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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명경지수 (明 鏡 止 水)

    ▶ 한자풀이明:밝을 명鏡:거울 경止:그칠 지水:물 수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왕태(王)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노나라에는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만큼이나 많았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가 불만 섞인 투로 물었다. “스승님, 많은 사람이 왕태를 따르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장자> 덕충부 편에 나오는 얘기로,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뜻한다.‘맑은 거울’을 뜻하는 명경(明鏡)은 <장자>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온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정자산이라는 사람이 위세를 과시하려는 신도가를 나무라는 대목이다. “자네는 지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맑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라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처럼 명경지수는 본래 도가(道家)에서 주창하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찰은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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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삼모사 (朝三暮四)

    ▶ 한자풀이朝:아침 조三:석 삼暮:저녁 모四:넉 사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원숭이를 너무 좋아해 집에서 수십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 먹일 정도로 원숭이를 아꼈다. 원숭이들 역시 저공을 따랐고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는 의사소통까지 가능해졌다.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저공은 원숭이의 먹이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아 머리를 썼다.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나눠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펄쩍 뛰며 “아침에 하나 덜 먹으면 배가 고프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저공이 슬쩍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는 건 어떠냐?” 그 말에 원숭이들은 모두 좋다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라는 뜻의 조삼모사는 당장 눈앞의 차별만을 따지고 그 결과가 같음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이고 희롱함을 일컫기도 하다. <열자> <장자>에 함께 나오는 얘기다.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조삼모사로 국민을 현혹한다’ 식으로 활용된다. 스스로가 어리석으면 조삼모사에 넘어가기 쉽고, 때로는 정치인들이 조삼모사식 정책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아침에 명령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는 조령모개(朝令暮改)와는 뜻이 다르다. 조삼모사는 ‘간사한 잔꾀’에, 조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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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연지기 (浩然之氣)

    ▶ 한자풀이浩: 넓을 호然: 그럴 연/불탈 연之: 갈 지氣: 기운 기맹자가 제나라에 머물던 어느 날,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이 제나라 대신이 되어 도(道)를 행하시면 제를 천하의 패자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시면 선생님도 마음이 움직이시겠지요.” 맹자가 답했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부터는 마음이 움직인 적이 없다.”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마음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으신지요.” “그건 용(勇)이니라.”맹자가 설명을 덧붙였다. “마음속에 부끄러운 게 없으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게 대용(大勇)이다.” 공손추가 재차 물었다. “그럼 선생님의 부동심(不動心)과 고자의 부동심은 무엇이 다른지요.” 맹자가 답했다. “고자는 이해되지 않는 말을 애써 이해하지 말라 했다. 하지만 이는 소극적 태도다. 나는 말을 알고 있고(知言), 호연지기(浩然之氣)도 기르고 있다. 호연지기는 평온하고 너그러운 화기(和氣)다. 기(氣)는 광대하고 올바르고 솔직한 것으로, 이것을 기르면 우주자연과 합일의 경지에 이른다.” 지언(知言)은 편협하고 음탕한 말, 간사하고 꾸미는 말을 구별하는 밝음(明)이 있다는 의미다.고자(告子)는 맹자의 논적(論敵)으로 사람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한 사상가다. 그는 “출렁대는 물은 방향이 없으며 동쪽을 터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주면 서쪽으로 흐를 뿐”이라며 맹자의 성선설을 반박했다. 이에 맹자는 “물은 아래로 흐른다. 아래를 막으면 물이 거슬러 오르고, 손으로 때리면 물이 허공으로 솟구치지만 그건 인간이 본성에 인위를 가한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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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거양득 (一 擧 兩 得)

    ▶ 한자풀이一 : 하나 일擧 : 들 거兩 : 둘 량(양)得 : 얻을 득속석은 중국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저작랑을 지내고, 진사(晉史)를 편찬한 인물이다. 그가 농업 정책을 왕에게 진언하면서 “위나라 때의 개척지인 양평으로 들어가 살게 한 백성들을 다시 서쪽으로 이주시키자”고 했다. 왕이 이유를 물으니 그가 답했다. “백성들을 서주로 이주시킴으로써 변방을 보강하고, 10년 동안 부세(賦稅)를 면제해 줌으로써 이주의 고달픔을 위로합니다. 이렇게 하면 밖으로는 실질적인 이익이 있고, 안으로는 관용을 베풀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됩니다.” 《진서》 속석전에 나오는 얘기다.《춘추후어》에는 힘이 장사인 변장자(辨莊子) 얘기가 나온다. 호랑이 두 마리가 마을에 나타나 가축들을 잡아가자 동네 사람들이 변장자를 불렀다. “걱정 마시오. 내가 그놈들을 때려잡을 테니.” 변장자가 여관에 투숙한 이튿날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나 소를 몰고 달아났다. 그가 활과 칼을 들고 호랑이를 쫓았다. 호랑이 잡는 장면을 보려고 여관의 사동도 뒤를 따랐다.산속에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소리가 들렸다. 변장자가 살금살금 호랑이 곁으로 다가가 활을 겨눴다. 순간, 사동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무슨 짓이냐?” 그가 험악한 표정을 짓자 사동이 목소리를 죽였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소를 차지하려고 싸우는데, 한 놈은 결국 죽지 않겠습니까. 이긴 놈도 크게 다칠 테고요. 그때를 기다렸다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아야지요.” 변장자는 무릎을 쳤고, 잠시 후 호랑이 두 마리를 어깨에 걸치고 마을로 내려왔다. 《춘추후어》는 ‘하나로 두 가지 이익을 얻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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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심전심 (以 心 傳 心)

