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간 2만3000명 사주 상담한 이지혜 역술가새해가 시작되면 운세를 보기 위해 철학관, 역술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면 더욱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곳은 소위 점집과는 다르다. 사람의 생년·월·일·시 등 네 개의 기둥(사주)을 사주명리학에 근거해 해석한다. 23년간 2만명이 넘는 사람의 사주를 분석하고 상담한 이지혜 사주 심리 상담가를 만나 직업인으로서 역술가의 세계를 들어봤다.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직업, 역술가
▶연초에 철학관이나 점집을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선 철학관과 점집의 차이는 뭔가요.

“흔히 말하는 점집은 신내림을 받은 분들이 운영하는 곳이죠. 철학관과 역술원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 분들이 운영하는 곳인데 명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열 수 있어요. 생년월일을 바탕으로 사람의 특징, 성격, 직업 등을 내다보는 게 사주명리입니다.”

▶예전엔 혈액형에 따른 성격 얘기를 많이 했고, 최근엔 MBTI가 인기예요. MBTI와 사주명리학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MBTI는 기본적으로 16개 범주로 사람을 구분하는 방식이라면 사주명리학은 60가지 일주론으로 인간을 분석하죠. 사람마다 다른 일주를 갖고 태어나는데 각자 띠와 부모의 일주 등을 종합해 분석하는 것이 사주명리학의 원리입니다.”

▶과연 사주명리학이 얼마나 정확할까 하는 궁금증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고객들에게 꼭 피드백을 달라고 얘기해요. 예를 들어 자녀의 대학 진학에 대해 답을 해 드리면 그 후에 합격했는지 떨어졌는지 피드백을 잘 안 주시죠.(웃음) 한 번 오신 고객이 다시 오실 땐 잘 맞아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따지면 80~90%는 맞지 않을까 싶어요.”"노력에 따라 성공과 실패 갈라지지만 성향과 기질은 인간이 타고나는 것"▶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80~90%라면 굉장히 높은 확률인데요.

“예를 들어 A와 B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이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할지, 어떤 문제가 생길지를 일주를 바탕으로 예측해 보면 매우 정확하게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이 일을 한 지 오래됐지만 그런 일을 경험하고 놀랄 때가 많아요. 물론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노력이 좌우하지만 사람이 지니고 태어난 성향은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 성향이 사주에 나타나는 것이고요.”

▶보통 철학원·역술원 간판을 내걸고 활동하시던데, 활동 지역이 있으신가요.

“현재는 제주도에 사무실이 있고, 이전에는 부산에서 주로 했었어요. 저희 직업은 지역에 상관없이 온라인이나 전화로 상담을 많이 하는 편이라 해외에서도 연락을 많이 하시죠. 온·오프라인 비중을 나눠보면 한 80%가 온라인 상담인 것 같아요.”

▶일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스물세 살 때 처음 역술원을 열었으니 23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죠. 공부를 가르쳐 준 스승님 집 근처에서 열었는데 거기가 소위 점집 골목이었어요. 주로 신점을 보러 오는 고객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역술원을 했으니 잘 될 리가 없었죠.(웃음)”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직업, 역술가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어릴 적 어머니께서 점을 보러 가셨는데 그 분이 딸을 데리고 오라고 했대요. 그래서 엄마 손을 잡고 그 집에 갔는데 그 분이 대뜸 ‘너는 나중에 이 일을 할 것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정말 제 직업이 될 줄은 몰랐죠.”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의사, CEO 많이 만나"▶그동안 만나신 고객은 얼마나 될까요.

“올해 책(‘누구에게나 반드시 세 번의 대운은 찾아온다’) 출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자료를 모아 봤는데 2만3000명 정도 되더라고요. 1년에 1000명씩 상담한 셈이죠.”

▶주로 어떤 분들이 찾아오시나요.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분들이 오세요. 그 중에서도 의사라든지 CEO라든지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을 갖고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나는 편입니다.”

▶보통 연초에 사주를 많이 보는데 일종의 성수기, 비수기가 있겠어요.

“그렇죠. 저희들끼리 하는 말로 찬바람이 불면 성수기, 더워지면 비수기라고들 해요.(웃음) 연말연시에 가장 바쁘죠. 그리고 수능이 다가오면 또 바빠지는데 요즘에는 수시 전형이 여름부터 시작해 조금 바뀌긴 했어요.”

