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결정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9월 16일(현지시간) 첫 테이프를 끊은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3.75~4.00%로 0.25%포인트 올렸습니다. 그간 기준금리를 동결 내지 인하해 온 Fed가 3년 2개월 만에 다시 인상에 나섰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미 Fed가 본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2024년 하반기에 ‘금리 피버팅(pivoting)’이란 말이 유행했습니다. 이전엔 쭉 올려오던 금리를 인하 쪽으로 방향을 튼다고 해서 생겨난 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금리 인상 쪽으로 피버팅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미국 외 여러 주요국도 이런 흐름에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8일엔 일본은행(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현행 1.0%에서 1.25%로 3개월 만에 재차 인상했습니다. 일본은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제로금리 또는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 왔는데요, 이젠 물가 등의 관리를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했던 겁니다. 1.25%의 기준금리는 31년 만의 최고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도 지난 7월과 8월에 연속으로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다음번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가 세 차례 연속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기준금리를 변동시키는 금융정책은 한 나라의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흐름을 좌우합니다. 금리와 관련된 정책과 동향은 청소년의 경제 이해력에서 중요한 부분입니다. 특히 지금은 주요국의 금리정책이 변곡점을 맞고 있는 시기여서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크게 다섯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긴축’의 의미 국내외 언론은 최근의 경제 흐름을 두고 ‘글로벌 긴축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또는 ‘선진국발 연쇄 긴축이 시작됐다’고 보도합니다. 지출을 크게 줄인다는 뜻의 ‘긴축(緊縮)’은 일상 대화보다는 신문이나 학술적 공간에서 많이 쓰입니다. 반대말은 ‘완화’입니다. 이는 영어로 각각 ‘tightening’과 ‘easing’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기가 활황일 때는 중앙은행이나 금융당국이 긴축 정책을 펴며 돈줄을 죄고, 경기침체기에는 금융완화로 돈을 풀어 대응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입니다.
그렇다면 ‘긴축 시대가 시작됐다’는 판단은 어떤 때에 할 수 있는 걸까요? 먼저, 주요국들이 물가 상승이나 경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린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일제히 금리 인하에 나설 때입니다. 다음으로 한 번의 금리 인상이 아니라 추가적인 인상, 다시 말해 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낼 때입니다. 세계 각국이 경기 확장보다는 안정 쪽으로 정책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생겨날 때 ‘긴축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경제 뒤흔든 '긴축의 역사'
2차대전 이후 세계 경제사에서 ‘긴축 시대’라고 불렸던 시기는 크게 다섯 차례 있었습니다. 이는 현대 경제사의 흐름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제대로 훑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1979~1982년의 이른바 ‘볼커 쇼크’ 때였습니다. 직전 1970년대의 두 차례 석유파동(오일쇼크)은 미국 내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 즉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몰고 왔습니다. 당시 폴 볼커 Fed 의장은 취임 이후 기준금리를 20% 가까이 인상하며 물가와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에 따라 경기는 급강하했고, 중남미 국가들은 달러부채 부담이 폭증했습니다. 이게 1982년 멕시코의 디폴트(채무불이행)로 시작된 중남미 부채위기를 불렀습니다. 극단적인 물가와의 전쟁이 큰 혼란을 가져왔지만, 이후 1980~1990년대 미국 경제 대안정기(Great Moderation)의 토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1994년 앨런 그린스펀 Fed 의장의 ‘선제적(preemptive) 긴축’ 정책입니다. 말 그대로 경기 과열 조짐이 나타나기 전, 예방주사(금리 인상)를 미리 놓은 겁니다.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에서 6%로 두 배 인상했습니다. 이 여파로 채권가격이 급락해 ‘채권 대학살(Bond Massacre)’ 상황이 빚어졌고, 멕시코 페소화가 폭락하는 ‘데킬라 위기’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긴축은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로 초저금리 정책을 폈던 때와 관련 있습니다. 초저금리는 경기회복과 함께 물가상승 압력을 키웠고, 미국 Fed는 이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17차례 연속으로 올렸습니다. 1%였던 기준금리가 5.25%까지 급격하게 높아졌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긴축은 집값 거품을 잡는 데는 효과를 냈습니다. 그러나 2007~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잉태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제로금리 정책을 다시 정상화하는 금리 인상이자 긴축 시기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책이 40년 만의 고물가 상황을 부르자, Fed는 1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0%대에서 5%대로 급격히 올렸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지역은행이 파산하고 영국 국채시장이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긴축의 역사를 짚어본 것은 두 가지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는 긴축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시행된다는 점, 다른 하나는 그 대가로 금융 불안, 경제가 취약한 나라의 위기 상황, 자산시장 조정 등이 불가피하게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긴축의 사회경제적 효과 그렇다면 긴축은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까요? 먼저, 기준금리를 올리면 시중금리가 따라 오릅니다. 이는 기업의 투자와 가계의 소비를 위축시킵니다. 은행 등에서 변동금리로 돈을 빌린 사람들의 부담이 특히 커집니다. 금리 인상 외에 양적긴축, 즉 통화공급 자체를 줄이는 정책 수단이 가동되면 은행의 대출 여력이 줄어듭니다.
