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과의 진화, 자유학문에서 융합·첨단으로의 긴 여정
12세기 유럽 대학에선 ‘7개 자유 과목(septem artes liberales)’을 중심으로 학생을 가르쳤다. 문법과 수사학, 논리학의 ‘문과 3개 과목(Trivium)’과 산술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의 ‘이과 4개 과목(Quadrivium)’과 같은 기초학문이 교육의 중심이었다.

대학 전공에는 ‘시대 정신’이 반영된다. 근대 대학 모델로 꼽히는 독일 베를린대(1810년 개교)는 외부 간섭 없이 순수하게 학문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뒀다.

교육의 핵심은 교수 주도 세미나와 연구실이었다. 학과는 철학과 법학, 의학을 중심으로 갖췄다. 순수 학문 중심으로 학교가 꾸려진 데는 광산과 건축, 군사와 같은 전문 직업학교 체제를 갖춰가던 나폴레옹 치하 프랑스를 향한 반감이 한몫했다.

독일 대학 모델은 미국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875년 설립된 존스홉킨스대는 실험과 세미나를 중시하는 독일 대학의 수업 방법을 도입했다. 이는 곧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자유의 바람이 분다(Die Luft der Freiheit weht)’라는 독일어 모토가 적힌 스탠퍼드대 엠블럼은 이런 시대의 유산이다.

1897년 설립된 교토제국대를 중심으로 독일 교육을 접목한 일본 주요 대학에선 요즘도 세미나의 독일어 발음(제미나)에서 유래한 ‘제미(ゼミ)’가 수업의 중심이다.

일본과 미국을 통해 대학 제도를 도입한 한국에선 경제학과, 생물학과와 같은 순수학문 위주의 학과 체제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하지만 시대 변화로 실용적인 학과가 꾸준히 늘었다. 학과 명칭이 바뀌는 일도 흔해졌다. ‘글로벌’ ‘융합’ ‘첨단’과 같은 수식어 때문에 학과 정체성을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대가 노어노문학과 명칭을 43년 만에 러시아동유럽어문학과로 바꾼다는 소식이다. 연구 영역을 확장하려는 취지다.

혹시라도 한국 대학의 변신 노력이 ‘간판’만 바꿔 다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국에선 ‘전공 학살’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시절이다. 첨단 기술 연구를 심화하기 위해 학부 전공의 30% 이상을 구조조정하는 모습에 비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