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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蛇足(사족)

    ▶ 한자풀이蛇 : 뱀 사足 : 발 족‘뱀의 발’이란 뜻으로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비유-《사기》 《전국책》초나라에 제사를 맡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제사를 마친 뒤,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시종들에게 남은 술을 나눠주려고 했다. 한데 술을 마시려는 시종들은 많은데 술이 모자랐다. 이에 한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어차피 부족한 술이니 나눠 마시지 말고 한 사람에게 몰아줍시다. 땅에 뱀을 가장 먼저 그린 사람에게 술을 전부 주는 것은 어떻겠소?”시종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는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한 사람이 그림을 내놓으며 말했다. “자, 내가 가장 먼저 그렸으니 술은 내 것이오.” 말을 마친 그가 술병을 잡으려는 순간 옆에 있던 시종이 술병을 가로채며 말했다. “그 술은 내 것이오. 당신은 뱀에 없는 다리까지 그렸으니 어찌 뱀 그림이라 할 수 있겠소.” 《사기》와 《전국책》에 나오는 얘기다.이 이야기에서 쓸데없이 덧붙인 일, 또는 군더더기를 사족(蛇足)이라 부르게 되었다. 사족은 화사첨족(畵蛇添足)의 준말이다. 뜻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지붕 위에 지붕을 또 씌운다’는 옥상가옥(屋上架屋)도 함의가 비슷하다.동진(東晉)의 유중초가 수도 남경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양도부(揚都賦)》를 지었을 때 가장 먼저 이 글을 세도재상 유양에게 보였다. “그의 《양도부》는 좌태충이 지은 《삼도부(三都賦)》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유양은 친척의 정리를 생각해서 과장된 평을 해 주었다. 사람들은 앞다퉈 그 글을 베꼈고 종이 값은 치솟았다. 그러나 이 같은 경박한 풍조를 당시 태부(太傅)로 있던 사안석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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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牛刀割鷄(우도할계)

    ▶ 한자풀이牛 : 소 우刀 : 칼 도割 : 나눌 할鷄 : 닭 계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작은 일에 너무 큰 힘을 사용함을 비유 - 《논어(論語)》자유(子遊)는 중국 춘추시대 오(吳)나라 사람이다. 공문십철(孔門十哲: 공자 문하의 뛰어난 열 제자)에 속하며,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자유가 노나라에서 읍재(邑宰)라는 벼슬에 올라 작은 읍인 무성을 다스릴 때의 일이다. 하루는 공자가 무성에 들렀는데 마을 곳곳에서 거문고 소리에 맞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자유가 공자에게서 배운 예악(禮樂)을 가르쳐 백성을 교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흐뭇한 마음에 빙그레 웃으며,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느냐(割鷄焉用牛刀)” 하고 물었다. 말뜻 그대로는 ‘이처럼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무슨 예악이 필요하냐’는 의미지만, 실은 제자의 행함이 뿌듯해 농(弄)으로 던진 말이었다.이에 자유가 답했다. “예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도(道)를 배우면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이 도를 배우면 부리기가 쉽다’고 하셨습니다.” 공자는 이 말을 듣고 수행하는 제자들을 불러모은 뒤 “제자들아, 자유의 말이 옳다.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은 농담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공자가 “닭을 잡는 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라고 한 것은 자유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인재인데도 무성과 같은 작은 읍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이 대견해 빗대 말한 것이다.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얘기다.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우도할계(牛刀割鷄)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쓴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 지나치게 큰 힘을 사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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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飛龍乘雲(비룡승운)

