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현장의 지휘자 손이천 K옥션 수석경매사 부동산, 주식에 이어 미술품 투자가 새로운 재테크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 미술품 투자는 극소수에게만 허락되는 프라이빗 투자 수단으로 일반인들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최근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아트테크(예술+재테크)’가 새로운 투자 방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묶여 있던 투자 심리가 폭발하면서 지난해 미술품 경매시장 규모는 약 2969억 원으로 전년(1139억원) 대비 2.6배로 불어났다. 전에 없던 호황을 누린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눈에 띄는 직업이 있다. 경매 현장을 지휘하는 ‘미술품 경매사’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현장을 압도하는 손이천 K옥션 수석 경매사를 만나 봤다.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국내에 단 10명뿐인 직업 미술 경매사
▶‘무한도전’이나 ‘나혼자산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기억이 있어요. 미술품 경매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쉽게 말해 경매 현장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일이에요. 작품에 대해 소개하고, 적당 가격에 경매를 시작해 응찰을 받는 등 경합·낙찰의 모든 과정을 맡아서 진행하죠. 가장 높은 가격에 낙찰을 시키지만 또 그 가격이 과하게 높지 않게 시장의 적정 가격에 잘 파는 게 경매사의 역할이죠.”

▶높은 가격에 낙찰시킬수록 좋은 거 아닌가요.

“물론 단기간의 실적을 봤을 땐 좋죠. 하지만 경매 회사는 중개 역할이기 때문에 저희가 팔았던 제품이 다시 저희 쪽으로 올 수 있어요. 예를 들어 과도한 경합 끝에 시장가보다 높은 금액에 응찰을 받은 분이 다시 경매에 내놓게 될 경우 그보다 높은 가격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거든요. 가격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경매회사와 경매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입니다.”

▶가격이 높게 나온다고 경매사가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군요.

“그렇죠. 현장에서는 여러 변수들이 나오는데, 자주 오시는 분들은 눈빛만 봐도 저 분이 경합을 더 할지, 안 할지 알 수 있어요. 높은 응찰이 계속 가는 경우에는 받아야 하지만 고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 경매사가 응찰을 마무리하기도 합니다.”"경매 현장 진행이 경매사가 하는 일... 무조건 비싼 값에 판다고 좋은 것 아냐" ▶경매에 들어가는 작품의 시작가는 어떻게 책정되는지 궁금해요.

“일반적으로 경매에서는 추정가만 표시가 됩니다. 낮은 추정가와 높은 추정가가 나오는데 낮은 추정가는 보통 내정가죠. 참고로 경매회사는 작가와 직접 연결하지 않고 작품을 소장한 고객과 거래를 하는데 내정가는 경매회사가 손님과 약속한 최저 금액이에요.”

▶최근 미술 시장이 호황이라고 합니다.

“작년에 업계 최대 호황기를 누렸죠. 호황일 땐 갤러리에서 직접 구매하는 1차 시장의 가격이 2차 시장인 경매가보다 낮은 경우도 있었어요. 유명 작가의 작품이 오픈된다고 하면 먼저 갤러리와 네트워크가 있는 고객들에게 오픈이 돼 일반인들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기 때문이죠. 구입할 기회가 오지 않으니 2차 시장인 경매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고 시작가 역시 높게 책정됐어요. 최근에는 호황기를 찍고 내려오는 시점이라 시장의 흐름도 바뀌고 있는 분위기입니다.”"TV 예능 출연 후 주변에서 알아보는 사람 늘어" 경매사와 홍보이사 겸직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국내에 단 10명뿐인 직업 미술 경매사
▶‘무한도전’, ‘나혼자산다’ 등 TV에 많이 출연하셔서 알아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무한도전 출연 후 식당에 갔는데 어떤 여자분이 계속 저를 쳐다보는 거예요. 꽤 오랫동안 보셔서 왜 그러나 했는데 다음날인가 SNS 메신저로 ‘그 날 식당에서 봤는데 너무 반가웠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그런 일이 많진 않은데 간혹 있어요.(웃음)”

▶TV 출연처럼 대중에 얼굴을 알리는 게 직업에 도움이 되나요.

“아마 도움이 됐겠죠.(웃음) 전 경매사지만 K옥션 홍보팀 이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마 회사 홍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직원 중 한 분이 와서 ‘가족들이 내가 무슨 회사에 다니는지 몰랐는데, 이사님이 방송 나오는 걸 보고 어떤 회사인지 알게 됐다’는 얘길 들은 적도 있었고요.(웃음)”

▶경매사와 회사 홍보 업무를 겸하면 굉장히 바쁘시겠어요.

“두 가지 일을 하기 때문에 바쁠 수밖에 없지만 일반적으로 경매사는 겸업을 하게 돼 있어요. 경매사라는 직업만 가진 사람은 국내 단 한 명도 없어요. 그건 외국도 마찬가지고요.”

▶겸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오프라인 경매가 그리 많지가 않아요. 경매사 직무만을 위해 채용을 하기가 회사 입장에선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거든요. 그래서 미술을 잘 알고 경매사를 하기에 적합한 인재를 회사에서 양성하는 편입니다.”"사내 직원 중 소질 있는 사람 선발해 경매사로 육성"▶경매사는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세계 어느 나라의 경매회사에서도 경매사만을 뽑진 않아요. 먼저 경매회사에 입사를 해야 합니다. 그 다음 회사에서 경매사가 필요할 경우 내부 직원 중에서 뽑는데 선임 경매사가 추천할 수도 있고, 본인이 지원할 수도 있죠.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경매사 교육을 하고, 경연을 통해 최종 선발합니다. 프랑스나 중국은 경매사 자격증이 있지만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도제식으로 경매사를 양성하고 있어요.”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국내에 단 10명뿐인 직업 미술 경매사
▶그런 시스템은 모든 경매회사가 같습니까.

