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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먼 나라와는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다 - 전국책

    ▶ 한자풀이遠  멀 원交  사귈 교近  가까울 근攻  칠 공범수(范睡)는 전국시대 전략가다. 위나라 책사이던 그는 제나라와 내통한다는 모함을 받고 진나라로 도망쳤다. 당시 진나라는 소양왕 모후인 선태후의 동생 양후가 재상으로 있으면서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는 제나라를 쳐서 자신의 영지를 넓히려 했다. 소양왕이 범수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범수가 진언했다. “전하,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득책이 아닙니다. 적은 군대로 강국 제나라를 친다 하면 다른 제후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더구나 두 나라 사이에 있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길을 열어 줄지도 의문입니다. 또 설령 쳐서 이긴다 한들 그 땅을 진나라 영토에 편입시킬 방도가 없습니다. 옛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길을 빌려 중산을 정벌했지만 정작 그 땅을 손에 넣은 것은 조나라였습니다. 위는 중산과 멀고 조와는 가까운 까닭이지요.”범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겨 소양왕이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하오.” 범수가 답했다.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이 상책입니다. 한 치의 땅을 얻어도,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전하의 땅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해득실이 이처럼 분명한데 굳이 먼 나라를 치는 건 현책이 아니옵니다.”소양왕은 옳거니 싶었다.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수는 승진을 거듭했고 재상에까지 올랐다. 또한 ‘먼 나라와 손잡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는 원교근공책은 천하통일을 꿈꾸는 진나라의 국시가 됐다. 《전국책》이 출처다.먼 나라와 손잡고 이웃 나라를 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 전략의 전부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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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길에서 듣고 바로 그 길에서 말하다 생각 없이 쉽게 말을 옮김을 이름 -논어-

    ▶한자풀이道   길 도聽   들을 청途   길 도說   말씀 설 공자에게 말은 군자 소인을 가르는 가늠자다. 군자가 말을 더듬듯이 하는 건 언변이 서툴러서가 아니다. 그건 행함이 말을 따르지 못할까 염려한 때문이다. 소인은 말을 앞세우고 군자는 행(行)을 앞세운다. 공자는 사람을 말로 취하고 용모로 취하면 실수가 잦다고 했다. 공자는 《논어》 양화편에서 말을 가볍게 하는 세태를 나무란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하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성악설을 주창한 순자 역시 《순자》 권학편에서 말의 가벼움을 신랄히 꼬집는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입으로 바로 나올 뿐 마음속에 새겨 두려고 하지 않는다.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밖에 안 되는데 배움이 이리 짧은 거리를 지나갈 뿐이면 어찌 일곱 자 몸을 아름답게 닦을 수 있겠는가.”도청도설(道聽塗說)은 길에서 들은 말(道聽)을 길에 흘려 버린다(塗說)는 뜻이다. 근거 없는 허황한 소문을 이리저리 퍼뜨리고 다니거나 교훈이 될 만한 말을 깊이 새기지 않고 바로 옮기는 경박한 태도를 비유한다. 도(塗)는 진흙이란 뜻이니 가슴에 담아둬야 할 말을 바로 진흙에 흩뿌림을 의미한다. 길에서 들은 것을 남에게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을 꼬집을 때도 쓰인다.순자는 묻지 않은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을 ‘잔소리’라 하고, 하나를 묻는데 둘을 말하는 것을 ‘수다’라 했다. 공자는 남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을 ‘조급’이라 하고, 남의 말이 끝났는데도 자기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숨김’이라 했다. 그리보면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게 말이다. 험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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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 -삼국지, 후한서-

    ▶한자풀이大   큰 대器   그릇 기晩   늦을 만成   이룰 성정언약반(正言若反)은 도가(道家)의 시조 노자가 즐겨 쓴 기법이다. 반대인 듯한 표현으로 핵심을 찌르는 수법이다.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듯하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듯하다.” 정언약반 기법으로 도(道)를 설명하는 《노자》 41장 구절이다.이어지는 구절도 기법이 같다.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고요하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象無形).” 여기에 나오는 만성(晩成)은 본래 ‘아직 이뤄지지 않음’을 뜻하는 말로, 거의 이뤄질 수 없다는 의미가 강하다.후일에 이 말이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최염 장군의 일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최염은 삼국시대 위나라 장군이다. 그에겐 최림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외모가 볼품없고 출세가 늦어 친척들이 그를 멸시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최염이 말했다. “큰 종이나 큰 솥은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네. 네가 보기에 자네는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네.” 최염의 말대로 최림은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의 직위에까지 올랐다. 《삼국지》 ‘후한서’에 전해오는 일화다.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 조급하면 되레 일을 망친다. 서너 번 실패했다고 주저앉고, 두렵다고 물러서고, 자신없다고 쭈뼛대면 기회는 결코 당신을 두드리지 않는다.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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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눈동자를 마지막에 그린다 -수형기-