    ▶ 한자풀이飛 : 날 비龍 : 용 룡乘 : 탈 승雲 : 구름 운용이 구름을 타고 난다는 뜻으로영웅이 때를 만나 권세를 누림의 비유 - 《한비자》한비자(韓非子·기원전 약 280~233년)는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불리는 인물로, 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이다. 중국 고대의 이름난 사상가이자 법가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의 통치 기반에는 그의 사상이 깔려 있다.한비의 술(術)은 군주가 신하를 부리는 통치술이다. 교언영색(巧言令色·교묘한 말과 알랑거리는 얼굴빛)의 본 모습을 읽어내 엄격한 상과 벌로 신하를 다스려야 군주의 권위가 높아지고 나라가 바로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균형 잡히고 엄격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은 그가 주창한 통치술의 핵심이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커지면서 덕(德)이 허물어진 공간을 엄격한 법치(法治)로 메워야 한다고 생각했다.《한비자》 ‘난세(難勢)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늘을 나는 용은 구름을 타고 오르고(飛龍乘雲), 뛰어오르는 뱀은 안개 속에 노닌다((騰蛇遊霧). 구름이 없어지고 안개가 걷히면 하늘을 나는 용이나 뛰어오르는 뱀도 지렁이나 개미와 같이 미미한 존재가 된다. 비록 현자(賢者)일지라도 권력이 약하고 지위가 낮으면 권력이 강하고 지위가 높은 우자(愚者)에게 머리를 숙이고 복종해야만 하는 것이다.”이 구절에서 유래한 비룡승운(飛龍乘雲)은 용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뜻으로, 영웅호걸이 때를 만나고 권세를 얻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거꾸로 현명한 자도 권세가 약하고 지위가 낮으면 그 능력을 펴지 못함을 의미한다. 의지하고 부릴 수 있는 수단이 없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日暮途遠(일모도원)

    ▶ 한자풀이日 : 날 일暮 : 저물 모途 : 길 도遠 : 멀 원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할 일은 많지만 시간이 없음을 비유-<사기(史記)>오자서(伍子胥)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은 소부 비무기의 참언(讒言: 거짓으로 남을 헐뜯어 윗사람에게 고해바침)으로 평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에 오자서는 오(吳)나라로 도망가 후일 복수를 기약했다.마침내 오나라의 행인(行人: 외교장관에 해당하는 관직)이 된 오자서는 오왕 합려를 설득해 초나라를 공격했다. 오자서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켰지만, 원수인 평왕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 후계자 소왕(昭王)의 행방 또한 묘연해 잡을 수가 없었다.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오자서는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가한 후에야 그만두었다.산중으로 피한 친구 신포서가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왕을 섬겼던 그대가 지금 그 시신을 욕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또 있겠는가”하며 오자서를 꾸짖었다. 이 말을 들은 오자서는 다음과 같이 대꾸했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故倒行而逆施之).” <사기> 오자서열전에 나오는 얘기다.일모도원(日暮途遠)은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할 일은 많은데 날이 저물어(늙고 쇠락해) 목적을 이루지 못함을 비유한다. 시신을 꺼내 목을 베거나 채찍질을 가하는 일을 부관참시(剖棺斬屍)라고 한다. 흔히 죽은 뒤 죄가 드러난 사람의 시신을 꺼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자르는 행위를 말한다.“오늘 배우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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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仁者無敵(인자무적)

    ▶ 한자풀이仁 : 어질 인者 : 놈 자無 : 없을 무敵 : 원수 적어질게 대하는 자에게는 적이 없음최강 무기는 인(仁)이라는 뜻도 포함-<맹자(孟子)>양나라 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예전에는 천하를 호령하던 진(晉)나라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주위 나라들에 땅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고 있습니다. 과인은 이를 수치로 여겨 그들을 물리치고자 합니다. 방법이 없겠습니까?”맹자가 답했다. “만일 대왕께서 어진 정치를 베푼다면 이 땅의 모든 사내는 몽둥이밖에 든 것이 없다 할지라도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적군을 물리칠 것입니다. 옛말에 ‘어진 사람에게는 대적할 자가 없다(仁者無敵)’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일컫습니다.” <맹자> 양혜왕편에 나오는 얘기다. 인자무적(仁者無敵)은 말 그대로 ‘어진 자에게는 적이 없다’는 뜻으로 최고의 무기는 인(仁)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양혜왕편에는 함의가 비슷한 대화가 나온다. 맹자가 양혜왕을 찾아오자 왕이 반기며 “대인께서 그 먼길을 오셨으니 저희 나라에 어떤 이익을 주실는지요”하고 묻자 맹자가 왕을 나무라듯이 답한다. “왕께서는 인을 먼저 물으셔야지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하필이면 왜 이익이 되는 것만 말하느냐는 하필왈리(何必曰利)가 나오는 대목이다.어짊(仁)은 공자 맹자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의 핵심이다. 유가에서 인은 인간됨의 시작이자 끝이다. 공자는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知者不惑),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仁者不憂),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勇者不懼)”고 했다.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적이 없다는 얘기다. 날카로운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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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蝸角之爭(와각지쟁)

