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택근무 매뉴얼을 내놨다. 공무원이나 산하의 공공기관과 공기업용이 아니라 민간 기업을 겨냥한 것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중소·중견기업 관계자들과 가진 비대면 간담회 자료를 내놓는 형식을 거쳤다. 하지만 자율 채택이나 권유 사항으로 시작한 게 법이나 행정 제도로 변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적 행정 전통’으로 보아 통상 그렇게 된다. 정부 판단이 들어간 것이라도 법제화되는 것과 관련 업계가 자율로 채택하는 것은 천지차이다. 정부가 매뉴얼까지 내놓은 데는 이유도 있고 사정도 있다. 재택근무 확대를 전제로 코로나 확산을 막아보자는 것이고, 재택근무로 인한 노사 간의 다양한 갈등을 최소화해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렇다고 늘어나는 정부 간섭이 용인될 수 있나
![[시사이슈 찬반토론] 정부가 재택근무 매뉴얼까지 만들겠다는데…](https://img.hankyung.com/photo/202009/AA.23878095.1.jpg)
기업이라면 사규에 따르면 되고 노사 간 합의로 운영하면 된다. 하지만 사규가 규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고, 노사 간에 견해차가 생기는 부분도 나올 것이다. 모호한 영역이 많은 만큼 정부가 강제화하지 않는 선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면 노사 간 갈등 줄이기나 분쟁 해결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 민간 자율에 맡길 일 지나친 정부 간섭은 부작용 초래정부가 만든 매뉴얼 자체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 집에서 근무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주변의 카페로 가서 일하면 근무지 이탈이니, 복무 위반 소지가 있다는 식의 판단까지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인가. 재택근무 시간 중에도 자택 방문자를 확인하거나 우는 아이를 달랠 수 있으며, 집 전화를 받거나 무더위 때 샤워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정부가 말하지 않아도 기업과 종사자가 상식적·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해결할 문제다. 이런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일까지 이것은 맞고 가능하며, 저것은 불가능하고 틀리다는 지침서를 내놓는 발상 자체가 문제다. 기업이 알아서 잘할 수 있는 일이다. 기업이 ‘학생’도 아니고, 웬만한 공무원보다 기업 쪽 인력이 국제 경험이나 ‘맨 파워’도 더 좋은 시대다. 재택근무라고 하지만 근로자의 계약상 신분은 물론 근무 형태도 업종·직종·기업별로 너무나 다르다. 이 모든 것에 적용되는 매뉴얼을 만들 수도 없거니와 두루 통용될 정도라면 가이드라인으로 효용성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근본 문제는 정부의 과잉 개입과 간섭이다. 시작은 가이드라인이지만 규제로 변하고 법제화될 공산이 크다. 결국은 강제 조항이 되거나 융통성이 없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될 것이라면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100대 기업에 대한 실태 조사 등을 보면 재택근무는 이미 생산성에 문제가 없다. 자율로도 잘 시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괜히 나서 새로운 논란을 만들고 분쟁을 부추길 이유가 없다. 직원 자율로, 노사 합의로, 상식적으로 잘 운용되고 있으며, 그래도 문제가 되면 법원 판단에 맡기면 된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과 각 기업의 최적 근무 행태를 정부가 제대로 알고나 있나. √ 생각하기 - 권고가 강제가 되어서는 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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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