    ▶ 한자풀이畵   그림 화龍   용 룡點   점찍을 점睛   눈동자 정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우군장군과 오흥 태수를 지냈지만 화가로 더 유명했다. 붓만 들면 세상 모든 것을 마치 사진처럼 그렸다. 벼슬을 마친 뒤엔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어느 날 안락사 주지가 그에게 절 벽면에 용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장승요는 붓을 들어 구름 속에서 곧 날아오를 듯한 용 두 마리를 그렸다. 꿈틀대는 몸통, 갑옷 같은 비늘, 날카로운 발톱 그 어디를 봐도 살아 움직이는 용 같았다.한데 이상하게도 그는 용에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았다. 사람들이 궁금해 그 이유를 물었다. 그가 답했다. “용에 눈을 그려 넣으면(畵龍點睛)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눈동자를 빨리 그려넣으라고 독촉했다. 성화에 못 이긴 그가 용 한 마리에 눈동자를 그려넣자 바로 용이 벽에서 튀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벽에는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은 용만 남았다. 《수형기》에 나오는 얘기다.화룡점정(畵龍點睛)은 용 그림(畵龍)에 눈동자(睛)를 그려넣는다(點)는 뜻으로, 가장 요긴한 데를 완성해 일을 마무리함을 의미한다. 사소한 것이 전체를 돋보이게 한다는 비유로도 쓰인다. 전반적으로 잘됐지만 어딘가 한두 군데 부족한 듯하면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고도 한다.화룡점정 하면 흔히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화를 떠올린다. 그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의 재능보다 혼이 담긴 작품이다. 미켈란젤로가 거꾸로 매달려 천장에 그림을 채워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친구가 말했다.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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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저마다 쓰임과 지혜가 있다 - 한비자 -

    ▶ 한자풀이老  늙을 노馬  말 마之  갈 지(어조사)智  슬기 지제나라 환공이 당대의 명재상 관중과 대부 습붕을 데리고 고죽국 정벌에 나섰다. 전쟁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봄에 시작된 전쟁은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혹한에 귀국길에 오른 환공은 지름길을 찾다 그만 길을 잃었다. 진퇴양난의 병사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말했다. “이런 때는 ‘늙은 말의 지혜(老馬之智)가 필요하다.” 그의 말대로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가니 얼마 안 돼 큰길이 나타났다.길을 찾아 제나라로 돌아오던 병사들은 산길에서 식수가 떨어져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에는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원래 여름엔 산 북쪽에 집을 짓지만 겨울에는 산 남쪽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흙이 한 치쯤 쌓인 개미집이 있으면 그 땅속 일곱 자쯤 되는 곳에 물이 있는 법이다.” 군사들이 산을 뒤져 개미집을 찾고 그 아래를 파보니 샘물이 솟아났다. 《한비자》 세림편에 나오는 얘기다.한비는 이 이야기 끝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관중의 총명과 습붕의 지혜로도 모르는 것은 늙은 말과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은 자신이 어리석음에도 성현의 지혜조차 배우려 하지 않으니 잘못된 일이 아닌가.”‘늙은 말의 지혜’ 노마지지(老馬之智)는 하찮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장점이나 지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노마식도(老馬識道) 노마지도(老馬知道)도 뜻이 같다. 요즘은 ‘경험으로 축적한 지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누구도 모든 지혜를 품을 순 없다. 누구도 모든 앎을 담을 순 없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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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목숨을 다시 살려낸다는 뜻으로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구원해 회생시킴 - 여씨춘추 -