▶시대에 따라 좀 달라진 점도 있나요.

“예전에는 사고수나 건강운을 묻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재물운을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직장인들은 승진도 많이 물으시고요. 또 예전에는 결혼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요즘은 결혼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스스로 장단점 파악하고 노력하면 운명도 바꿀 수 있어"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직업, 역술가
▶사주명리학의 원리대로라면 사람의 인생, 미래는 정해져 있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보는 거죠. 사주명리학은 계절과 같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듯 인생도 일정한 리듬에 따라 순환한다는 논리예요.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 자연의 흐름에 따라 출생하는 순간부터 각자의 리듬을 갖고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죠.”

▶각자의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인데 그 운명을 바꿀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옛날엔 한겨울에 여름 과일을 못 먹었지만 지금은 사시사철 언제든지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됐잖아요. 사람 운명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타고난 기질과 장단점을 미리 파악하고, 약점을 보완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그걸 알게 해 주는 것이 사주명리학의 역할인 셈이죠. 다만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역술가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요.

“이 직업은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일이라 기본적인 이론을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학위나 자격증을 꼭 취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문에 대한 이해와 공부는 필수죠. 그 다음엔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다양한 인간의 삶을 역술가의 주관적인 잣대로 평가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죠. 사주뿐만 아니라 관상, 풍수, 작명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해요.”"역술가는 사람 운명 다루는 직업, 타인의 삶 주관적 잣대로 판단해선 안 돼"▶독학으로 사주를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데 독학으로도 가능한가요.

“이 학문 자체가 전통적으로 스승에게 사사를 받거나 독학으로 공부하는 분야예요. 저도 스승을 통해 입문한 후 동국대 특수대학원에서 풍수학 석사, 불교상담학 석사를 마쳤어요.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지식은 누구나 쌓을 수 있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흉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운명은 타고난다고 하셨으니 사주명리학을 공부하거나 역술가가 되는 사주도 있겠군요.

“있습니다. 운동 능력이나 공부머리도 타고난 사람이 있듯이요. 이 분야에는 직감적인 능력이 좋은 분들, 우리들 표현으로는 인연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제 사주는 전형적인 역술인 사주는 아니라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사람의 운명을 다루는 직업, 역술가
▶이 직업을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말하기 꺼려졌어요.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요즘에는 제 직업을 얘기하면 먼저 궁금해 하면서 슬쩍 물어보는 분들도 있고,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어요.”

▶성수기, 비수기로 표현을 하셨는데 역술가의 수입도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성수기와 비수기 차이가 있겠죠.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는 공시 가격이라는 게 없어요.(웃음) 그래서 역술원마다 천차만별이에요. 한 번 상담에 5000원을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30만원, 100만원을 받을 수도 있죠. 성수기, 비수기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입이 달라져요.”

▶찾아오는 고객이 있어야 수입이 생길 텐데 역술인들은 어떻게 자기를 알리나요.

“저는 입소문의 도움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상담을 하고 가신 분들이 주변에 소개해 주고, 그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연결되다 보니 지금까지 해 온 것 같아요. 사주 심리 상담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도 오래 했어요. 그 영향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혹시 사주를 보러 온 손님 입장에서 참고할 만한 팁이 있을까요.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 중엔 뭘 물어봐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을 안 하고 오는 분들도 많아요. 올해 운세가 어떤가요 하는 식으로 막연히 물어보죠. 본인이 정말 궁금한 것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그만큼 자세한 답을 받아낼 수 있습니다.”

▶역술인으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손님이 제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대로 실행해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보람을 느껴요. 언젠가 전화가 한 통 왔어요. 저에게 상담을 받은 분인데 시험에 합격했다는 전화였죠. 그래서 당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합격한 거라고 말했더니 그 분이 시험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올해 시험 운이 있으니 1년만 더 해 보라는 제 말을 듣고 가서 공부를 더 해 합격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전화를 받고 정말 고마웠어요.”

▶이 직업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미래 예측이라는 기능만 놓고 본다면 기존 방식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세상은 변하고, 인간의 생활 방식도 달라지고 있죠. 요즘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적성이 맞는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와 같은 개인 중심 사회로 변하고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주명리학은 인간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지혜롭고 가치 있는 학문인데 시대 변화에 맞춰 정신 수양과 상담으로 확장해 간다면 대체 불가능한 솔루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