    ▶ 한자풀이以 : 써 이心 : 마음 심傳 : 전할 전心 : 마음 심석가는 노자의 무언지교(無言之敎)를 몸소 실천한 성인이다. 석가는 큰 스승이다. 송나라 승려 도언은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를 기록한 《전등록》에서 “석가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적었다. 불교의 진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면서 고통받는 중생에게 ‘마음의 길’을 터줬다. 석가는 제자들의 물음을 늘 칭찬했고, 자신의 가르침을 강요하지 않았다.송나라 스승 보제의 《오등회원》에는 석가가 이심전심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석가가 영취산에 모인 제자들에게 연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 줄기를 살짝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스승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직 가섭만이 석가의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통한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이 영취산 설법에서 나왔다. 석가가 연꽃을 집어드니(拈華), 제자 가섭이 그 뜻을 헤아려 미소를 지었다(微笑)는 의미다.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더없이 청아하고 맑고 깨끗하다. 속세도 탁하다. 흐리고 탐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스스로 깨달으면 탁한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중생도 맑고 깨끗하게 거듭난다.참고로 사성제(四聖諦)는 불교의 기본 교리다. 사제(四諦)로도 불리는 이 교리는 고(苦)·집(集)·멸(滅)·도(道) 네 진리가 핵심이다. 고(苦)의 진리(고제)는 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을 바로 보라는 거고, 집(集)의 진리(집제)는 탐심 욕망 이기심 등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바로 보라는 거다. 멸(滅)의 진리(멸제)는 온갖 번뇌를 벗고 해탈을 얻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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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참마속 (泣 斬 馬 謖)

    ▶ 한자풀이泣:울 읍斬:벨 참馬:말 마謖:일어날 속삼국지는 위·촉·오 세 나라가 천하통일을 꿈꾸는 얘기다. 전술과 지략, 음모와 술수가 얽히고설켜 있다.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조조는 이를 갈았다. 천하의 명장 사마의에게 20만 대군을 내주며 설욕을 명했다. 제갈량도 사마의 군대를 깰 계책을 세웠다. 문제는 보급로였다. 군량 수송로인 가정(街亭)을 지켜야 제갈량이 마음 놓고 계책을 펼 수 있었다. 마속(馬謖)이 자청하고 나섰다. 마속은 제갈량과 문경지교를 맺은 마량의 친동생이다. 제갈량도 누구보다 그를 아꼈다. 하지만 제갈량은 썩 내키지 않았다. 사마의 군대를 대적하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속이 ‘비장의 카드’를 썼다. “만약 명을 지키지 못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까지 참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가정의 지형을 살핀 마속은 욕심이 생겼다. 제갈량이 “지키기만 하라”고 수차 명했지만 적을 잘만 유인하면 몰살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속은 수하 장수들의 진언을 무시하고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 하지만 사마의 군대는 마속의 생각대로 산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식량과 물이 끊긴 마속은 사마의 수하 장합이 이끄는 군대에 대패했다. 제갈량이 마속의 죄를 묻는 자리는 숙연했다. 제갈량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다.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려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된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눈물로 마속을 참한(泣斬馬謖)’ 것이다.공정해지려면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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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양지인 (宋 襄 之 仁)

    ▶ 한자풀이宋: 나라 송襄: 도울 양之: 갈 지仁: 어질 인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우고 실질은 현실을 중시한다. 베풂은 명분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베풀지는 실질이다. 베풂이 상대에게 되레 해가 된다면 명분은 맞지만 실질은 어긋난 것이다. 베풂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송나라 군사가 강을 두고 초나라 군사와 마주했다. 송나라 양공(宋襄)이 강 한쪽에 먼저 진을 쳤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진을 부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의 군대가 턱없이 약하다고 판단한 장군 목이가 양공에게 간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어느 새 초나라 군사는 강을 건너와 진용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진언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양공은 재차 무시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미 짐작했을 거다. 원래 열세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하고, 양공 자신도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악화돼 이듬해 죽고 말았다. 남송 말부터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한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다.‘송양의 어짊’을 뜻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과한 인정을 베풀다 되레 해를 입는 것을 비유한다. 누구는 조선 500년을 ‘명분의 시대’라고 꼬집는다. 명분만을 좇다 실질을 잃어 나라가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실질이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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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문불여일견 ( 百 聞 不 如 一 見 )

    ▶ 한자풀이百: 일백 백聞: 들을 문不: 아니 부(불)如: 같을 여一: 한 일見: 볼 견판단은 빗나갈 때가 많고, 추론도 오류가 잦다. 책을 단 한 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달랑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논하고, 그게 다 맞다고 우기면 대책이 없다. 조약돌만 한 소견으로 태산을 논하는 건 무지의 오만이다.한나라 9대 황제 선제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의 유목 민족인 강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진압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선제가 오늘날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 병길에게 토벌군 장수로 누가 적임인지를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76세 백전노장이었지만 군사를 거느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7대 황제 무제 때 흉노 토벌에 나선 그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해 한나라 군사를 모두 구출했다. 이런 전공으로 싸움터에 나갈 때 깃발을 들고 앞서는 거기(車騎)장군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내가 적임이오. 이 노신을 능가할 자가 어디 있겠소.” 병길이 선제의 뜻을 전하니 그는 선뜻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조충국이 명장임을 아는 선제가 그를 불러 강족 토벌 대책을 물었다.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소.” 그가 답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란 싸움터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니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핀 후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선제는 기꺼이 허했다.현지를 둘러본 조충국은 기병보다 둔전병(屯田兵·평시엔 농사를 짓다 전시엔 싸움에 동원되는 병사)을 두는 게 좋다는 방책을 올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