    ▶ 한자풀이起  기동할 기死  죽을 사回  돌아올 회生  살 생춘추시대 월나라와 오나라는 말 그대로 ‘앙숙’이었다. 두 나라는 치열하게 싸웠고, 간혹 화친을 맺어 서로 후일을 도모했다. 오왕 부차가 다리에 중상을 입으면서 아버지 합려를 죽인 월왕 구천과의 복수전에서 승리했다. 원래 전쟁이란 게 한 나라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중간 승리’인 경우가 많다. 이 싸움 또한 그러했다.월나라 대부 종(種)이 구천에게 오나라와 화친을 맺으라고 간했다.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대부 제계영에게 오나라에 가서 화평을 청하도록 했고, 이로써 싸움은 잠시 멈췄다. 앞서 부차는 아버지를 죽게 한 월나라를 널리 용서한다며 말했다. “이는 죽은 사람을 다시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이는 것과 같다(起死人而肉白骨也).” 부차는 더 처절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검을 깊이 숨겼다.진나라 정치가 여불위가 빈객(賓客) 3000여 명을 모아 편록(編錄)한 《여씨춘추》 별류편에는 노나라 사람 공손작 얘기가 나온다. 그는 “나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我可活死人也)”며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사람들이 방법을 물으니 그가 답했다. “나는 반신불수를 고치는데 그 약을 두 배로 늘리면 죽은 사람도 살린다(起死回生)”고 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기사회생(起死回生)은 여기에서 유래했다.관중은 최선을 다한 꼴찌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선’의 의미를 아는 까닭이다. 기사회생으로 승패를 뒤집은 선수에겐 더 큰 박수를 보낸다. 두려움에 맞서는 용기, 자신을 이겨내는 의지, 경기장을 적시는 땀 없이는 기사회생이 불가능함을 아는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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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 - 한서, 사기 -

    ▶ 한자풀이錦  비단 금衣  옷 의夜  밤 야行  다닐 행, 항렬 항진나라 도읍 함양에 입성한 항우는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3세 황제 자영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진시황의 아방궁에도 불을 질렀다. 진시황 무덤까지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쌓아둔 보물을 모두 차지하고, 주지육림에 빠져 승리를 자축했다. 이는 몰락의 예고편이었다. 승리 직후의 태도는 승리자의 앞길이 어떨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신(謀臣) 범증이 항우에게 제왕의 바른길을 간곡히 간했으나 듣지 않았다. 항우는 되레 재물과 미녀들을 손에 넣고 고향 강동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제왕보다 금의환향(錦衣還鄕)에 마음을 둔 것이다. 항우의 이런 속내를 꿴 한생이 말했다. “함양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땅 또한 비옥합니다. 이곳을 도읍으로 정해 천하에 세력을 떨치십시오.”하지만 항우는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출세를 자랑하고 싶었다. 속내를 이렇게 중얼거렸다. “부귀해졌는데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에 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다. 누가 이것을 알아주겠는가.” 한생이 항우 앞을 물러나며 중얼댔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나라는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웠을 뿐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정말이구나.”이 말을 전해들은 항우는 한생을 삶아 죽였다.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훗날 유방이 함양에 들어와 천하를 거머쥔다. 《한서》 항적전과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얘기다.‘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금의야행(錦衣夜行)은 보람이나 의미가 없는 행동을 비유한다. 금의환향과는 달리 출세해도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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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래가 너무 많으면 길을 잃는다 - 열자 -

    ▶ 한자풀이 多 많을 다岐 갈림길 기亡 망할 망羊 양 양다기망양(多岐亡羊). 갈림길(岐)이 많아 양을 잃었다는 뜻이다. 배움의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진리 찾기가 어렵다는 의미로, 가르침이 다양해 어느 것을 따라야 할지 헷갈린다는 비유로도 쓰인다. 출처는 《열자》로, 중국 전국시대 극단적 개인주의를 주창한 사상가 양자와 관련된다. 동시대를 산 묵자와 양자는 생각이 극으로 갈렸다. 묵자는 만물을 두루 사랑하라는 겸애(兼愛)를 설파했고, 양자는 나라에 이익이 된다 해도 머리카락 한 올 내줄 수 없다고 맞섰다.어느 날 양자의 이웃집 양 한 마리가 달아났다. 이웃집 사람은 물론 양자네 하인들까지 양을 찾아 나섰다. 양 한 마리에 너무 요란스럽다 싶어 양자가 물었다. “그래, 양은 찾았느냐?” 하인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갈림길이 너무 많아서 그냥 되돌아왔습니다. 갈림길에 또 갈림길이 있는지라 양이 어디로 달아났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습니다.”하인의 말을 들은 양자는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후 종일 아무 말도 안 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여러 날이 지나도 스승의 얼굴에 수심이 가시지 않자 제자 맹손양(孟孫陽)이 선배 심도자(心都子)를 찾아가 저간의 연유를 말하고 그 까닭을 물었다. 심도자가 양자의 속뜻을 짚어줬다.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리고(多岐亡羊), 학자는 여러 갈래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네. 원래 학문의 근본은 하나였는데 그 끝이 이리 갈라지고 말았네. 선생은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라네.”갈래가 많으면 양을 잃는다. 생각이 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