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종이달 下
영화는 이런 장면들을 통해 가짜로 쌓아 올린 부의 모습을 극적으로 연출한다.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진다. 일본 정부는 1980년대 중반 급격하게 환율을 내린다. 1985년 ‘플라자 합의’의 결과물이다. 이 합의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도모한다는 내용이었다. 엔화가 고평가되면 일본의 수출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잃게 된다. 반대로 미국 수출기업들은 일본에 진출하기 수월해진다. 이에 일본 정부는 수출 감소를 내수경제 활성화로 극복하려 했고, 금리를 인하하게 된다.금리가 인하되면 경제주체들의 경제활동은 활발해진다. 대출이 수월해지면서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산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일본 전체 주식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을 보면 알 수 있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다. PER이 높다는 것은 기업의 영업활동에 비해 주가가 높게 형성됐다는 의미다. 일본 주식시장의 1985년 PER은 33배였는데, 플라자 합의에 따른 금리 인하 단행 이후 급격히 상승해 1989년에는 67배에 달하게 된다. 부동산 가격도 폭등했다. 1984년을 전후해 100포인트에 불과하던 일본 전국 지가는 1990년 160포인트까지 올라간다. 도쿄와 오사카 등 이른바 6대 대도시의 지가는 300포인트까지 급등했다.
리카가 남의 돈으로 허영심 많은 생활을 즐긴 것과 같이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생산을 통한 부가 아니라 빚으로 쌓은 허영 속에 환락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앞서 살펴봤듯 자산 가격 폭락에 의한 장기 불황이었다. 과도한 자산 가격 상승에 1989년 일본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부동산 시장 과열에 일본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과도하게 한 것이 기폭제가 돼 버블이 터졌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꺼졌듯, 리카의 일탈도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된다. 은행 직장 동료 유리코(고바야시 사토미 분)가 은행 기록을 정리하던 중 수상한 점을 발견하면서다. 은행 본사에서 사람들이 파견되고 리카는 붙잡히게 된다. 징계를 기다리던 중 리카는 유리코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가짜였기 때문에 언젠가 끝나겠지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행복했어요. 가짜니까 망가져도, 그리고 망가뜨려도 상관없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서 난 자유롭구나 생각했어요.”
우리는 삶을 절제하고 단련한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발걸음들이다. 무절제는 순간의 쾌락을 선물하지만 영원할 수 없다. 아쉽게도 리카의 자유가 짧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현실에 발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딜 때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나를 찾아온다. 가짜로 쌓아올린 버블은 개인의 삶을 망가뜨렸다. 가짜가 아니고선 행복을 쌓아올리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쓰라린 기억이다. 한 걸음 더
버블(거품) 붕괴, 금융위기 등에 의한 경기침체가 오면 정부는 금리를 내리게 된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황 시작 국면에서 신속하게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곧바로 정책금리를 연 1.5%에서 연 1%로 급격하게 인하했다.
이는 ‘디플레이션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다. 경기 하방 압력에 모든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정책금리 인하는 더 이상 경기 회생 카드로서 실효성을 잃게 된다. 경제 주체들이 대출, 소비를 늘리는 기준은 실질금리인데,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아무리 명목금리를 낮춰도 실질금리가 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1991년 중반을 넘어서야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이미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이 시작됐고, 금리를 내려도 사람들이 느끼는 실질금리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일본 중앙은행은 지속해서 금리를 낮췄다. 리카가 영업하던 1995년 시장에서 예금 금리가 연 0.8%면 매우 파격적이란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구민기 한국경제신문 기자 NIE 포인트1. 버블경제를 만드는 요인들에 대해 학습해보자.
2. ‘플라자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 보자.
3. 환율 상승과 하락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토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