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최저임금 업종·지역별 차등화, 더는 미룰 이유 없다노동계 쪽의 불참으로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을 겪는 가운데 소상공인연합회도 내년도에 업종별 차등화가 되지 않으면 이 위원회에 불참하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연합회는 “일방적이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소상공인의 경영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5인 미만 사업장 등에 대한 차등화를 촉구했다.
최저임금을 업종·지역별로, 나아가 연령별로도 다양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논의는 수없이 반복됐다. 월 임금이 188만원(2016년)인 숙박·음식업과 630만원에 달하는 전기·가스·수도업의 임금 하한선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 업종별 차등화의 기본 논거다. 첨단 IT기반의 수출 대기업과 영세 상가나 최저임금 미만율이 46%에 달하는 농림어업에 똑같이 적용하면서 비롯되는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업종별 생산성, 임금지급능력 등에서 다양한 차이가 있는데도 단일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리겠다니 ‘소득주도성장’의 주요한 맹점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지역별로도 격차는 엄존한다. 서울과 제주의 임금소득은 30%가량 차이 난다. 일본이 지역·업종별 차별화를 하고, 미국도 지역별로 차등화하는 배경이다. 중국·베트남도 권역별로 차등화하고 있다. 프랑스·영국은 연령별로도 다르다.
임금의 본질을 생각하면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좁게는 영업이익, 크게 봐서 생산성의 결과로서의 임금체계라야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격차 해소의 필요성과 물가상승을 감안해 올릴 때 올리더라도 경제가 굴러가게 해야 한다. 업종별 차별화는 최저임금법에 근거가 있다. 업종별 지급여력, 지역별 물가와 생활비용, 연령별 업무역량 격차를 ‘차별’로 볼 게 아니라 경제 생태계 속의 ‘차이’로 볼 필요가 있다.
‘6·13 선거’로 정부·여당의 정책 추진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이해득실 계산에서 당분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뿐 아니라 근로시간 단축문제와 고용형태 등 노동이슈에서 본질을 보고 나라 경제를 살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양대 노총이 세계적 추세를 보면서 스스로 변해야 하지만, 정부도 이들을 적극 설득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면 획일적으로 천장처럼 올린 최저임금이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한국경제신문 6월20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올 최저임금 16.4% 급등으로
여러 부작용과 문제점 불거져
업종·지역별로 차등화해서
획일화로 인한 부작용 줄여야
최저임금을 법으로 정해 근로자를 보호하는 것은 현대국가의 일반적 행태다. 근로자가 약자인 시절 시작된 것으로, 노동권 보호에 복지 개념이 합쳐진 것이다. ‘사적 자치의 원칙’ ‘노사 간 협의 사항’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일정 수준의 최저임금이 유지되도록 적극 나서는 배경이다. 소득격차 해소, 물가 상승에 따른 임금소득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정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책정하고, 적절한 오름폭도 강구할 필요성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최저임금제도를 어떻게 운용할 것이며, 연도별 상승폭은 어떤 기준에 따를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요컨대 운용 방식에 따라 최저임금은 사회보장제도까지 보완할 수 있는 의미있는 제도도 되지만, 과도하게 잘못 운용되면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2018년 최저임금이 16.4% 급등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문제점이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 수없이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나온 보완책이 최저임금을 획일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업종별, 지역별로 차등화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나라가 많다. 미국 같은 데서는 지역별로 두 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뉴욕은 시간당 11달러(2017년)인 반면 조지아주는 5.15달러다.
일본은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눠 지역별로 최대 23%가량 차이 나게 하면서 업종별로도 차등화하고 있다. 업종마다 임금을 줄 수 있는 여건이 다르고, 지역마다 최저생활비 등 물가 수준이 차이 난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다. 형평과 평등을 강조해온 사회주의 전통이 강한 중국과 베트남도 지역별 차이를 둔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많이 다르다. 지역별, 업종별 차이가 없다. 연령별 차등화는 거의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기업과 경제계 등에서 차등화를 주장하지만 최저임금이 낮은 업종은 저임금 업종으로 낙인찍히고, 지역별 차등화는 국민통합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으며, 고령자의 최저임금을 감액하는 것도 차별화라는 것이 반대의 논리다. 최저임금의 차등화가 ‘차별 대우’라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경제 생태계에서 형성되는 자연스런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1986년 최저임금법이 제정되고, 그 직후 업종별 차등화를 해봤지만 이런 기류 때문에 일회성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차제에 임금에 대한 본질을 봐야 한다. 최저임금이 무엇인지, 나아가 임금이란 무엇인지를 봐야 해법이 나온다.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려도 올라간 임금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그 임금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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