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정 한국콜마 메이크업연구소 연구원화장의 역사는 고대 네안데르탈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네안데르탈인이 조개 껍데기에 담긴 노란 색소와 붉은 빛의 파우더를 썼다는 주장이 있다. 인류의 탄생 시점부터 화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화장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다양성을 더해 왔다.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발랐던 기초화장품에서 색조, 기능성까지 각양각색의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여성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화장이 남녀불문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화장품 시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국내 대표 화장품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자 개발 생산) 기업인 한국콜마 메이크업연구소의 윤희정 연구원을 만났다. 화장품 연구원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는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지 등을 들어봤다.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K뷰티' 돌풍 이끄는 화장품 연구원
▶어떤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

“한국콜마 메이크업연구소에서 립 케어류부터 립틴트, 립스틱 등 립의 전반적인 제형에 대한 기술 연구와 제품 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립 제품 연구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화장품에 대한 안전과 안정성을 기본으로 효능과 사용감이 좋은 화장품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안전성은 화장품을 피부에 발랐을 때 안전한지를 평가하는 부분으로 유해물질 검사를 통해 기준치 이상의 유해물질이 검출되거나 알러지 반응이 나오는지 등을 평가하는 일이고요. 효능팀에서는 화장품에 들어가는 원료나 완성된 화장품이 피부에서 어떠한 효능을 보이는지 테스트 하고 평가하는 일을 합니다.”

▶제형 개발은 뭔가요.

“제형은 화장품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공통 성분, 즉 오일, 각종 추출물, 계면활성제 등과 같은 원료들을 통칭하는 건데요. 쉽게 말해 이런 원료들을 균형 있게 조합해 안정성 있게 유지되도록 제형을 개발하는 겁니다. 사용감이 좋은 화장품을 만들기 위해선 제형 개발이 기본이 되는 것이죠.”

▶립 제품만 해도 스틱형이나 틴트 등 종류가 다양하잖아요. 각 제품마다 개발하는 팀이 따로 있나요.

“저희 회사는 스틱류, 리퀴드류 등 분야마다 연구팀이 나뉘어 있어요. 저는 리퀴드 제형을 주로 개발하는 파트에 있고요. 제품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스틱은 몰딩 작업을 거쳐야 해 주로 왁스를 사용해 컬러를 표현하고 리퀴드 제형은 유화나 오일류를 사용해 컬러를 표현한다는 차이가 있어요.”

▶제품 개발 단계를 설명해 주세요.

“한국콜마는 ODM 기업이라서 브랜드사에서 의뢰가 들어왔을 때 제품 개발이 시작되는데요. 제품 개발에 대한 콘셉트가 정해지면 그에 맞게 성분을 조사하고 원료를 선정합니다. 소재 개발 부서를 비롯해 향료 연구센터, 패키지 스튜디오 등 내부 연구 부서들을 거쳐 의뢰한 콘셉트에 맞는 제품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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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사에서는 어떤 식으로 의뢰가 들어오나요.

“대게 어떤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간략한 콘셉트 정도로 들어올 때가 많아요. 기존의 제품 중에서 장점을 특화시켜 의뢰할 때도 있고요.”

▶의뢰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군요.

“구체적으로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큰 콘셉트를 잡고 브랜드사와 저희가 끊임없이 소통해요.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점점 좁혀 나가게 되죠.”

▶브랜드사와 소통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브랜드사에서 요청하는 것도 있고, 반대로 저희가 브랜드사에 제안하기도 해요. 의뢰한 제품에 어떤 제형이 더 어울릴지 연구해 나온 데이터를 공유하고 제안하는 작업이죠. 요즘 유행하는 컬러나 트렌드를 파악해 제안하고, 수정하는 식이에요. 연구를 위해선 방향이 중요한데 브랜드사와 계속 소통해야 좋은 제품이 나오거든요.”

▶개발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요.

“최소 3개월 정도 걸려요. 길게는 6개월, 1년이 걸리기도 하고, 해외 브랜드는 2~3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도 있어요.”

▶평소 소통하는 상대가 마케팅이나 영업 분야일 텐데 연구원들이 쓰는 용어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맞아요. 고객사에서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요청할 때도 있는데 영업 담당자가 중간에서 잘 조정해 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맞추기 위해 연구하다 보면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지기도 해요. 고객사 요청에 최대한 맞춰 연구 개발하는 게 저희가 할 일이기도 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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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사에 선제안을 할 정도면 화장품 연구원은 트렌드를 꿰고 있어야겠네요.

“그렇죠. 화장품은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다 보니 어떤 제품이 인기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해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무조건 구입해 발라 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파악하곤 하죠.”

▶화장품 브랜드사와 연구 파트가 트렌드를 이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이끈다기보다는 조금 앞서간다고 볼 수 있어요. 화장품의 특성상 패션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니 화장품 연구원이라면 패션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뷰티 트렌드는 뭔가요.

