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바스티아《법》

“세금을 더 거둬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만, 세금을 내는 곳에서는
일자리 파괴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법의 원래 기능이지만,
실제의 법은 오히려 정의를 질식시키고 있다”

프레데릭 바스티아 (1801~1850)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인격·자유·재산 권리 적극 옹호
경쟁이 경제발전의 근본 강조
[다시 읽는 명저] "법이 타락하면 정의와 불의에 대한 판단 기준 흐려져"…'깨진 유리창' 사례로 '보이지 않는 효과' 중요성 강조
“법이 있기 때문에 재산이 있는 게 아니라, 재산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법을 만들게 됐다.” “법은 조직화한 정의(正義)다. 법이 타락하면 정의와 불의에 대한 판단 기준이 흐려지고, 정치의 역할이 지나치게 커진다.” “국내시장에서건 해외시장에서건 경쟁이 평등과 진보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가 사망 직전 펴낸 《법》은 정부와 정치권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억제해 경제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국가와 법은 시민들이 각자 스스로를 지킬 권한을 대행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경쟁이 경제 발전의 근본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프레데릭 바스티아
《법》
프레데릭 바스티아 《법》
그가 이런 논리를 편 것은 그 시대 상황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격렬한 이념투쟁이 진행되던 때였다. 프랑스 혁명(1789년)에서 비롯된 자유, 평등, 박애의 가치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1848년 공산당 선언이 나오는 등 사회주의가 기세를 발휘하고 있었다. 《법》은 사회주의적 분배 정의를 요구하던 대중에 대한 일종의 답변서다. 사회주의가 얼마나 오류가 많고 허구인지를 담아내려 했다. 바스티아의 이런 생각들은 《국가는 거대한 허구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 봐야 진짜 경제학자”

《법》의 제1장 주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회비용 개념을 풀어서 설명했다. 진짜 경제학자는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봐야 한다고 바스티아는 강조했다. ‘깨진 유리창’ 사례를 들었다. “한 아이가 유리창을 깼다고 하자. 새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 하고, 그러면 유리 업자는 돈을 벌 수 있다. 자연히 유리 공장의 생산과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여기까지는 ‘보이는 경제효과’다.

하지만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면 유리창을 살 돈으로 옷을 샀을 것이다. 옷 생산이 늘어나고 고용도 창출됐을 것이다. 그러면 온전히 남아 있는 유리창과 새로 만들어진 옷, 두 가지를 다 가질 수 있다”는 게 바스티아의 주장이다. 이게 ‘보이지 않는 효과’다. 바스티아는 “사회주의자들은 보이는 효과만을 추구한다”고 비판했다. “세금을 더 거둬 일자리를 만들 수 있지만, 세금을 내는 곳에서는 일자리 파괴가 이뤄진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지출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그는 “공공지출 증가는 납세자 부담이 늘어난다는 뜻”이라며 “납세자는 소비를 줄이게 되고, 그 결과 새 일자리가 더 늘어날 수 없다”고 했다.

기계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주장도 비판했다. ‘기계로 노동비를 줄일 수 있다면 절약된 비용은 어딘가에 쓰일 것이고, 그렇게 쓰인 비용으로 인해 새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진짜 경제학자는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간접적인 효과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장 ‘법’과 3장 ‘재산권과 법’, 4장 ‘정의와 박애’, 5장 ‘국가’에서 바스티아는 법과 국가, 개인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생명, 자유를 방어하고 지킬 권리가 있으며, 국가는 그 방어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법은 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봤다.

“法, 개인권리 보호임무 벗어나 타락”

바스티아는 법이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타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법이 다수의 누군가에게서 빼앗아 소수의 다른 누군가에게 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입법권자가 전체 국민의 이익은 도외시하고 표를 겨냥,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입법활동에 치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합법적 약탈’로 이름 붙였다. 요즘으로 치면 ‘포퓰리즘 정책’이다. 그는 “약탈은 보통선거권이 정착되면서 우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법의 원래 기능이지만, 실제의 법은 오히려 정의를 질식시키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사회주의로 귀결된다고 바스티아는 강조했다.

그는 책 말미에 “국민들로부터 거둬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나눠준 적은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썼다. 이어 “친절한 한쪽 손이 많은 시혜를 베푸느라고 몹시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또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호주머니로부터 세금을 거두느라고 거친 다른 쪽의 손도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선동가들에게 더 이상 기만당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적이다. 조지프 슘페터가 바스티아를 ‘역사상 가장 재기가 뛰어난 경제저술가’라고 평한 이유를 알 만하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