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금본위제 ( 上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파운드·마르크·달러 화폐단위는 귀금속에서 유래
드라크마. 유로화의 등장으로 사라질 때까지 수천 년간 통용된 그리스의 화폐 단위 ‘드라크마’는 원래 ‘한 손 가득히’란 뜻으로 쇠꼬챙이 여섯 가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고대 오리엔트 세계에선 오랫동안 은이 주요 가치 척도 및 교환 수단으로 기능했다. 아나톨리아 고원 주요 광산에서 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의 은이 산출됐고, 국제 교역에서도 활발하게 사용됐다. 하지만 은은 주조된 단위에 따라 계산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중량을 달아 계산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에선 주화가 아닌 은괴의 무게를 달아 사용했고, 상황마다 금속의 가치는 천칭에 달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정의를 집행하는 법규에도 은의 무게를 통한 지불 방식이 명문화됐다. 기원전 2세기 메소포타미아 에슈눈나 법전에 “다른 사람의 코를 물었을 때 은 1미나(고대 그리스 무게 단위, 약 500그램)의 벌금이, 뺨을 때렸을 때는 10세켈(유대 무게 단위, 약 5온스)의 벌금이 부과됐다”는 식이다.

반면 앤서니 앤드루스 옥스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7세기경 표준화된 철물을 교환 목적으로 사용했고, 철물의 대표주자는 바로 쇠꼬챙이였다. 이 같은 철물을 사용한 명칭은 화폐 명칭으로 이어졌다. ‘오볼로스’라는 작은 은화를 가리키는 단위는 한 가닥의 쇠꼬챙이에서 유래했고 ‘드라크마’는 여섯 가닥의 쇠꼬챙이에서 나왔다.

이후 등장한 주요 화폐 단위도 대부분 귀금속의 무게를 재는 단위에서 유래한 것이 많다. 영국의 ‘파운드’와 발음과 철자가 똑같은 무게 단위 ‘파운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파운드는 원래 은 1파운드 중량을 표시하는 단위였지만 19세기 들어 금이 은을 대신해 가치 척도를 표시하는 기준이 되면서 금 15분의 1파운드(무게 단위)가 화폐 1파운드(화폐 단위)가 됐다. 독일의 옛 화폐 단위인 ‘마르크’도 금과 은의 무게를 잴 때 사용되던 2분의 1파운드라는 의미의 무게 단위 ‘마르크’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의 ‘리브르’와 이탈리아의 ‘리라’ 역시 파운드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헝가리의 은광산 명칭과 연관이 깊은 ‘요하힘스탈러’의 줄임말 ‘탈러’에서 유래한 미국 달러까지 고려하면 주요 화폐 단위가 모두 금속과 이런저런 관련이 있다. 대부분 화폐 단위는 금속의 무게를 재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는 셈이다.

이처럼 일정량의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의 무게에 따라 주조된 금속화폐는 모든 사람에게 지불 수단으로서의 믿음과 소유에 대한 가치를 인식시켜줬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화폐의 기준이 되는 무게 역할을 하던 금속으로는 금과 은이 경쟁했다. 사실 전근대 사회에선 은을 기준으로 삼는 문명권이 일반적이었다. 19세기까지 동양과 서아시아, 남아메리카,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은본위제를 시행했다.

이 같은 금과 은의 경쟁에서 금이 승자가 된 때는 19세기다. 결정적 계기는 1859년 미국 네바다에서 대규모 은광이 발견되면서 은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1871년 은본위제를 고수하던 독일이 금본위제로 이행하면서 금대세론은 굳어졌다. 때마침 독일은 보불전쟁의 승리로, 프랑스로부터 50억 프랑의 배상금을 받아 금본위제 전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다. 독일의 금본위제를 시행으로 보유하고 있던 다량의 은이 국제시장에 나오면서 금 가격이 상승하고 은 가격이 떨어졌다.

이보다 약간 앞서 대규모 금광도 발견됐지만 금은 은과 다른 효과를 내게 된다. 1850년을 전후해 캘리포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금광이 발견돼 금 가격이 하락했다. 새로운 금광 발견으로 25년간 생산된 금의 양이 이전 250년간 생산된 금의 양과 맞먹을 정도가 됐다. 하지만 대규모 은의 발견이 은본위제 퇴출을 가져온 것과 달리 금광 발견으로 금본위제가 위축되는 게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통용되던 금은양본위제가 쫓겨났다.

금은양본위제는 금과 은의 가격 비율을 고정적으로 정해놓은 뒤 그와 연결해 화폐를 발행하는 것으로, 국제 금은 시세와 자국에서의 가격비가 같거나 비슷해야 유지된다. 그러나 대규모 금광 발견으로 국제시장에서 은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되면서 은은 해외로 유출되고 국내엔 금만 유통돼 사실상 자연스레 금본위제로 전환된 것이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인류가 거래를 시작한 이후 사용한 화폐의 변화를 살펴보자.

2. 다양한 금속 중 금과 은이 주요 교환수단으로 사용된 이유는 뭘까.

3. 금은양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전환된 계기를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