“요즘엔 어떤 제품이 인기라기보다 소비자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제품과 컬러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같은 분홍색이라 해도 자신에게 맞는 분홍색이 있거든요. 그래서 좀 더 세밀하게 연구하려고 해요. 특히 코로나 이후부터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고 바른 듯 안 바른 듯한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바르면 바를수록 진하게 발색되는 제품도 인기예요.”

▶화장품 원료도 중요할 것 같아요. 보통 립 제품에는 몇 개의 원료가 들어가나요.

“색소 원료를 제외하면 기본 10개 이상 들어가요. 기본적으로 화장품이 갖춰야 할 원료를 비롯해 기능성 원료 등을 합치면 그 정도는 되고, 제품 특성에 따라 30~40개의 원료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화장품 광고에 과장이 많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실제 기능성 화장품의 효능·효과는 어떤가요.

“관련 법률이 있기 때문에 효과가 없는데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할 수는 없어요. 주름 개선이나 미백 효능을 내세운 제품은 실제 효능 연구팀에서 모두 검증하고 출시하고 있어요. 저희가 만드는 제품 중에선 없는 걸 있다고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웃음)”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K뷰티' 돌풍 이끄는 화장품 연구원
▶화장품 하면 ‘새로울 게 없다’, ‘나올 건 다 나왔다’는 말도 있어요. 그럼에도 계속 연구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도 화장품 연구를 하지만 세상에 나올 만한 제품은 다 나왔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런데 또 새로운 제품이 나오는 게 놀랍기도 해요.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나올수록 고객의 요구는 더욱 까다로워지고 세분화하고 있어요. ODM 기업은 고객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는 게 숙명이고, 또 실제 되게끔 연구를 하고 있어요. 결국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연구·개발을 하죠.”

▶연구할 때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뭔가요.

“립 제품의 역할은 입술 케어와 입술의 생기를 주는 컬러를 표현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어요. 컬러야 워낙 다양하게 출시되는데 케어는 보습을 충분히 잘 해 줄 성분이 들어갔는지가 중요해요. 특히 겨울이 되면 얼마나 케어를 지속적으로 해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화장품 연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우선 화장품에 관심이 많아야 해요. 전공도 중요한데 화학 계열이나 화장품 전공, 생물 관련 전공은 모두 가능해요. 석사학위가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최근에 화장품 연구원 채용 시 석사 이상 학력을 요구하는 회사가 많아지고 있어요. 영어도 중요합니다. 워낙 영어로 된 자료가 많고, 해외 고객사와 소통해야 할 일도 많거든요. 또 세미나나 박람회에서 주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를 잘 한다면 도움이 되겠죠. 화장품의 기초 이론과 법령을 파악하기 위해선 맞춤형 화장품 조제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화장품 연구원이 된 다음에 필요한 일도 있을 것 같아요.

“트렌드에 대응할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해요. 트렌드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죠. 여기에 제형의 미묘한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구분할 수 있는 섬세한 감각도 필요합니다. 고객사나 타 부서와 소통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과 장시간 연구할 수 있는 체력도 필수 조건입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뷰티에 대한 관심일 것 같아요. 저희는 ODM 기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을 의뢰받아 개발해요. 때문에 트렌드 파악을 위한 시장 조사부터 제품에 대한 고민을 늘 하고 있어야죠. 화장품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죠.”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K뷰티' 돌풍 이끄는 화장품 연구원
▶화장품 연구원이라는 직업의 장단점은 뭐가 있을까요.

“저희는 ODM 기업이라 해외 고객사들을 만나는 업무가 많아요. 특정 고객사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제형과 제품을 연구·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또 화장품을 직접 개발하니까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죠. 개인적인 화장품 구입 비용은 거의 안 들어요.(웃음) 반면에 대부분의 시간을 실험대에서 보내기 때문에 체력이 중요해요. 지속적으로 체력과 멘털 관리를 해 줘야 꾸준히 일할 수 있어요.”

▶요즘 연봉만큼이나 기업의 복지 혜택이 중요해졌어요. 한국콜마의 복지는 어떤가요.

“저희 회사만의 복지 혜택이 많은 편이에요. 특히 여성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출산 후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점인데요. 첫째는 100만원, 둘째는 200만원, 셋째는 1000만원의 출산 장려금도 지급합니다. 또 미취학 아동이 있는 직원에게는 자녀 수 제한 없이 학자금을 지원하고요. 기혼자 중 본인이나 배우자의 부모를 부양하고 있으면 효도수당을 받을 수 있어요.”

▶화장품 연구원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어요. 동시에 한국 화장품 연구원들의 역량도 인정받고 있죠. 저희 회사는 북미, 중동 등에도 진출해 있어요. 화장품 연구원이라는 직업은 앞으로 더 각광받지 않을까 싶어요.”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