쉬르의 용어를 빌리면 계열체와 통합체의 조합이다. 계열체란 간단히 말하면 단어를 찾는 일이다. 최적의 단어를 찾아 써야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다. 통합체란 그런 단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것을 말한다. 가령 ‘사과’라는 단어 뒤에는 ‘맛있다, 썩다, 떨어지다, 시다, 붉다…’ 등의 말이 올 수 있다. 모국어 화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사과’ 뒤에 ‘잘’이라는 부사가 왔다면 이어지는 말의 수는 대폭 줄어든다. ‘익다’나 ‘먹다’는 그중 일부일 것이다. 이런 말들이 적절한 위치에 배치돼 매끄럽게 연결된 것을 통합체라고 한다.‘가지다’라는 함정을 피해야우리가 글을 이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단어의 뜻을 파악해서 아는 것보다 주로 통합체상의 맥락을 통해 이뤄진다. 어떤 말 뒤에 뭐가 올지를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단어들 간에 서로 어울리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 결합 체계가 단단할수록 언어의 생태계는 건강하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말 체계를 위협하는 말 ‘가지다’를 살펴보자.‘그는 지난 3일 모교인 OO대를 찾아 후배들과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이날 대학 본관 200호 강의실서 가진 특강엔….’언제부터인지 ‘~기회를 가지다’란 문구가 우리말에서 상투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표현은 잘 들여다보면 매우 어색하다.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보다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라고 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이를 ‘(후배들과)만났다’고 하면 더 좋다. 훨씬 간결해진다. 이어지는 ‘~에서 가진 특강’도 ‘~에서 한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