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할인 판매에 들어간 미국의 한 유통업체 모습. /한경DB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할인 판매에 들어간 미국의 한 유통업체 모습. /한경DB
해외 직구가 대중화하면서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는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쇼핑 축제가 됐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매년 추수감사절 다음날, 즉 11월 마지막주 금요일에 열리는 대대적인 할인 행사다. 평소 적자(red)를 보던 상점도 이날만큼은 흑자(black)를 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미국소매협회에 따르면 해마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미국인은 1인당 1000달러 이상을 쓴다. 미국 오프라인 매장마다 최대 80~90% 싸게 나온 물건을 먼저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한다. 온·오프라인 이어지는 연말 쇼핑 축제바로 그다음 돌아오는 월요일은 사이버 먼데이(Cyber Monday)라고 한다. 추수감사절 연휴의 쇼핑객을 잡기 위해 온라인 쇼핑몰들이 할인 대열에 합류한다. 전자상거래 산업이 급성장하고 코로나19로 비대면 쇼핑이 일상화하면서 사이버 먼데이가 블랙 프라이데이 못지않은 판매 실적을 내는 추세다. 블랙 프라이데이와 사이버 먼데이를 신호탄으로 개막하는 연말 쇼핑시즌은 미국 유통업체 1년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의 소비 심리를 파악하는 잣대가 되기도 하는 이유다.

‘모방의 천재’ 중국은 블랙 프라이데이를 베낀 쇼핑 축제도 만들어냈다. 중국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알리바바 주도로 11월 11일 열리는 광군제(光棍節)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광군제에서 행사 시작 30분 만에 3723억위안(약 68조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했다. 1이 네 번 겹치는 이날은 일명 ‘솔로의 날’로도 불린다. 알리바바가 2009년 독신자를 위한 세일을 시작한 것이 해마다 판이 커져 여기까지 왔다. 한국 정부도 소비 진작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2015년부터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운영하고 있다. 재고 부족 시달리는 美 유통업계연말마다 세계 직구족의 손가락을 바쁘게 한 블랙 프라이데이의 기세가 올해는 주춤해질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블랙 프라이데이는 세계적인 물류 대란에 발목이 잡혔다. CNN비즈니스는 “많은 상점들이 쇼핑 시즌 시작을 앞두고 이미 도착했어야 할 상품들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항만의 화물 처리 적체로 상품을 실어나르는 컨테이너선들이 제때 하역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이들 상품을 창고나 물류센터로 옮길 일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고 부족이 소매 유통업체들의 마케팅 위축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케 보루초우 웰스파고 애널리스트는 “재고 처리를 위한 염가 판매가 공급망 이슈로 인해 감소했다”며 “항만 하역 지연에 베트남 생산시설 가동 중단으로 많은 소매유통업체들의 상품 반입 능력이 제한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의 유명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는 이미 올해 할인율을 낮춰 수익 증가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여성 의류업체 J.질은 지난 9월 콘퍼런스콜에서 “판촉 행위를 줄이고 상품을 정가에 판매함으로써 공급망 압박에서 발생하는 비용 상승을 상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용품 체인점 아카데미스포츠+아웃도어 역시 “올 연말에는 할인 행사 규모가 예년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광군제는 공동부유(共同富裕)를 명분으로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군기 잡기’에 나선 중국 정부의 움직임이 변수로 작용했다. 알리바바는 항저우 본사에서 매년 11월 11일 오전 0시부터 24시간 동안 거래액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대규모 언론 설명회도 열었지만, 올해는 행사를 최대한 축소했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 증가보다 사회적 책임에 중점을 뒀다”는 입장이다. 다른 업체들도 ‘몇 초 만에 1억위안을 돌파했는지’ 같은 기록을 떠들썩하게 홍보하지 않았다. 규제당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광군제 행사를 조용히 치르려는 분위기가 퍼진 것이다.

[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팔고 싶어도 물건이 없네…세계적 물류대란에 조용해진 '블프'
지난해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이 당국의 규제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이후 중국 정부는 인터넷 기업을 향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알리바바는 올 4월 역대 최고인 3조원대 반독점 벌금을 물기도 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