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신현수 《조선가인살롱》
중학교 3학년 강체리는 ‘길고 가느다란 외까풀 눈, 동글납작한 코, 통통하고 발그레한 볼, 작아서 답답해 보이는 입술’을 볼 때마다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세울 거라고는 맑고 흰 피부뿐인 체리에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오조미. “신윤복 <미인도>에서 ‘갑툭튀’한 것 같지 않니?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최고 미녀였을 걸!”이라며 ‘오리지널 조선시대 미녀’ 딱지를 붙인 것이다.‘초긍정녀’를 자처하는 체리는 ‘본판마저 망치고 후유증에 시달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성형수술 대신 유튜브에서 성형 메이크업을 익힌다. 일취월장한 실력으로 자신도 꾸미고 친구들도 치장해주지만 ‘촌발’날리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린다. “조선 시대라면 먹힐 미모인데, 차라리 조선 시대로 가버렸으면.”
순간 블랙홀처럼 캄캄한 미로 속으로 휙 빨려 들어간 체리는 진짜 조선 시대로 와버렸다. 체리에게 “너 스스로 조선에 오고 싶어 해서 왔다”고 말하는 도무녀는 “막중한 임무가 있어 조선 시대로 왔으며, 임무를 완수하면 1년 후 미래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선언한다.
체리의 임무는 효림대군의 동생 효연공주를 치유하는 것이다. 외모 콤플렉스로 절망에 빠진 공주마마를 치유시킬 방도를 궁리하는 내내 한숨만 내쉰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지하철도 수세식 화장실도 라면도 피자도 없는 조선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이 깊지만 “선녀처럼 곱다, 절세가인이다”라는 칭송에 체리는 점차 조선에 스며들게 된다. 조선 최고의 미모 덕에 꽃미남 효림대군의 관심을 받게 된 것도 두근거리는 일이다.
체리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공주마마 가인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체리의 특기인 성형 메이크업을 활용해 ‘용모와 품성이 모두 아름다운 공주’로 변신시킬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미모의 기준은 바뀐다 십대 때 외까풀 눈에 살짝 콤플렉스를 느꼈다는 《조선가인살롱》의 저자 신현수 작가는 청소년들을 외모지상주의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가인사롱’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웹소설을 다듬어 장편소설로 펴낸 만큼 발랄하고 재미있다.
청소년의 외모콤플렉스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흥미와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조선시대와 21세기의 미모 기준이 정반대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얼짱’이 되고도 남을 정도의 효연공주는 추녀 콤플렉스에 빠져 있고, 밋밋한 얼굴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셰딩에 온 힘을 기울이던 체리는 조선 최고의 미녀로 추앙받는다는 발상.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쌍꺼풀이 있으면 ‘천한 인상’이라고 하여 결혼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얼굴연구 전문학자인 조용진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조선시대 미인상’에 대해 들은 내용이다. “눈썹은 흐린 초생달 형이며 쌍꺼풀이 없고 코끝과 눈동자가 작다. 입술은 작고 도톰하며 얼굴은 둥글고 통통하다. 키는 158㎝ 정도이며 목은 가늘되 너무 길지 않다. 허리는 잘록하면 안 된다. 엉덩이는 적당한 크기여야 하고 다리는 짧고 굵다.”
짙은 쌍꺼풀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뚝한 콧대가 각광받을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자연스러우면서 여백이 있는 얼굴,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외모가 사랑받는다. 미인의 기준이 휙휙 바뀌고 새로운 화장법이 쏟아져 나오니 체리처럼 성형보다 메이크업에 관심을 기울여볼 만하다.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으라소설 속에 실제 조선시대 때 사용한 수제 화장품 정보가 많이 등장한다. 팥가루와 녹두가루로 만든 세안제, 수세미즙으로 만든 미안수 같은 조선시대 화장품이 요즘 천연화장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다는 것도 놀랍다. 조선시대 화장품 도구를 비롯해 그 시대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정보도 그득하고, 한자를 활용한 모달(모델) 검불락수(콤플렉스)같은 작명 센스도 돋보인다.
조선의 감옥에 갇히는 위기까지 겪은 체리에게 도무녀는 “네 임무는 공주를 낫게 하는 동시에 너 스스로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찾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꿈을 안고 21세기로 돌아오는 체리에게 더 이상 외모콤플렉스 따위는 없다. 체리와 함께 조선시대를 여행하며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