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국어 학습

(25) 옛시조의 주제 ①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늙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리? 그러니 탄로가를 부를 수밖에…
[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늙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으리? 그러니 탄로가를 부를 수밖에…
구만 리(九萬里) 장천(長天)…/… 이 몸을 수이 늙게, 산쳔도 변거든 낸들 아니 늙을쇼냐, 청산이 녜 얼골 나노매라/ 귀밋테 해무근 서리 녹을 줄을 모른다‘늙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고 인간 감정을 흔들어 놓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조상들의 노래들도 많다. 그 노래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우선 자연(물)을 이용한 표현이 많다는 것이다.

(가)에서 ‘장천(長天)’, 즉 끝없이 잇닿아 멀고도 넓은 하늘이 ‘수이 늙’는 ‘이 몸’과 대비되고 있다. ‘구만 리’나 되어 무한히 지속되는 자연물인 하늘과 달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인 것이다. 늙음을 자연과 인생의 대비로 표현한 (가)와 달리 (나)에서는 ‘산쳔도 변’는 것처럼 ‘나’ 또한 늙는다고, 둘 사이의 유사점을 이용해 표현했다. ‘청산(푸른 산)’이었다가 ‘황산(누런 산)’이 된 것은 청춘을 지나 늙음과 같다는 것이다. 푸른색은 젊음을, 누런색은 늙음을 표현한 것은 예부터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다)에서는 자연과 인생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동시에 이용하였다. ‘동풍(東風, 동쪽에서 부는 바람으로 봄철에 불어옴.)’이 불기 전후로 산은 달라진다. ‘적설(積雪)’에 의해 흰색이었다가 봄바람이 불자 ‘청산’이 되어 푸르게 변한 것이다. 그런데 눈은 ‘서리’와 흰색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흰색은 ‘귀밋테 해무근’이라는 말과 함께, 백발(白髮)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적설’의 산과 흰 머리의 인간과 유사한 것이다. 그러나 산과 인간은 다르다. ‘적설’은 녹지만 ‘서리’는 녹지 않는, 즉 백발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결국 ‘청산이 녜 얼골 나노’는, 순환하는 자연과 달리 인생은 ‘서리 녹을 줄을 모’르는, 회춘(回春)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늙음과 관련한 옛시조를 감상할 때는 자연(물)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생각하면 좋다.주색(酒色)에 못 슬믠, 아니 놀고 어이리, 소년적 은 감(減)홈이 업세라, 넨들 얼마 져머시리, 뽑고 또 뽑아 졈고져 뜻은/북당(北堂)에 유친(有親)오시니 그를 두려노라늙음이 인간 감정을 흔들어 놓는 힘이 있다 했으니, 그 감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아 두면 좋을 것이다.

늙음을 노래한 옛시조 대부분은 한탄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그 시조들을 따로 탄로가(歎老歌)라고 부른다. 그러면서도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늙음에 대한 다양한 정서와 태도를 드러냈다. (가)의 ‘이 몸’은 ‘미평(未平)’, 즉 마음이 편하지 못하고, 급기야 ‘일월(日月)’ 즉, 초인간적 존재(일월은 날과 달의 뜻으로, ‘세월’을 이르는 말로 볼 수도 있다)에게 ‘뭇’는다, ‘이 몸을 수이 늙게 고’라고. 아무래도 그 물음은 따지는 것이라 해도 될 정도로 불평이라 할 만한데,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화자가 ‘주색(酒色)에 못 슬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표적인 욕망인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늙는 것이 좋을 리 없지 않겠는가? (나)의 ‘나’는 ‘아니 놀고 어이리’라고 한다. 얼마 안 남은 인생 즐기며 살겠다는 것인데, 불만의 마음까지는 아닌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나’가 ‘져리 될 인생’, 즉 산천과 같이 늙음은 자연의 섭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달관(사소한 사물이나 일에 얽매이지 않는 인생관)이 곧 현실 긍정의 마음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라)의 화자는 ‘소년적 은 감(減)홈이 없’다고 한다. 문득 ‘춘광(春光, 젊은 사람의 나이) 덧없’음을 깨달았지만, 젊은 시절의 마음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인생무상감을 극복하고 희망적 태도를 보여주는 듯도 하지만,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은 늙었음을 한탄하는 듯도 하다. (바)의 화자는 ‘청춘 소년’들에게 훈계를 한다. ‘백발노인 웃지마라’고 하고 ‘넨들 얼마 져머시리’라고 하면서, 그들이나 ‘우리’는 ‘공번된 하아래’ 있음을 상기시킨다. 즉 공평한 세월의 흐름에 누구나 늙을 수밖에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바)는 화자가 유교 이념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당(예전에, 중국에서 집의 북쪽에 있는 당집을 이르던 말. 집안의 여자가 거처하는 곳)에 유친오시니’를 보면 화자는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다. 그는 ‘백발’을 ‘뽑고 또 뽑아 졈고져 뜻’ 즉 늙음을 숨기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데, 그 이유가 어머니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효를 실천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가)~(라)는 자신의 처지나 내면에 한정하여 늙음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면, (마)와 (바)는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늙음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하겠다.
☞ 포인트
신철수 성보고 교사
신철수 성보고 교사
① 늙음을 한탄하는 노래들을 탄로가(歎老歌)라고 함을 알아 두자.

② 자연(물)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용하여 늙음을 표현하는 노래가 많음을 알아 두자.

③ 늙음과 관련하여 ‘동풍’, ‘눈’, ‘서리’, ‘춘광’ 등의 비유적 의미를 알아 두자.

④ 자신의 처지나 내면에 한정하여 늙음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거나, 타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늙음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음을 알아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