    ▶ 한자풀이蝸 : 달팽이 와角 : 뿔 각之 : 갈(어조사) 지爭 : 다툴 쟁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뜻으로아무 소용없는 사소한 다툼을 비유 - <장자(莊子)>전국시대 위나라 혜왕(惠王)은 제나라 위왕(威王)과 동맹을 맺었으나 위왕이 그 맹약을 깨뜨렸다. 몹시 노한 혜왕은 자객을 보내 위왕을 죽이려고 대신들을 모아 놓고 방안을 의논했는데, 공손연이 다른 생각을 내놓았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자객을 보내 원수를 갚는다는 것은 체면이 서지 않는 일입니다. 군대를 보내 공격하는 것이 떳떳한 방법입니다.”계자가 대뜸 반대하고 나섰다.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인데, 그렇게 되면 많은 병사가 죽거나 다치고 백성들은 몹시 불안할 뿐 아니라 비용 충당에 허덕이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전쟁은 가능한 한 피해야 합니다.” 결론 없이 논쟁만 지속되자 혜시가 말했다. “대진인(戴晉人)은 학식이 높고 사물의 이치에 통달했으니, 그를 불러 물으면 대답을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조정에 불려온 대진인은 전후 사정을 듣고 왕과 문답을 이어갔다.“전하께선 달팽이란 미물을 아시겠지요?” “알다마다요.”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 촉씨(觸氏)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 만씨(蠻氏)라는 나라가 있는데, 양쪽이 영토 분쟁을 일으켜 격하게 싸우는 바람에 전사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믿으시겠습니까?” “그런 터무니없는 얘기가 어디 있소?” “그럼 이리 여쭙지요. 전하께서는 이 우주의 사방 위아래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그렇다면 나라 따위는 티끌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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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要領不得(요령부득)

    ▶ 한자풀이要 : 구할 요領 : 옷깃 령不 : 아닐 부得 : 얻을 득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말이나 글의 목적 및 의미가 분명치 않음 -<사기(史記)> 등전한 7대 황제인 무제는 흉노족의 약탈에 시달렸다. 타개책을 놓고 고민하던 무제는 기원전 2세기 중반 흉노에게 쫓겨 농서에서 서쪽 사막으로 옮겨간 월지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월지에 다녀올 사신으로는 장건이라는 관리가 꼽혔다.한데 장건은 농서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혔고, 흉노에게 호감을 산 그는 장가도 들어 아들까지 낳고 그들과 함께 살았다. 늘 도망칠 기회를 엿보던 그는 10년이 지난 어느 날, 처자와 일행을 데리고 탈출해 월지의 궁에 도착했다. 장건은 왕을 알현하고 무제의 뜻을 전했다. 왕의 대답은 의외로 부정적이었다. “월지는 기름진 이 땅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소. 백성들도 옛 원한을 씻기 위한 전쟁은 원치 않을 것이오.”장건은 단념하지 않고 월지의 속국인 대하국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려고 했으나 허사였다. 이 일을 <사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한 채(要領不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길에 올랐다.”요령부득은 ‘사물의 중요한 부분을 잡을 수 없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 혹은 일처리 등이 분명치 않음을 일컫는다. 옛날에는 요령부득이 두 가지 다른 뜻으로 쓰였다. 하나는 ‘요령’의 ‘요’가 ‘허리 요(腰)’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경우인데, 이때의 요령부득은 제명에 죽지 못함을 이른다. 옛날에는 죄인을 사형에 처할 때 무거운 죄는 허리를 베고 가벼운 죄는 목을 베었다. 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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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遼東之豕(요동지시)

    ▶ 한자풀이遼 : 멀 요東 : 동녘 동之 : 갈 지豕 : 돼지 시요동 땅의 돼지라는 뜻으로하찮은 공을 자랑함을 비유 - <후한서(後漢書> 등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 태수 팽총(彭寵)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 주부(朱浮)가 그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까지 갔더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고 한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보병 3000여 명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나라의 도읍 한단을 포위 공격했을 때는 군량 보급의 중책을 맡아 차질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그는 좌명지신(佐命之臣: 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당하고 말았다. <후한서> 등에 전해오는 얘기다.요동지시(遼東之豕)는 글자 그대로 ‘요동의 돼지’라는 뜻으로, 남이 보기에는 대단찮은 물건을 귀히 여기는 어리석은 태도를 일컫는다.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양양하여 으스대는 것을 비유한다. ‘자신의 공이 요동지시에 불과한 것도 모르고 입만 열면 공치사를 한다’는 식으로 쓰인다.군자는 바위만 한 공(功)을 조약돌만 하다 하고, 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