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 최대 FTA 'RCEP' 타결, 경제 영토 더 넓힐 기회다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사실상 타결됐다. 인도가 합의를 보류했지만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동의해 내년 최종 타결과 서명 기대가 높아졌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출에 타격을 받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시장 다변화와 ‘신남방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RCEP 협정문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다. 전자상거래 규범, 한류 콘텐츠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할 지식재산권 규범 등이 그렇다. 국가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 때문에 애로를 겪어온 국내 기업들로서는 통합 원산지 기준 마련도 환영할 부분이다. 상품·서비스·투자시장 개방과 인력 이동은 보호무역주의 위협 속에서 무역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이 경쟁력을 높여야 할 분야도 물론 있다. 농업이 그렇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산물은 RCEP 국가에 수출하는 양보다 수입하는 양이 더 많지만, 그것은 정태적인 분석일 뿐이다. RCEP을 계기로 한국 농업이 혁신을 한다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CEP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기대효과도 있다. RCEP 타결 소식에 미국 국무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여 의지를 재확인한 데서 보듯이 역내 경제질서 변화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FTA를 맺고 있지만 다자무역체계라는 규범이 더해지면 사드 보복 같은 중국의 부당한 행위도 제약받을 것이다. 수출 규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과 다자간 대화 채널이 마련된 점도 긍정적이다. RCEP은 중국이 주도했다기보다 한국과 일본의 타결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경제 영토를 더 넓힐 좋은 기회다.
사설 읽기 포인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한국의 경제영토 넓힐 좋은 기회
농업 등 자체 역량 키워야 할 과제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 미·중 간 무역·통상 전쟁이라는 특별한 변수와 부딪치기는 했지만, 세계는 개방경제를 지향하면서 자유무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이를 위한 노력으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래 세계 각국의 ‘경제 국경’은 현저히 낮아졌다. 결과는 더 많은 풍요였다. 자유롭고 공정한 교역은 ‘비교우위’에 따른 무역을 촉진하고 투자보장 범위도 넓어지면서 더 많은 나라가 더 잘살게 됐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미·중 갈등은 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무역은 확대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물적·인적·자본의 교류, 경제적 발전과 풍요로 가는 길이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예외적인 폐쇄 좌파 정권을 제외하고는 좌·우파 할 것 없이 교역 확대를 원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았던 중국이 개방경제를 표방한 이후 최근 20~30년 만에 한국보다 경제 규모를 8배가량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자유무역의 결과다. 근래 자유무역의 결실을 가장 많이 누린 국가가 중국이다. 트럼프의 공격 포인트도 이 점이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인해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시종일관 경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역과 교역이 막히자 식량 등 생필품을 주민들에게 조달해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이렇게 많은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것도, 전 국민이 천연가스로 요리하고 한겨울 난방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육류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도 개방경제와 자유무역 덕이다. 열강이 각축을 벌였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군대를 내세워 국가가 에너지 자원과 식량 확보를 위해 타국으로 직접 진출했지만, 자유 공정 무역체제가 확보된 지금은 기업이 군대를 대신한다. 한 세기 전만 해도 해군 함대와 중무장한 육군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경선 밖으로 진출해 나갔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한때는 종합상사들이, 최근에는 개별 기업이 필요한 물품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시대로 발전·진화했다.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지역단위 경제자유 블록이 확산되는 것도 이런 메가 트렌드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WTO 체제로 자유무역 시대에 들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별로 보호가 필요한 산업은 여전히 남아 있고 복잡다기한 관세체제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경제·산업적 이익을 더 도모할 수 있는 국가끼리 한층 발전된 단일시장을 만들자는 게 양자 간 FTA 혹은 블록 FTA다. 철강공동체에서 경제공동체를 거쳐 정치적으로도 통합된 유럽연합(EU)이 대표적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미국·캐나다·멕시코의 시장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새로 출범하게 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도 그렇다. 원래 미국과 일본 중심의 환태평양 경제·안보 블록으로 추진돼온 TPP 및 CPTPP에 대응해 중국이 앞장서 추진돼온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RCEP 가입에 주저한 적도 있었으나 이번에 일본 등과 함께 가입하게 됐다. 경제 영토가 넓어진 것도 좋은 기회지만, 우리 역량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특히 농업이 그렇다. 