“아마 그럴 거예요. 대부분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경연을 통해 경매사를 뽑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다음 선임 경매사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도제식 교육을 받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경매사가 경매만 할 순 없거든요. 작년엔 호황이어서 매달 한 번씩 경매가 있었지만 그 전에는 1년에 네 번 밖에 하지 않았어요. 상황이 그러니까 경매사만 채용하기에는 회사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경매회사 안에서 능력이 있거나 관심 있는 직원을 키우는 방식을 선택한 거죠.”

▶K옥션은 경매사들이 어떤 보직을 겸하고 있나요.

“저희 회사엔 경매사가 3명 있는데 한 분은 영업팀에서, 다른 한 분은 아카이브팀에서 근무하면서 경매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매사 도제식 교육에서는 어떤 걸 가르치나요.

“경매가 진행되는 전반적인 과정을 교육합니다. 경매에 올라오는 작품은 가격대가 몇 천만원에서부터 수억, 수십억, 수백억 원으로 넘어가는데 우리가 의외로 숫자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처음 호가를 50만원으로 하다가 경합이 있으면 100만원, 200만원으로 올리는 경우가 있어요. 긴장된 현장에서 경매사가 호가를 실수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호가를 자연스럽게 외칠 수 있게 가르치죠.”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하겠네요.

“그렇죠. 경합이 벌어지면 현장도 챙겨야 하지만 현장에 오지 못하고 전화로 참여하는 고객도 있거든요. 정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실수를 하게 되죠. 그래서 자다가도 호가를 자연스럽게 외칠 수 있을 만큼 계속 연습을 해야 합니다.”"경매 100차례 진행... 1만점, 3000억원 넘게 판매"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국내에 단 10명뿐인 직업 미술 경매사
▶그리고 또 뭘 배우나요.

“경매사를 내부 직원 중에서 뽑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경매 현장을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매사는 시간이나 현장 컨디션 등을 빨리 파악하고 직원들과 호흡도 잘 맞춰야 해요. 경매 현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보통 현장 경매에선 몇 점의 작품을 판매하나요.

“한 번 경매할 때 적게는 100점, 많게는 250점까지 경매를 하는데요. 네 시간 정도 하기 때문에 작품당 1분, 짧게는 30초에 끝나기도 합니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끝이 나네요. 호가 몇 번 외치다 보면 끝나버리는 작품도 많겠어요.

“그럴 때도 많죠. 기본적으로 작품이 올라오면 작품의 적정 가격이나 컨디션, 작품의 가치 등을 알려드려요. 경매에 참여하는 분들은 프리뷰 전시를 미리 보고 경매에 참여하시죠.”

▶경매사는 발음도 좋아야 할 것 같고,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경매사가 갖춰야 할 조건이 궁금합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건 약간 타고나는 기질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제 성격이 원래 내성적인데 경매사를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놀라요. 원래 이런 기질이 있었는데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웃음) 굳이 조건이라면 두 시간 넘게 서서 경매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과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임기응변도 필요하고, 침착함과 약간의 뻔뻔함이 있어야 해요.”

▶그동안 몇 점의 작품을 경매했는지 기억하세요.

“그동안 100번 이상 경매를 한 것 같은데 한 번에 100점이라고만 해도 1만점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몇 년 전에 추산해 보니 제가 진행한 낙찰 금액이 3000억 원이었는데 아마 지금은 더 올라갔겠죠.(웃음)”
[강홍민 기자의 직업의 세계] 국내에 단 10명뿐인 직업 미술 경매사
▶기억에 남는 경매가 있습니까.

“너무 많은데요. 2012년에 ‘퇴우이선생진적’이라는 작품을 경매했는데 26억 원에 시작해 34억 원에 최종 낙찰했어요. 이듬해 전재국 미술품 컬렉션도 기억나는데 100% 낙찰률을 기록했죠. ‘무한도전’과 ‘나혼자산다’에 출연한 것도 기억에 남고요.”

▶겸직을 하면 연봉도 다른 직원보다 높아지나요.

“일반 회사원처럼 미술품 경매사도 연봉제예요. 거래가 늘어나거나 100% 낙찰을 했다고 연봉이 오르진 않고, 회사 내규에 따라 책정됩니다. 해외 경매사는 경매사 성과급이 별도로 있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국내에도 빨리 도입되면 좋겠어요.(웃음)”

▶경매사라는 직업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경매사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에요. 때문에 항상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 국보같은 중요한 작품들을 가까이서 경험하고 접한다는 점이 아주 큰 장점이에요. 무엇보다 미술시장의 역사를 같이 써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이죠.”

▶경매사의 비전은 어떻게 보시나요.

“미국 중국 영국은 미술시장에서 경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0.2~0.5%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까지 우리나라 미술 경매는 큰 시장은 아닙니다. 작년에 국내 미술 시장에서 경매가 매출이 1조원을 기록했는데 전체 시장(2000조원)에 비하면 0.05%로 미흡한 수준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매 시장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