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국어 학습
(21) 어휘와 관용적 표현의 어감
(21) 어휘와 관용적 표현의 어감
지나간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학자(이 안에는 물론 신학자도 포함되어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불필요한 접속사와 수식어로써 말의 갈래를 쪼개고 나누어 명료한 진리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묻어 둔 채, 이미 뱉어 버린 말의 찌꺼기를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생동하던 언행은 이렇게 해서 지식의 울안에 갇히고 만다.학자…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 뱉어 버린 말의 찌꺼기 …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처신하려 드니 …어감(語感·nuance)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인간은 대상에 대해 좋고 싫은 감정을 갖고, 어휘나 문장 선택을 달리한다. ‘그렇게 말하니?’와 ‘그 따위로 말하니?’에서 우리는 감정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비문학과 달리 문학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을 많이 쓴다. 이 글의 첫째 문단 일부를 다음과 비교하며 읽어 보자.
이와 같은 학문이나 지식을 나는 신용하고 싶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아무리 바닥이 드러난 세상이기로, 진리를 사랑하고 실현해야 할 지식인들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와 비겁한 침묵으로써 처신하려 드니,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배반이다.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무학(無學)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학문에 대한 무용론도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는 것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않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성을 경계한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발랄한 삶이 소중하다는 말이다.
- 법정,「인형과 인간」-
학자들이 나와…이미 한 말을 가지고 자세히 찾아내 이런저런 말로 묻는다.
‘학자’라고 하지 않고 ‘학자…라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학자의 격을 낮추는, 즉 깎아내리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나오다’, ‘(말)하다’, ‘찾다’, ‘묻다’ 등과 달리, 말이 불쑥 나오다는 뜻의 ‘튀어나오다’, 말을 함부로 하다는 뜻의 ‘뱉다’, 이리저리 들추며 자꾸 뒤지다는 뜻의 ‘뒤적거리다’, 일일이 캐어 묻다는 뜻의 ‘따지다’ 등은 그 주체를 깎아내리는 효과가 있다. 또한 ‘말의 찌꺼기’라는 비유도 그렇다. 말을 찌꺼기로 비유함으로써, 말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특정 부사어의 활용도 대상의 격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시시콜콜’은 마음씨나 하는 짓이 좀스럽고 인색한 모양을, ‘이러쿵저러쿵’은 이러하다는 둥 저러하다는 둥 말을 늘어놓는 모양을 뜻한다. 이들과 ‘자세히’, ‘이런저런’ 등과 비교해 보면 부정적인 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어 버리다’라는 보조 용언은 행위를 함부로 했다는, ‘~려 들다’라는 보조 용언은 행동을 거칠고 다그치듯이 했다는 어감을 전한다. 따라서 ‘뱉어 버리다’, ‘따지려 든다’, ‘처신하려 든다’ 등은 ‘뱉다’, ‘따지다’, ‘처신하다’보다 주체의 격을 떨어뜨리는 말이다. 이를 고려하면 글쓴이가 ‘학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닥이 드러난 … 탈을 쓴 … 코에 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관용적 표현이나 상징적 표현도 글쓴이가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데 많이 이용된다. ‘바닥이 드러나다’는 숨겨져 있던 정체가 드러난다는 뜻인데, 그 숨겨진 정체가 부정적인 경우에 흔히 쓰인다. ‘탈을 쓰다’는 본색이 드러나지 않게 가장하다는 뜻으로서, 그때의 본색 또한 부정적인 경우이다. ‘코를 걸다’는 무엇을 자랑삼아 내세우는 것을 말한다. 한편, 1879년에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이 쓴 <인형의 집>이라는 희곡이 있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 노라가 남성에 종속된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과정을 묘사하여 여성 해방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후 ‘인형의 집’은 어떤 굴레나 속박을 뜻하게 되었는데, 고등학생 수준에서는 <인형의 집> 정도는 알아 두고 ‘인형의 집’의 상징적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성인들… 그런데 학자…라는 사람들…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 가 중요하다 … 을 경계한 …이 소중하다인간은 이성과 감성을 갖고 있으니 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비판을 많이 한다. 그 말은 곧 비판을 담은 글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비판을 나쁜 것을 지적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 않다. 좋거나 옳은 것, 가치, 의의 등을 밝히는 것도 비판이다. 따라서 비판하다 보면 ‘이것은 좋은데,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대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도 ‘성인들’은 옳은데, ‘학자…라는 사람들’은 그르다고 했다. 성인들은 ‘간단하고 명료’하고,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는데, 학자들은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대상과 올바른 대상의 차이를 밝히면 그 잘못이 부각되는 효과가 있다.
‘A는 중요하지 않고 B는 중요하다’는 문장 구조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글에서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문장을 보자. 이는 ‘지식의 양은 중요하지 않고 지식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뜻인데, 지식의 많음에 대한 자랑은 잘못이고, 지식의 실천은 옳은 것이라고 대조하고 있다. 또한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않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성을 경계한 … 자유롭고 발랄한 삶이 소중하다’라는 문장도 보자. 이는 ‘학문이나 지식의 자랑이나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성은 중요하지 않고, 자유롭고 발랄함이 중요하다’는 뜻으로서, 지식의 자랑이나 지식 과잉에 따른 관념성은 잘못이고, 자유와 발랄함이 옳은 것이라고 대조하고 있다. … 을 … 신용하고 싶지 않다 …에 맹점이 있다 …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A는 잘못이다’라는 문장도 생각해 보자. 이는 잘못이 무엇인지를 글쓴이가 직접적으로 말하며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이 글에서도 ‘이와 같은(지식의 울안에 갇힌) 학문이나 지식을 나는 신용하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 이는 글쓴이가 믿지 않은 것, 즉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식의 울안에 갇힌 학문과 지식임을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맹점’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한, 모순되는 점이나 틈을 뜻하므로, 잘못된 것은 남의 흉내만을 내는 현대인임을 명료하게 밝힌 것이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도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강조하고 있는 설의적 의문문이다. 즉 사색과 행동이 없는 지식이 쓸모없다는 자신의 비판을 전달하며 강조하는 것이다. ☞ 포인트 ① 어휘나 관용적 표현의 의미뿐만 아니라 어감(語感·nuance)까지 고려하며 수필을 읽도록 하자.
② <인형의 집>에 대해 알아 두고 ‘인형의 집’의 상징적 의미를 알아 두자.
③ ‘이것은 좋은데,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대조를 하며 비판하는 경우가 많음을 알아 두자.
④ ‘A는 중요하지 않고 B는 중요하다’는 문장 구조일 경우 잘못과 올바른 것을 구별하며 읽도록 하자.
⑤ ‘A는 잘못이다’라는 문장은 잘못이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말함으로써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음을 알아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