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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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
'접속사 + 절1, 절2' 문장형태에서 주어가 같을 때…접속사와 절1 주어 생략하고 분사구문형태로 표현
The globe has huge temporal dimensions. For ages barren nature existed without living things. Life began on earth some 3.5 billion years ago, but modern humans (Homo sapiens) appeared perhaps less than half a million years ago. Although latecomers among the living things, humans as a species have transformed the earth the most. Many of these transformations have not been beneficial to the other speciesnor to humans. Today ecological damage is not merely a set of local phenomena. Environmental degradation is a global problem.《Encountering the past in nature》 중에서지구는 엄청난 시간의 범위를 갖는다. 오랫동안 황량한 자연이 생물체 없이 존재했다. 대략 35억 년 전에 생물체가 나타났지만 현대의 인간(호모사피엔스)이 출현한 지는 아마도 50만 년이 안 된다. 비록 우리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늦게 출현했지만,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은 지구를 가장 많이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 중 많은 것은 다른 종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이롭지 않다. 오늘날 생태계 피해는 단순히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환경 악화는 전 지구적 문제다. 해설개별적인 두 개의 절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접속사 중 하나인 although는 ‘비록 …이지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lthough the car is old, it still runs well이라는 문장은 ‘비록 그 차는 낡았지만, 여전히 잘 작동한다/달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although 다음에 문장이 아닌 구(phrase)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본문의 Although latecomers among the living things, humans as a species have transformed the earth the most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접속사 although 다음에 명사구가 옵니다만 although humans are latecomers among the living things의 의미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의미를 지니는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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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
한 문장 안의 두 개의 절을 연결할 때…while이 '비록 ~이지만'으로도 쓰여
The initial response to flood damage was to try to ‘control’ floods through structural means such as dams or embankments. It was found through experience that these efforts were ineffective or even harmful. Without going into the matter in detail it can be said that while dams may moderate flood flows to a limited extent under normal conditions (provided they are planned and operated for that purpose among others), they may aggravate the position if (in the absence of a flood cushion) water has to be suddenly released in the interest of the safety of structures. As for embankments, there is serious doubt about their efficacy as flood-control measures.《Governance of Water 》중에서홍수 피해에 대한 초기의 대응은 댐이나 둑과 같은 구조적 수단을 통해 홍수를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효과적이지 않거나 심지어 해롭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밝혀졌다.그 문제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지 않아도 비록 댐이 정상적인 조건에서 제한된 정도로 (그것들이 그 목적을 위해 계획되고 작동되는 경우에만) 홍수 유출을 완화시킬 수 있지만, 만약 (홍수 완충물이 없는 상태에서) 구조물의 안전을 위해 물이 갑자기 방류된다면 그것들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둑의 경우, 홍수 통제 수단으로서의 효능에 대한 심각한 의심이 든다. 해설한 문장 안에 독립적인 두 개의 절(clause)이 있을 경우, 이 두 절을 연결해주는 요소가 필요합니다. 영어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그중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해석을 하거나 작문을 하는 데 정말 필요한 while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우리는 while을 ‘-하는 동안’, ‘-인 반면에’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John arrived while I was h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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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야기
대조를 이룰땐 접속사 whereas, while을 써요
Archaeology is the study of history as written not with ink on paper but with the debris of human activity found where it fell. Whereas historians read the written records of our ancestors, archaeologists read the material record, either to augment the historic one or to reconstruct prehistory when there is no written record. As with the historic record, the archaeological record is often prejudiced by accidental survival, biased sources, and skewed representations of certain materials. Of course, both historic and material records from the past may carry inadvertent meaning.-Harrison Eiteljorg Ⅱ의 《Computing for Archaeologists》 중에서고고학은 종이에 잉크로 쓰인 역사가 아니라 인간 행동의 잔해가 있는 곳에서 발견되는 것들에서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역사가들은 우리 선조의 글로 표현된 기록을 읽지만, 고고학자들은 역사적 기록을 늘리거나 글로 표현된 기록이 없는 선사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물질적인 기록을 읽는다. 역사적 기록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적 기록은 특정 자료의 우연한 생존, 편향된 출처, 왜곡된 묘사로 인해 종종 편견을 갖게 된다. 물론 과거의 역사적 기록과 물질적 기록은 모두 의도치 않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 해설 >접속사는 단어와 단어, 구절과 구절,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문장 성분을 일컫습니다. 접속사를 포함하는 본문의 예로는 whereas historians read the written records of our ancestors가 있습니다. whereas는 ‘~인 반면에’라는 의미를 지니며, whereas를 포함하는 문장과 연결된 문장을 대조시키고자 할 때 사용됩니다. 역사가들은 우리 선조의 글로 표현된 기록을 읽는다는 것과 (그 다음에 뒤따르는 문장인) 고고학자들은 물질적 기록을 읽는다는 것을 대조하기 위해 whereas가 사용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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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수필의 묘미? 뜻만 생각지 말고 어감도 고려해 봐야
지나간 성인들의 가르침은 하나같이 간단하고 명료했다. 들으면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학자(이 안에는 물론 신학자도 포함되어야 한다)라는 사람들이 튀어나와 불필요한 접속사와 수식어로써 말의 갈래를 쪼개고 나누어 명료한 진리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기 자신의 문제는 묻어 둔 채, 이미 뱉어 버린 말의 찌꺼기를 가지고 시시콜콜하게 뒤적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따지려 든다. 생동하던 언행은 이렇게 해서 지식의 울안에 갇히고 만다.이와 같은 학문이나 지식을 나는 신용하고 싶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기 행동은 없이 남의 흉내만을 내면서 살려는 데에 맹점이 있다.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아무리 바닥이 드러난 세상이기로, 진리를 사랑하고 실현해야 할 지식인들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와 비겁한 침묵으로써 처신하려 드니,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배반이다.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무학(無學)이란 말이 있다. 전혀 배움이 없거나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학문에 대한 무용론도 아니다. 많이 배웠으면서도 배운 자취가 없는 것을 가리킴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코에 걸지 않고 지식 과잉에서 오는 관념성을 경계한 뜻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지식이나 정보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