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유구한 국가부채 해결법'배째라'(下)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나라들 세금 더 걷자 주민들 대탈주…경제 상황은 더 나빠졌죠
스페인은 1556~1696년 사이에 14차례에 걸쳐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행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557년 카를 5세는 바야돌리드 칙령을 통해서 장기 국채인 후로스의 금리를 5%로 동결했다. 그런데도 1562년 스페인 왕실은 1년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43만 두카트를 국가부채의 이자를 갚는 데 써야만 했다. 스페인 정부는 오늘날 미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전략으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미국 중앙은행이 장기 국채를 사들이는 대신 단기 국채를 내다 팔아 장기 금리를 낮추는 정책)’ 정책을 쓴 것처럼 단기융자 채무인 아시엔토스를 장기 국채인 후로스로 전환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하지만 1625년 최고조(1240만 두카트)에 달한 아시엔토스 규모가 1654년에는 100만 두카트로 줄어들면서 재정정책을 쓸 수단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결국 국채 만기 연장이나 반강압적인 국채금리 인하, 금 가격 인상 등으로 대응해도 한계에 다다르면 부도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스페인 정부가 완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것만 따져 봐도 1575년, 1576년, 1607년, 1627년, 1647년 등에 이른다.

근대 초기 프랑스도 정기적인 채무불이행 국가 중 하나였다. 앙리 4세는 “대금업자들을 스펀지처럼 쥐어짰다”는 평을 들었지만 빌린 돈을 갚는 데는 모범적이지 않았다. 앙리 4세 이후 프랑스 국왕들도 줄줄이 금융업자들에겐 큰 구멍이었다. 프랑스 왕정은 1559년, 1598년, 1634년, 1648년, 1661년, 1714년, 1721년, 1759년, 1770년, 1788년에 빚을 갚지 않고 ‘펑크’를 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에선 채무불이행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행보였다. 전쟁을 위해 돈을 빌리고,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올리려 하지만 시끄러운 소요만 일으킬 뿐 실패했다. 또다시 채무를 갚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빌리다가 결국 최종적으로는 전체 혹은 일부 빚에 대한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형태가 반복된 것이다. 삼부회 소집으로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에 불이 붙을 때도 루이 16세가 제기한 주요 안건은 채무불이행과 관련된 것이었다.

재정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은 세금을 쥐어짜 부도를 피해 보려 했지만 시민들의 엑소더스만 발생할 뿐 파국은 피하지 못했다. 1582년 합스부르크제국의 행정 모범지대로 평가받던 피렌체에서 세금 부담이 늘자 주민 대량 탈주 사태가 발생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포르투갈에선 모든 물품에 20%의 판매세가 부과됐다. 수산물은 무려 판매액의 50%가 세금이었다. 1587년 프랑스 부르봉 왕가는 흉작으로 지역 경제 기반이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에서의 조세 수입을 두 배로 증액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상대적으로 재정이 건전했다던 영국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1672년 찰스 2세는 부분적인 지급 불이행을 선언했다. 1685년에는 국채이자 지급이 중단돼 1705년까지 재개되지 않았다. 잉글랜드에선 또 1707~1708년, 1716~1717년, 1727년, 1749~1750년, 1756년, 1822년, 1824년, 1830년, 1844년에도 소지하고 있던 국채를 액면 이자가 낮은 증권으로 교환하는 강제 전환이 시행됐다.

이 같은 국가부도는 전 유럽적 현상이 됐다.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의 분석에 따르면 1800년부터 2010년까지 그리스는 무려 다섯 번의 국가부도 사태를 경험하며 100년 넘게(전체 기간의 51%) 파산 상태에서 국가가 운영됐다. 러시아도 39%(5번)의 기간을 국가부도 상황에서 보냈다. 헝가리(37%, 7번)와 폴란드(33%, 3번) 등도 3분의 1 이상의 세월을 부도 상태로 흘려보냈다. 오늘날 재정이 튼실하기로 유명한 독일도 7번의 파산과 13% 기간에 달하는 국가부도를 경험했다.

이처럼 근대 초 이래 유럽 국가에선 채무불이행이 반복되면서 국채를 더 높은 금리로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결국 갚아야 할 빚이 더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오늘날 몇 년째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처럼 당시 유럽 주요국들도 빚으로 빚을 갚다 결국 배를 째는 악순환의 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었던 것이다. NIE 포인트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1. OECD 국가의 부채를 살펴보고 적정 부채 규모에 관해 토론해 보자.

2. 우리나라 부채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조사해 보자.

3. 국가 부채의 해결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