우리 시장은 내주고 정작 확대된 시장에 한국이 판매할 제품이나 서비스가 없어지면, 국경만 활짝 여는 격이 될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세계 인구의 절반, 세계 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사실상 타결됐다. 인도가 합의를 보류했지만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동의해 내년 최종 타결과 서명 기대가 높아졌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수출에 타격을 받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시장 다변화와 ‘신남방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RCEP 협정문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많다. 전자상거래 규범, 한류 콘텐츠 확산에 유리하게 작용할 지식재산권 규범 등이 그렇다. 국가마다 다른 원산지 규정 때문에 애로를 겪어온 국내 기업들로서는 통합 원산지 기준 마련도 환영할 부분이다. 상품·서비스·투자시장 개방과 인력 이동은 보호무역주의 위협 속에서 무역의 새로운 활로를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이 경쟁력을 높여야 할 분야도 물론 있다. 농업이 그렇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산물은 RCEP 국가에 수출하는 양보다 수입하는 양이 더 많지만, 그것은 정태적인 분석일 뿐이다. RCEP을 계기로 한국 농업이 혁신을 한다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RCEP으로 예상되는 또 다른 기대효과도 있다. RCEP 타결 소식에 미국 국무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관여 의지를 재확인한 데서 보듯이 역내 경제질서 변화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누그러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FTA를 맺고 있지만 다자무역체계라는 규범이 더해지면 사드 보복 같은 중국의 부당한 행위도 제약받을 것이다. 수출 규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일본과 다자간 대화 채널이 마련된 점도 긍정적이다. RCEP은 중국이 주도했다기보다 한국과 일본의 타결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경제 영토를 더 넓힐 좋은 기회다.
사설 읽기 포인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한국의 경제영토 넓힐 좋은 기회
농업 등 자체 역량 키워야 할 과제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 미·중 간 무역·통상 전쟁이라는 특별한 변수와 부딪치기는 했지만, 세계는 개방경제를 지향하면서 자유무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다. 이를 위한 노력으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이래 세계 각국의 ‘경제 국경’은 현저히 낮아졌다. 결과는 더 많은 풍요였다. 자유롭고 공정한 교역은 ‘비교우위’에 따른 무역을 촉진하고 투자보장 범위도 넓어지면서 더 많은 나라가 더 잘살게 됐다.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미·중 갈등은 진행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무역은 확대될 것이다.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물적·인적·자본의 교류, 경제적 발전과 풍요로 가는 길이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예외적인 폐쇄 좌파 정권을 제외하고는 좌·우파 할 것 없이 교역 확대를 원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이 대표적이다. 오랫동안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았던 중국이 개방경제를 표방한 이후 최근 20~30년 만에 한국보다 경제 규모를 8배가량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자유무역의 결과다. 근래 자유무역의 결실을 가장 많이 누린 국가가 중국이다. 트럼프의 공격 포인트도 이 점이다.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인해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시종일관 경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역과 교역이 막히자 식량 등 생필품을 주민들에게 조달해줄 길이 없게 된 것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이렇게 많은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것도, 전 국민이 천연가스로 요리하고 한겨울 난방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육류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것도 개방경제와 자유무역 덕이다. 열강이 각축을 벌였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군대를 내세워 국가가 에너지 자원과 식량 확보를 위해 타국으로 직접 진출했지만, 자유 공정 무역체제가 확보된 지금은 기업이 군대를 대신한다. 한 세기 전만 해도 해군 함대와 중무장한 육군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경선 밖으로 진출해 나갔지만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한때는 종합상사들이, 최근에는 개별 기업이 필요한 물품을 값싸고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시대로 발전·진화했다.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과 지역단위 경제자유 블록이 확산되는 것도 이런 메가 트렌드를 촉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WTO 체제로 자유무역 시대에 들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국가별로 보호가 필요한 산업은 여전히 남아 있고 복잡다기한 관세체제가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경제·산업적 이익을 더 도모할 수 있는 국가끼리 한층 발전된 단일시장을 만들자는 게 양자 간 FTA 혹은 블록 FTA다. 철강공동체에서 경제공동체를 거쳐 정치적으로도 통합된 유럽연합(EU)이 대표적이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미국·캐나다·멕시코의 시장 단일화도 마찬가지다.
새로 출범하게 된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도 그렇다. 원래 미국과 일본 중심의 환태평양 경제·안보 블록으로 추진돼온 TPP 및 CPTPP에 대응해 중국이 앞장서 추진돼온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RCEP 가입에 주저한 적도 있었으나 이번에 일본 등과 함께 가입하게 됐다. 경제 영토가 넓어진 것도 좋은 기회지만, 우리 역량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 특히 농업이 그렇다. 우리 시장은 내주고 정작 확대된 시장에 한국이 판매할 제품이나 서비스가 없어지면, 국경만 활짝 여는 격이 될 것이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