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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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최연소로 임용된 국내 한 석학이 정년 퇴임 후 중국 청두 전자과학기술대(UESTC)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뜨겁다. 한국 과학기술을 대표해온 인물이 은퇴 직후 곧바로 중국행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은 더욱 크다. 특히 이 대학은 군사적 응용이 가능한 기술 연구를 진행한다는 이유로 미국 상무부가 지정하는 ‘수출규제 명단(Entity list)’에 2012년부터 오른 곳이다. 해당 교수는 28세의 나이로 KAIST 최연소 교수에 임용돼 37년간 연구하며 무선통신 시스템과 통계적 신호처리 분야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이 일은 단순한 연구 연속성 차원을 넘어 국가 핵심 인재 유출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석학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제도적 공백을 지적하며 국내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찬성] 세계적 학자 영입 제안 흔한 일, 연구 기회 확대…학문 발전 도움해당 교수의 중국행은 단순한 ‘두뇌 유출’로만 보기 어렵다. 정년 이후 연구 공백이 발생하는 한국의 제도적 한계 속에서 해외로 나가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은 학문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한다.

국내 석학들은 65세 정년이 지나면 연구실과 월급, 연구원도 지원받지 못한 채 명예직 타이틀만 받게 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70세 또는 나이 제한 없이 강의나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정년 후 교수’ 제도가 신설됐지만, 실제로는 연구비 수주를 요구하는 등 제도적 지원이 제한적이다. 국가 과학기술 인프라 발전에 기여해온 인물들이 사실상 ‘연구 기회 박탈’ 위기에 놓이는 셈이다.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아낌없이 제공하겠다는 중국 측 영입 제안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연구자에게 학문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평생을 바친 삶의 이유이자 존재의 기반이다. 한국 사회가 연구자의 열정을 정년이라는 제도적 울타리 안에 가둬두는 한, 석학들이 해외 무대로 향하는 것은 예견된 흐름이다.

중국은 과학기술 발전에 천문학적 투자를 이어가며 우수 연구 인재에게 높은 처우와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분야의 석학에게는 연구비를 제한 없이 지원하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과기한림원이 정회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1.5%가 5년 이내 해외에서 영입 제안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 중 82.9%는 중국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세계적 학자가 이런 제안에 흔들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그런 선택을 일방적으로 비난해선 안 된다. 나아가 해외 진출은 단지 경제적·제도적 이유를 넘어 새로운 국제 협력과 연구 생태계 확장의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한국 학계의 폐쇄성과 경쟁적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십을 경험하는 것은 학문적 발전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자의 ‘자율적 진로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반대] 안보 직결된 전략적 두뇌 유출 심각, 국가가 키운 석학…윤리적 책무 지켜야이번 이직은 단순한 연구 기회의 확대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략적 두뇌 유출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해당 교수가 합류한 중국 전자과학기술대는 군사 기술개발과 밀접히 연결된 기관이다. 여기서 이뤄지는 연구 성과는 결국 중국의 군사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곧 한·미 안보 협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은 막대한 국가 자금으로 석학의 연구를 지원해왔다. 해당 교수와 같은 인물은 단순한 개인 연구자에 그치지 않는, 이른바 ‘국가적 자산’이다. 그가 세계적 석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의 지속적 투자와 사회적 지원이 있었다. 따라서 연구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선택이 개인의 권리일 수는 있으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적 파급력은 철저히 공공적 차원에서 평가해야 한다.

특히 중국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저명 석학과 정년 이후 연구자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 차원의 이동이 아니라 중국이 국가전략 차원에서 한국 두뇌를 조직적으로 흡수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한국이 정밀 기술·통신·반도체 같은 전략적 분야에서 이미 중국과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번 사례는 국가안보뿐 아니라 경제 안보 측면에서도 우려를 키운다. 세계적 연구자가 중국의 군사·산업 연구에 기여할 경우, 한국의 기술 우위가 약화하고 국익이 직접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석학의 ‘윤리적 책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 지원으로 성장한 연구자가 개인적 자유를 이유로 적성국에 연구 성과를 제공하는 게 타당한가.

‘학문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국가안보와 연구 경쟁력 문제를 희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국가적 자산이자 공공적 투자로 길러낸 석학이라면 최소한 적대적 경쟁국으로의 이동은 신중해야 한다. 이를 제약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지닌다.√ 생각하기 - 세계적 인재 유출 막는 제도적 해법 절실이번 KAIST 석학의 중국행은 단순한 개인의 이직 사건이 아니라 한국 과학기술 경쟁력과 안보 문제를 동시에 건드리는 중대한 논점이다. 한편에서는 석학의 학문적 자유와 기회 확대라는 긍정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는 세계적 인재를 보호·활용하지 못한 제도 실패의 결과라는 점이 뼈아프다.

[시사이슈 찬반토론] 중국으로 간 KAIST 석학, 선택 존중해야 하나
이제는 단순히 ‘애국심’이나 ‘개인 희생’을 요구하며 두뇌 유출을 막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 대신 교수 재직 시설은 물론 정년 이후에도 석학이 안정적으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지원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국가에서 막대한 투자로 길러낸 리더급 연구자가 해외, 특히 전략적 경쟁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곧바로 국가 경쟁력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석학 개인의 선택을 비난하기보다 한국이 과학기술 리더층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묻는 게 마땅하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