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3만9164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는 작년에 비해 2750달러(약 7.6%) 늘어난 수치인데요, 최근 5년 만의 최대 증가폭입니다.
중요한 건 4만달러에 근접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가 4만달러를 넘긴 적은 아직 없습니다. 내년 우리 정부가 예상하는 경제성장률(4.6%)과 최근의 환율 추이를 감안하면 내년 1인당 GDP가 처음으로 4만달러를 돌파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주요 7개국(G7)이나 서유럽 국가, 싱가포르 등의 1인당 GDP는 대략 3만~4만달러 수준입니다. 4만달러를 넘기면 국제적으로 비교해도 확실한 선진국 클럽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 초호황에 따른 수출 증가를 바탕으로 ‘소득 4만달러 선진국 대한민국’ 뉴스를 접할 것 같습니다. 1%대 안팎의 저성장이 지속될 것을 우려하던 데 비하면 수출 호황과 3%대 성장 전망은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입니다.
금융위기 이후 최장기간의 고용 한파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9개 주력 제조업종 가운데 작년에 비해 일자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업종은 반도체와 조선산업뿐입니다. 나머지 기계, 전자·디스플레이 등 6개 업종은 ‘유지’에 그치고, 섬유산업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중에서도 청년 고용이 큰 문제입니다. 취업 절벽에 가로막혀 생애 첫 직장을 잡기도 힘들고,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잃는 청년이 많다는 뉴스가 매달 통계를 통해 전해집니다. 최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청년층 취업자는 총 344만1000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1000명(5.3%) 줄었습니다. 월별로 따져본 청년 취업자 감소세는 4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긴 기간 동안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청년 고용률은 44.2%로 27개월 연속 하락했고, 청년 실업률 6.8%는 5년 6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한 수치입니다.
성장(또는 경기 수준)과 고용 간에 왜 이런 미스매치(mismatch, 불일치)가 생겨날까요? 경제는 다시금 힘을 내며 성장하는데 청년들은 왜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일까요? ‘고용 없는 성장’이란 말에서 보듯, 이 문제는 오랜 기간 반복돼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결은커녕 뉴노멀(New Normal, 새로운 기준)로 굳어지는 듯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런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해를 충실히 하면 국어 비문학 지문이나 논술시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겁니다.
3가지 구조적 원인 심각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른바 ‘성장 엔진’과 ‘고용 엔진’이 분리됐다는 점입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가 늘어나면서 반도체 등 업종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이 산업은 자본집약적 성격이 강해 고용을 늘리는 효과는 그보다 못합니다.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임금이 많고 고용안정성이 높은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조업 취업자 수는 23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반도체에만 의존한 경제성장은 다른 부문의 인력과 투자를 흡수해 성장 기반을 잠식하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 발생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둘째,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간의 임금, 고용안정, 사내복지 등 격차가 여전한 점입니다. 한마디로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병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입니다. 청년들은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은 나름 필요로 하는 능력과 경력을 갖춘 구직자가 많지 않다고 하소연합니다.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 가운데 약 26%가 고용을 늘리지 않는 이유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구직자가 원하는 일자리, 구인 기업이 원하는 경력(내지 능력)을 갖춘 인력이 서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일자리가 없다’기 보다는 ‘맞는 일자리’가 없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게 중요한 부분인데요, AI가 청년 일자리를 사실상 뺏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6월부터 4년간 청년층 일자리는 28만5000개 급감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94%(26만8000개)가 AI 활용도가 높은 ‘AI 고노출 업종’이었습니다. 이는 전문대 졸업자보다 대졸자의 실업률을 더 높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어요. 문제는 청년들이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맡던 업무와 일자리가 AI로 대체되면서 ‘경력 사다리’의 첫 칸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업 하려는 의욕 살리는 게 지름길이처럼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성장-고용 미스매치’ 문제가 왜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걸까요? 먼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는 데 이해관계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근무기간이 늘어나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높아지는 대기업 정규직의 연공서열식 임금체계,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강력하게 버티는 대기업 노동조합의 힘, 청년 고용 못지않게 중요한 정년 연장의 문제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달라는 노조, 노란봉투법 등장 이후 현실화한 하청 노조의 파업 압박 등으로 더욱 더 청년 고용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음으로 AI에 따른 청년 일자리 감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정부의 정책 설계도 아직 미비합니다. 경제부처에선 GDP나 수출, 환율 같은 거시 지표 관리에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쓰게 됩니다. 고용의 질과 청년 취업 체감도는 경제 지표 관리에 잘 반영되지 못하는 현실도 있습니다.
현실은 만만치 않지만, 청년 고용 해결의 방향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결국 기업의 투자 확대가 청년 일자리 증대에 핵심 요소로 꼽힙니다. 정부는 기업의 채용 여력을 떨어트리는 규제 장벽과 비용 부담을 낮춰야 합니다. 신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도 과감히 풀어 양질의 일자리가 자꾸 만들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이 인력을 더 뽑고 싶게 하는 규제 완화와 노동환경 개선이 필요합니다.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 연장, 이익에 연계한 과도한 성과급 요구, 파업 리스크 등의 기업 부담을 줄여줘야 합니다. 기업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정공법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첨단산업 인력 20만명 양성과 민간 및 공공일자리 30만개 창출 등을 뼈대로 하는 ‘청년 일자리 회복 방안’을 곧 내놓을 예정입니다. 그런데 정부의 대책을 담은 자료는 뭔가 도식적이고 목표 숫자를 꿰어맞추려는 듯한 느낌을 많이 줍니다. 위에서 열거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권의 인기와 지지도 하락도 감수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은 대책 자료는 ‘보여주기식’에 그치고, 본질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부의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생산성 향상과 업무능력 증대를 위한 청년 자체의 노력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결국 AI를 활용하는 역량과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는 문제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 보고서 등을 보면 구직자들은 단기적으로는 AI 도구 실습과 프로젝트 경험을, 장기적으로는 문제해결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전략을 세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