경기가 예전만 못할 것이란 기대가 생기면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의 가격이 떨어집니다. 고용시장은 얼어붙고 실업은 늘어나며, 돈이 돌지 않아 스타트업 창업도 위축됩니다. 사람들의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낮아져 실제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는 효과도 나타납니다. 긴축 정책이 시작된다는 신호는 시장과 경제주체들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긴축 시대는 사회 전반의 변화도 몰고 옵니다. 경기가 싸늘해지면 내집마련,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출생아 수가 적어지면 우리나라와 같은 저출생 국가는 더 힘들어집니다. 소비시장에선 절약이 미덕이 되고, 고가 브랜드 대신 가성비 제품이 인기를 얻습니다. 다이소와 같은 저가제품 마트에 사람들이 몰립니다. 경제적으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불만도 높아집니다.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각종 시위와 노동자의 파업도 늘어나게 됩니다. 지금은 구조적 저성장 겹쳐위의 설명은 일반론인데요, 현실에선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자유무역이 퇴보하고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립니다. 글로벌 공급망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둘로 쪼개지고, 관세전쟁이나 탈세계화는 기업의 비용 증대, 이익 감소를 부릅니다. 과거와 비교하면 세계 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지고 경제적 비효율은 늘어나게 됩니다.
세계은행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하면서 신흥국의 경우,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1인당소득 증가율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런 ‘구조적 저성장’이 긴축 시대와 겹치면 세계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해외 경제석학과 경영 구루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습니다. 월가의 대표적 투자자인 레이 달리오는 ‘장기부채 경기순환론’을 주장합니다. 즉, 선진국들이 수십 년 쌓아온 부채가 임계점에 다다르면 1930~1940년대와 같은 대규모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부채 감축) 국면이 온다고 경고합니다. 일종의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기존의 재정·통화정책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대표적 경기 비관론자로 ‘닥터 둠(Dr. Doom)’이란 별명을 가진 누리엘 루비니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메가 위협론(MegaThreat)’을 폅니다. 즉, 고령화와 부채,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대체, 지정학적 분절화 등이 동시에 겹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상화하는 위기가 온다는 겁니다.
지정학적 분절화는 세계 경제가 같은 진영끼리만 뭉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런 상황은 1930년대 대공황 이전과 닮았다는 경고도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세기 초 영국 주도로 통합됐던 세계 경제가 탈세계화, 민족주의 심화, 군비 확장 경쟁 속에서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역사를 언급하며 지금도 그럴 위험성이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긴축 시대를 맞는 경제주체의 자세
긴축의 시대는 끊임없이 성장해 온 세계 경제 역사에서 볼 때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 자연히 이를 경험한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사회 전체적으로 일종의 ‘공급 과잉’ 상태가 됩니다. 선진국에선 어디를 가나 자기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재화와 용역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이를 유통시키는 통화량이 풍족하며, 통화유통속도도 빨라 경제 전체가 급성장합니다. 계속 팽창하는 사회라는 의미에서 이를 ‘팽창사회’라 부를 만합니다.
그런데 긴축 시대가 되면 경제 규모와 사람들이 각자 가져가는 몫이 줄어드는 ‘수축사회’가 됩니다. 파이가 줄면 자신의 몫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본과 기회가 상위 계층과 기업에 쏠리는 ‘승자독식’ 현상이 심해집니다. 팽창사회에서는 소비를 위해 빚을 낼 수 있지만, 수축사회에선 그러지 못합니다. 이른바 ‘부채 경제’가 한계에 다다르고, 사회경제적인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따라서 긴축 시대에는 경제주체의 마인드셋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산 가격은 계속 오른다” “경제는 항상 성장한다”는 그간 익숙했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경제와 자산 가격은 쪼그라들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긴축 시대에는 무엇보다 부채를 줄여 몸집을 슬림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줄이고,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소득에 비해 과해지지 않도록 점검해야 합니다. ‘빚투’라는 단어와는 담을 쌓고 살아야 하죠. 필요와 욕구를 구분하는 습관을 들이고, 주택 구입이나 자동차 교체 등 대규모 지출의 시점도 부담이 되지 않게 조정해야 합니다. 투자의 경우, 고평가된 성장주보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자산, 실질금리에 덜 민감한 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야 합니다.
경기가 좋을 때 ‘더 벌기’에 집중했다면 긴축기에는 ‘잃지 않기’ ‘버티는 힘, 체력’을 기르는 게 중요합니다. 호황기에는 일단 벌어서 나중에 갚자는 접근이 통했다면, 긴축기엔 지출 전에 상환 여력부터 따져보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